기획특집

[만추(晩秋)의 뒤안길에서 나를 듣다 180]

— 고고하고 느린 호흡으로 거니는 삶, 여유와 수용의 관조록(觀照錄)

류남신 취재본부장 2026.10.06 09:57

 

[필자]

서장(序章): 10월, 천고마비의 하늘 아래 홀로 서서

 

하늘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 푸른 묵직함을 띠고, 만물이 저마다의 열매를 맺어 묵직하게 고개를 숙이는 10월이다. 예부터 사람은 이 계절을 ‘천고마비(天高馬肥)’라 부르며 양풍(涼風) 속의 풍요와 결실을 축복해 왔다. 그러나 저 높고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홀로 서 본, 이라면 누구나 알게 된다. 풍요의 뒤편에는 반드시 고요함이 있고, 화려한 단풍의 빛깔 아래에는 스러짐을 준비하는 미학적 침묵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10월이 오면 나는 홀로 여행을 떠난다. 붐비는 시끄러움을 뒤로하고,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일

—그것은 단순한 휴식이나 일탈이 아니라, 내 존재의 근원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거룩한 칩거(棲居)이다.

 

산자락을 물들이는 단풍 사이로 서서히 노을이 비켜설 때, 붉고 노란 빛이 세상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그 순간을 마주한다. 저무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니라 가장 찬란한 빛을 세상에 뿌리는 일임을 노을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제 나 또한 다가오는 만추(晩秋)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내 삶의 뒤안길을 정직하게 점검하고, 늙어간다는 자연의 이치를 수용하며, 비로소 깊고 단아한 여유자작(餘裕自適)의 시간 속으로 유영하려 한다.

 

제1장: 만추의 빛과 그림자 — 시간의 물리량에서 마음의 깊이로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두고 “벌써 이렇게 되었는가” 하며 개탄하곤 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흘러가 버린 세월 앞에서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른다. 마음 한구석에 왠지 모르게 스며드는 씁쓸함, 그것은 아마도 지나온 날들에 대한 미련이거나 이루지 못한 꿈들에 대한 나지막한 탄식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적·철학적 눈으로 가을을 다시 바라본다면, 만추는 결코 '손실'의 계절이 아니다. 만추는 가벼운 것들이 날아가고 오직 진실하고 무게감 있는 것들만, 남아 굳어지는 '응축'의 계절이다. 여름날의 무성했던 녹음은 화려했으나 산만하였고, 봄날의 꽃들은 아름다웠으나 가벼웠다. 오직 가을의 앙상해져 가는 가지와 짙어지는 노을만이 나무의 진짜 형태와 뿌리의 깊이를 드러내 보여준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유명한 시 「가을날(Herbsttag)」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녘에 바람을 풀어놓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익어가도록 명하시고,

남국(南國)의 햇빛을 이틀만 더 주시어,

과즙이 완숙에 이르도록, 마지막 단맛이 깊은 포도주에 스며들게 하소서.”

 

릴케의 고백처럼, 늙어감과 나이 듦은 삶이라는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스며들게 하는 숙성의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외연이 줄어드는 대신, 내면의 밀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거룩한 변용이다.

‘벌써 이렇게 와 있는가’라는 탄식 대신, ‘드디어 여기에 도달했는가’라는 찬탄으로 관점을 바꿀 때, 마음 한구석의 씁쓸함은 오롯이 깊은 울림을 만드는 거문고의 울림통으로 변모하게 된다.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 바람을 마주하고 서 있는 내 존재의 중심은 여전히 고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제2장: 뒤안길의 점검 — 비움과 수용, 그리고 여유자작(餘裕自適)

 

지나온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길을 숨차게 달려왔음을 깨닫는다. 세상이 요구하는 역할, 가족과 사회가 맡긴 책임, 그리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집착과 욕망의 언덕들. 그 모든 전투와 같았던 나날을 뒤로하고 맞이하는 만추의 시간은, 비로소 내게 "이제는 쉬어도 된다"는 합법적이고 은혜로운 허가증을 건네준다.

어떻게 해야 내가 늙어간다는 것을 진정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그의 저서 『삶의 길이에 관하여』에서 "삶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충분히 길다"고 말했다. 또한 키케로(Cicero)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육체의 힘이 줄어드는 대신 정신의 판단력과 사유의 깊이가 완성되는 것이 노년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늙어감을 수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체력의 저하를 자인하거나 포기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과시와 집착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한다. 동양 철학에서 장자(莊子)가 말했던 ‘유(遊)’의 경지, 즉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니는 ‘소요유(逍遙遊)’의 마음이 바로 여유자작이다.

여유자작(餘裕自適)이란 무엇인가.

 

  • (餘):마음의 빈 공간을 남겨두는 너그러움이다.
  • (裕):타인과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풍요로움이다.
  • (自):세상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자율성이다.
  • (適):지금 마주한 이 순간과 계절을 온전히 즐기는 편안함이다.

 

젊은 날의 삶이 무언가를 채워 넣는 '입력(Input)'의 시간이었다면, 만추의 삶은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내고 진짜 중요한 정수만 남기는 '비움(Emptiness)'의 시간이다. 나뭇잎이 스스로를 떨어뜨려 뿌리를 보호하듯, 우리도 삶의 장식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고고함(孤高)의 출발점이다. 고고함이란 타인보다 높이 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잡음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깊어지는 고요한 품격(Dignity)이다.

 

제3장: 문학적·학문적 유영(游泳) — 글과 더불어 거니는 삶

 

누구나 겪는 이 사색의 시간을 외로움이 아닌 '유영(游泳)'으로 승화시키는 가장 뛰어난 도구는 바로 ‘글과 언어’이다.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흘러가는 시간에 닻을 내리는 작업이자, 내면의 파도를 고요히 잠재우는 일이다.

우리가 가을날 홀로 앉아 글과 더불어 놀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먼저 가을을 맞이하고, 먼저 늙어감을 고민했던 위대한 문장가들과 고요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조선 중기의 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벼슬을 내려놓고 도산에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사색할 때 비로소 삶의 궁극적 평온을 찾았다. 그가 남긴 수많은, 시문들은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난 선비의 고고함과 깊은 안식의 울림을 전해준다. 현대의 문학가들도 만추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수많은 미학적 언어로 노래했다.

글과 더불어 유영한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의 문학적 실천을 의미한다.

 

  • (觀照)의 글쓰기:

 

  • 삶에 일어났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를 마치 타인의 이야기처럼 객관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노을 빛에 물든 과거는 더 이상 아픔이 아니라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가 된다.

 

  • (飛翔)의 독서:

 

  • 철학과 문학을 거닐며, 인류가 축적해 온 지혜의 정수를 천천히 음미하는 일이다. 빨리 읽는 독서가 아니라, 한 구절을 읽고 찻잔을 들며 오래 생각하는 '느린 독서'야말로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지적 여유이다.

 

  • 정화(Purification):

 

  • 가벼운 세속의 언어를 씻어내고, 묵직하고 깊이 있는 언어를 내면의 등불로 삼는 것이다.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을 읽고 쓸 때, 내 영혼 또한 그 언어의 결을 닮아 고고해진다.

 

종장(終章): 고고하고 느리게, 깊이와 울림을 향하여

 

이제 10월의 깊은 밤이 찾아오고, 창밖의 귀뚜라미 소리는 서서히 잦아든다. 차가워지는 밤공기 속에서 찻잔을 감싸 쥐며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늙어간다는 것은 나무의 나이테가 늘어가는 것과 같다. 겉으로 보이는 나무의 지름은 커지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안쪽에 촘촘히 쌓여가는 단단한 나이테이다. 나이테가 밀도 있게 쌓인 나무일수록 비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그 목재에서는 오랫동안 그윽한 향기가 흘러나온다.

내 앞으로의 삶은 단단한 나이테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세상을 향해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스스로를 독촉하지도 않을 것이다.

  • 느리게 걸을 것이다.길가의 작은 야생화와 지는 낙엽의 결을 유심히 살피며 걸을 것이다.
  • 깊게 생각할 것이다.현상 너머의 본질을 바라보며, 삶의 순간마다 숨겨진 은총을 발견할 것이다.
  • 고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세속의 소음과 평판에 흔들리지 않고, 내 마음의 평형을 지킬 것이다.
  • 기꺼이 나이 들 것이다.쇠락을 서러워하기보다, 완성으로 다가가는 계절의 이치를 온몸으로 감사히 받아들일 것이다.

 

마음 한구석의 씁쓸함은 어느새 짙은 한 잔의 블랙커피처럼 그윽한 향기로 바뀌어 있다. 흔들림마저도 풍경이 되는 나이, 스러짐마저도 아름다움이 되는 가을. 나는 오늘, 10월의 가을빛을 묵직하게 입고 내 삶의 다음 장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아주 기품 있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 만추(晩秋)의 계절에 나에게 선물하는 가장 고귀한 단어는 바로 이것이다.

“여유자작(餘裕自適), 그리고 거룩한 수용.”

 

2026. 10.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소백산 전경]

 

류남신 취재본부장
BlinkH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