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부천문화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천의 독립운동가 재조명

9월 9일(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천의 독립운동가들’ 주제로 특강 성료

최홍석 경기도 총괄본부장 2026.09.10 11:59




(부천시 제공)



[금요저널] 부천문화원은 지난 9월 9일 ‘부천시 항일독립운동 연구지원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천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특강을 개최했다.

부천한옥체험마을에서 진행된 이번 특강은 부천문화원의 연구위원들과 외부 전문가가 강사로 참여해 전문적인 지식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구한말 활동한 남광원 의병장의 일대기, 1920년대 일어난 부천의 대규모 소작료 반대 항쟁, 1940년대의 부천의 대표 민족기업인 유한양행 직원들의 항일활동까지 소개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부천시 복지정책과에서 후원하는 이번 사업은 ‘부천시사’나 ‘디지털부천문화대전’에도 상세히 기록되지 않은 부천 출신 혹은 부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발굴, 연구하고 시민들에게 지식을 공유하고자, 부천문화원에서 기획한 사업이다.

먼저 시민들에게 부천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특강은 고즈넉한 한옥에서 진행됐다.

부천학연구소 김희태 소장의 환영사에 이어 부천학연구소의 권만용 연구위원이 부천시 원종동 출신의 의병장 남광원의 가계와 의병 활동을 돌아보는 강의로 시작됐다.

남광원 의병장은 의령남씨로 과거 부천군 오정면 원종리 출신이다.

구한말 의료기관인 광제원의 사무위원으로 재직하다 을사늑약 이후 의병 활동을 위해 온 가족을 이끌고 전북 군산의 임피면으로 이주한 인물이다.

그동안 임피면 지역에서의 의병활동에 대해서만 알려졌지만, 부천의 세거 집안인 의령남씨 충간공파의 일족이라는 점, 최소 5대조 이상 부천에서 세거한 집안이라는 사실이 이번 특강을 통해 밝혀지게 됐다.

한편 남광원 의병장의 후손이 전북 익산에서 남광원 의병장의 묘역과 묘비를 조성한 사실도 이번 특강을 통해 처음 알려져 그 의미를 더했다.

이어진 1920년대 일어난 부천의 대표적 농민항쟁인 ‘부평수리조합비 거부 운동’과 ‘소작료 반대 항쟁’에 대한 강의가 부천학연구소 장정규 연구위원에 의해 진행됐다.

장정규 위원은 2025년 부천학연구소에서 진행한 부평수리조합의 자료 수집을 기반으로 해 1920년대 일제의 토지수탈을 주도한 토지개량사업을 위해 마련된 ‘부평수리조합’에 대해 소개하고 이로 인해 일어난 부천의 원주민이 대부분인 소작농들의 수리조합비 거부 운동과 농민조합 결성 후 진행된 소작료 반대 항쟁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1910년을 전후에 일본인이 부천 지역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게 된 상황과 부평수리조합의 조합원도 대부분 일본인 지주였다는 점, 일본인 지주들이 조합비를 소작농에게 부과하려 했다는 점 등을 알려 당시 농민들의 울분이 어느 정도였을지를 짐작케 하는 강연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부천의 대표적 민족기업인 유한양행과 유일한 박사의 항일활동, 1940년대 전개된 유한양행 직원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특강은 김명환 박사에 의해 진행됐다.

먼저 유일한 박사의 항일정신과 의지, 유한양행 창업 후에도 지속된 항일투쟁에 대한 의미를 알린 김명환 박사는 1940년대의 부천 지역의 상황을 소개하고 유한양행 직원들의 항일운동에 대해 소개했다.

이때 1940년대에는 독립운동의 활로가 거의 끊어진 상황에서 일제의 요시찰 기관인 유한양행 직원들이 어떤 계기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는지 살폈다.

이후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유한양행에서 일하던 엘리트들이 왜 조선 총독을 암살하고자 모의하게 되었는 지를 마지막으로 살피면서 모든 강의를 끝맺었다.

향후 부천문화원은 남광원 의병장부터 유한양행의 정문규, 오상흠에 이르는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이야기를 조사, 발굴해 학술성과 공유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부천문화원은 부천학연구소와 함께 11월 10일 제4차 부천문화원 지명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부천문화원 행사와 활동 등에 대해서는 부천문화원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최홍석 경기도 총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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