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언어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국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청문회와 공방이 이어지고, 정치권은 서로를 향해 책임을 묻지만 정작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문제에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국민이 정치보다 먼저 걱정하는 것은 오늘의 장바구니이고, 내일의 집값이며, 자녀의 일자리이고, 가게의 월세와 대출금이다. 정치가 아무리 거창한 말을 쏟아내도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말은 결국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만다. 나는 오래전부터 글은 백성이고 펜은 칼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책에 사인을 하면서 ‘글은 백성이고, 펜은 칼이다’라고 적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펜은 누구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권력의 오만과 사회의 모순, 정치의 위선과 시대의 허위를 도려내기 위한 비평의 칼이다. 그러므로 그 칼은 어느 한쪽만 향해서는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칼끝을 세울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말이라도 옳다면 옳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글의 양심이고 펜의 자유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 바로 이 원칙이다. 내가 하면 개혁이고 남이 하면 적폐라는 식의 정치, 내가 하면 정의이고 상대가 하면 범죄라는 식의 정치, 내가 속한 진영의 잘못에는 침묵하면서 상대 진영의 잘못에는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가 반복된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정치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자기편의 잘못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정치인이 어떤 말을 하는지보다 언제 같은 말을 했고, 누구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했는지를 기억한다. 과거에는 비판하던 일을 지금은 옹호하고, 자신들이 야당일 때 주장하던 원칙을 여당이 된 뒤에는 다른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국민에게 남는 것은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불신이다. 이른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정치권을 떠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는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국민에게 책임지는 기술이어야 한다.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적어도 같은 사안에는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원칙은 바뀌지 않아야 하고, 사람이 바뀌어도 법과 제도의 기준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국민이 정치에 요구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공정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정직하게 말해달라는 것이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삶을 먼저 생각해달라는 것이다.
경제와 민생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를 단순히 ‘모든 것이 최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지만, 국가 전체의 고용지표를 보면 2026년 8월 취업자는 2,915만1천명으로 전년보다 18만4천 명 증가했고 전체 실업률은 2.0%였다. 그러나 청년층 고용률은 44.1%로 1년 전보다 1.0%포인트 하락했고, 청년층 실업률은 5.4%로 0.5%포인트 상승했다. 숫자만 보면 고용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의 삶은 숫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취업을 해도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청년이 느끼는 불안은 통계표의 한 칸으로는 담을 수 없다. 청년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소득의 문제가 아니다. 독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결혼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따라서 청년 고용률의 하락을 단순한 월별 등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어떤 노동시장에 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주택 문제는 더욱 심각한 민생의 문제다. 집은 투자상품이기 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한국은행의 2026년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수도권 주택가격 오름세와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체의 성장 흐름과 별개로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면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현실은 통계상의 성장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집값이 오르고 대출 부담이 커지면 청년과 서민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어디에 살 것인가. 얼마를 빚내야 하는가. 월급에서 주거비를 얼마나 떼어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경제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현실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 집 건너 한집이 문을 닫는다는 표현을 그대로 통계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장사의 어려움과 상권의 양극화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특히 숙박·음식점업 취업자가 2026년 8월 전년보다 6만1천 명 감소한 통계는 서비스 현장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한다. 정부가 거시경제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과 국민이 체감하는 민생이 회복되는 것은 반드시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성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의 삶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장의 숫자가 어디로 흘러가는가이다.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자영업자가 다시, 장사를 할 수 있고, 서민이 감당할 수 있는 주거가 마련되고, 지방의 상권과 지역경제가 살아나야 국민은 비로소 경제가 좋아졌다고 느낄 것이다.
정치는 바로 그 지점을 바라보아야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단순한 정치적 숫자로만 볼 일이 아니지만, 한국갤럽이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37%, 부정평가가 56%로 나타났다. 같은 기관 조사에서 취임 후 긍정평가 최저치였으며, 부정평가 이유로는 부동산 정책과 인사, 경제·민생 등이 거론됐다. 물론 하나의 여론조사가 국민 전체의 뜻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조사기관과 시점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주목해야 할 것은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 뒤에 놓인 국민의 불만이다. 부동산, 인사, 경제와 민생이 반복해서 부정평가의 이유로 등장한다면 정부는 그 목소리를 단순한 정치적 공격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민의 지지율은 권력의 성적표가 아니라 국민이 보내는 신호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선거의 공정성과 국민의 참정권에 대한 신뢰다.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일부 지역의 투표용지 부족과 개표 과정 등에 관한 논란이 제기됐고, 이를 계기로 서울 올림픽공원 일대에서는 재선거와 당일 투표· 수 개표 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장기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9월 20일 보도에서는 해당 집회가 108일째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9월 말 현재 이 집회는 100일을 훌쩍 넘긴 장기 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선을 그어야 할 것이 있다. 시민들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법적으로 부정선거가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의혹과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최종적인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는 수사와 사법적 판단을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특검 수사가 중요하다. 현재 특검은 출범 이후 선거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9월 17일에는 중앙선관위와 여러 지역 선관위 등 10곳을 압수 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디지털 포렌식과 정보보안 분야 전문가도 수사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디지털 포렌식을 반드시 수사하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룰 내놔야 국민이 밑을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를 증거로 밝혀내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잘못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근거 없는 의혹이었다면 국민 앞에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특히 100일을 넘겨 이어지는 시민들의 집회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단순히 어느 한 진영의 정치적 행동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주장 전체가 사실인지의, 여부는 수사와 검증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거리로 나왔는지, 왜 선거제도에 의문을 품게 되었는지는 정치권과 선관위가 귀담아들어야 할 문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의심은 제도를 점검하게 만드는 경고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고음에 답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의혹을 무조건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민주주의가 아니고, 국민의 의문을 무조건 음모론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민주주의가 아니다. 확인하면 된다. 자료를 공개하고, 절차를 검증하고, 수사 결과를 국민에게 설명하면 된다.
선거의 신뢰는 어느 정당의 재산도 아니고 어느 대통령의 재산도 아니다. 선거는 국민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선거는 그 주권을 현실의 정치 권력으로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그러므로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을 때 필요한 것은 덮는 것도 아니고 부풀리는 것도 아니다. 끝까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인된 사실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다시 ‘펜은, 칼이다’라는 말을 생각한다. 칼은 사람을 베기 위한 것이 아니다. 썩은 곳을 도려내기 위한 것이다. 정치의 썩은 부분, 행정의 썩은 부분, 사회의 썩은 부분, 문화의 왜곡된 부분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다시 건강한 상식과 원칙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펜은 권력의 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펜은 국민의 편에 서되, 사실의 편에도 서야 한다. 국민의 분노를 대신 써주되 그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정확히 따져야 하고, 국민의 의혹을 대신 물어주되 근거가 없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평가의, 양심이다.
나는 어느 한쪽의 박수를 받기 위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칼끝을 세울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옳은 말을 한다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펜은 칼이 아니라 당파의 깃발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거창한 구호보다 원칙부터 회복해야 한다. 내가 하면 개혁이고 남이 하면 적폐라는 기준을 버려야 한다. 내 편의 잘못에는 침묵하고 상대의 잘못에는 분노하는 선택적 정의도 버려야 한다. 법 앞에 사람이 있고,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 국민보다 높은 권력은 없다. 국민보다 중요한 정치는 없다. 국민의 삶보다 우선하는 정책도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정치다. 청년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서민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주거를 마련하고, 자영업자에게는 다시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정치권은 서로의 과거를 들추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오늘의 민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말고 끝까지 사실을 밝혀야 한다. 사실이면 책임을 묻고, 사실이 아니면 깨끗하게 의혹을 해소하면 된다.
그것이 국민을 존중하는 정치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것.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정된 사실처럼 쓰지 않는 것.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되 국민의 분노를 이용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어느 진영에도 펜을 빌려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펜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백성이다. 백성이 울면 글도 울어야 하고, 백성이 분노하면 글도 그 분노의 이유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분노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 또한, 글의 의무다. 그리고 펜은 칼이다. 권력 앞에서는 더욱 날카로워야 하고, 거짓 앞에서는 더욱 냉정해야 하며, 국민 앞에서는 더욱 정직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해 휘두르는 정치적 칼이 아니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거짓과 무책임을 정확하게 도려내는 한 자루의 칼이다. 나는 그 칼을 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펜의 주인은 권력이 아니라 백성이다.
2026. 09. 29.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