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이천 쌀 축제에 즈음하여 : 쌀 축제는 그것을, 기억하는가]

-쌀의 명성을 자랑하기 전에 농민의 눈물을 살펴라, 이천시 농업정책의 본질을 묻는다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10.12 08:55

 

[필자]

쌀 한 톨은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너무나 크다. 봄날 논에 물을 대고 볍씨를 뿌리는 순간부터 농민의 시간은 시작된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 아래 허리를 굽히고, 장마와 태풍을 걱정하며, 병충해와 씨름하고, 가을바람에 벼가 익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기까지 농민은 한 해의 대부분을 논과 함께 살아간다. 남들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에도 농민의 일손은 멈추지 않는다. 남들이 풍요로운 밥상을 즐길 때도 농민은 다음 농사를 걱정한다.

 

우리 식탁에 놓인 밥 한 그릇은 그저 쌀로 지은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농민의 노동이며 인내이고, 가족의 생계를 지키려는 절박한 의지다. 쌀 한 톨에는 자연과 인간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으며,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 온 농민의 삶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천시에 묻고 싶다. 해마다 쌀 축제를 열어 이천 쌀의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은 중요하다. 지역 농업을 홍보하고 소비를 촉진하며,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는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축제의 화려한 무대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뒤편에서, 지금 농민들은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쌀의 명성을 이야기하면서 쌀을 생산하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축하하고 있는 것인가.

 

축제는 끝나면 무대가 철거되고 행사장은 정리된다. 하지만 농민의 삶은 축제 일정에 맞춰 끝나지 않는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에도 농민은 논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산비를 계산하고, 쌀값을 걱정하고, 농기계를 손보며, 내년에도 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천 쌀의 명성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이제 축제의 의미부터 한 단계 깊어져야 한다. 쌀을 자랑하는 축제에서 쌀을 생산하는 사람의 삶까지 책임 있게 돌아보는 축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쌀의 고장 이천이 농민과 시민에게 보여 주어야 할 진정한 품격이다.

 

1. 풍년이 들어도 농민의 마음이 풍요롭지 못한 현실

 

우리는 흔히 농민을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 우리 먹거리를 책임지는 고마운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농민을 칭찬하는 말과 농민이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다. 농민은 농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비용부터 부담한다. 종자와 비료, 농약, 농기계 연료와 수리비, 인건비 등 지출은 먼저 발생하지만, 그 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는 수확이 끝날 때까지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병충해의 위험까지 더해진다. 그런데 수확량이 많다고 반드시 농민의 형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풍년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더라도 쌀값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농민의 소득은 오히려 불안해질 수 있다. 반대로 작황이 나빠지면 수확량 감소와 생산비 부담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농민은 생산의 위험을 직접 떠안고 있지만, 시장의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다. 생산비는 오르는데 판매가격은 그만큼 오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더 열심히 일하고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 역설이 생긴다.

이것이 농민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농업의 구조적 문제다.

특히 고령 농민에게 농사는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다. 평생 살아온 삶의 방식이며,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을 지켜 온 시간이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바친 청춘의 흔적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쉽게 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직업 하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평생을 바쳐 가꾸어 온 삶의 터전과 작별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므로 농민의 어려움을 개인의 경영 능력이나 노력 부족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농업은 국민, 모두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생산하고, 국가의 식량안보를 지탱하며, 농촌 공동체와 지역의 생태환경을 유지하는 공공적 산업이다. 농민이 감당하는 위험을 농민 개인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농민에게 필요한 것은 행사장에서 건네는 감사의 말만이 아니다. 생산비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정책이다.

농민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들의 고생을 안타까워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고생이 가난과 불안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2. 농지 전수조사, 법의 원칙과 농민의 삶은 함께 살펴야 한다

 

최근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싸고 농민들의 불만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천지역에서도 농지 조사와 관련한 현장의 목소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민에게 자신의 농지가 조사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단순한 행정절차 이상의 불안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거나 농지를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이용하는 행위를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다. 농지는 한정된 자원이며 식량 생산의 토대다. 불법행위가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조사하고 조치해야 한다.

 

그러나 법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행정의 모든 집행 방식까지 무조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사람과 실제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은 구분해야 한다. 법의 원칙을 세우는 일과 그 원칙을 현장에 적용하는 일 사이에는 정확한 사실 확인과 세심한 판단이 필요하다. 행정자료에는 농지의 면적과 소유 관계, 취득 시기와 이용 현황이 기록된다. 그러나 농민의 삶은 그보다 복잡하다. 고령과 질병 때문에 직접 농기계를 운전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농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가족의 돌봄 문제나 일손 부족 때문에 농사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개별 사정이 있다고 해서 법적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서류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현장을 살피고 당사자의 설명을 듣는 절차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농민이 행정에 바라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정당하게 농사를 지어 온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공정하게 인정받고, 잘못된 판단으로 생업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행정은 조사 목적과 기준을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조사 대상자는 무엇을 확인받는지,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판단에 이견이 있을 때 어디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고령 농민이 복잡한 서류와 절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현장 상담과 행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사 과정에서 농민을 잠재적인 위법 행위자로 취급하는 듯한 태도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의심은 사실 확인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사실 확인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농민이 화를 내고 있다면 행정은 그 분노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것이 단순한 불만인지, 설명 부족에서 비롯된 불신인지, 실제로 부당한 부담이나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장의 모든 농민이 같은 이유로 분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농민들이 제기하는 우려를 일률적으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천시는 정부의 조사 방침을 전달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농민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실제 경작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정리해 관계 기관에 개선을 건의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억울한 사례가 확인된다면 신속하게 사실관계를 바로잡도록 지원해야 한다.

법의 공정성은 엄격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확한 판단과 충분한 설명, 공평한 절차가 함께할 때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농지 투기를 막는 일과 실제 농민을 보호하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농지 행정이라면 두 가지를 함께 실현해야 한다.

투기와 불법에는 엄정하되, 평생 농토를 지켜 온 농민에게는 공정해야 한다. 이것이 농지 행정이 지켜야 할 원칙이며, 이천시가 농민에게 보여 주어야 할 책임이다.

 

3. 쌀 축제의 성공을 농민의 소득으로 연결하라

 

이천 쌀은 지역의 자부심이며 오랜 시간 쌓아 온 농업의 자산이다. 품질을 관리하고 브랜드의 신뢰를 지키며 더 많은 소비자에게 이천 쌀의 가치를 알리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천 쌀의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농민의 삶도 나아지고 있는가.

쌀의 브랜드 가치와 농민의 실질소득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소비자가 이천 쌀을 좋은 쌀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생산비가 과도하게 들고 유통 과정에서 농민이 충분한 대가를 얻지 못한다면, 브랜드의 명성은 농가의 생활을 지탱하는 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쌀 축제의 성과를 방문객 수와 판매액, 홍보 효과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축제를 통해 늘어난 판매가 농민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이익으로 돌아갔는지, 축제에서 만난 소비자가 이후에도 이천 쌀을 구입하는지, 생산자들이 판로 확대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축제의 성공은 행사장의 규모가 아니라 농업 현장의 변화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천시는 몇 가지 정책적 과제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첫째, 농민의 소득 안정과 생산비 부담 완화를 농업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비료와 농약, 연료, 농기계 이용 비용 등 주요 생산비의 변화를 꾸준히 살피고, 기존 지원사업이 실제 농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특히 고령 농민과 소규모 농가가 지원제도를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거나 복잡한 신청절차 때문에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천 쌀의 브랜드 가치가 생산자의 몫으로 이어지는 유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생산자단체와 농협, 유통업체, 소비자가 협력해 직거래와 정기구매를 확대하고, 축제에서 확보한 소비자와의 관계를 연중 판매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쌀을 많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이 지속 가능한 가격을 받고 판매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농업의 위험을 농민 혼자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농업재해보험 등 기존 제도의 이용을 지원하고, 농작업 인력 부족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공동 작업과 농기계 이용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농업은 자연의 불확실성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동시에 감당하는 산업인 만큼, 위험을 분산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넷째, 고령 농민의 노동 부담을 줄이고 청년농의 정착을 지원해야 한다. 공동 육묘와 공동 방제, 농작업 대행, 농기계 공동 이용 등은 고령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청년농에게는 영농기술뿐 아니라 농지 이용과 판로 확보, 초기 경영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다섯째, 농민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상시적인 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 농지 관리와 생산비, 쌀값과 유통, 인력 수급과 농촌 복지 문제를 정기적으로 논의하고, 제기된 의견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예산과 제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농민의 어려움은 다음 해에도 반복될 것이다.

이천시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다. 농민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 가능한 과제부터 시작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며, 부족한 부분을 다시 고쳐 나가는 것이다.

 

4. 농민을 축제의 주인공으로 세운다는 것

 

축제에는 주인공이 있다. 무대에 서는 가수도 있고,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으며, 축제장을 찾아 즐기는 시민과 관광객도 있다.

그렇다면 쌀 축제의 가장 근본적인 주인공은 누구인가.

쌀을 생산하는 농민이다.

그러나 농민을 주인공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개막식에서 농민 대표를 소개하고 기념사진에 함께 서게 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농민의 노동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그들의 경험이 축제의 내용에 반영되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행정의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쌀 축제는 농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볍씨를 뿌리고 벼를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농민들이 실제로 겪는 생산비 부담과 기후변화, 일손 부족과 고령화의 현실을 시민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지 가르치고, 소비자들에게는 농산물의 가격이 단순히 판매자의 욕심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비와 노동, 유통 과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할 수 있다.

 

풍년의 기쁨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풍년 속에서도 소득이 불안할 수 있다는 현실, 농사를 이어 갈 다음 세대가 부족하다는 걱정, 농지 관리와 관련한 행정적 어려움도 함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농민의 어려움을 축제에 담는다고 해서 축제가 어두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공동체의 의지를 보여 줄 때 축제는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축제가 단순한 소비행사에 머물지 않고 농민과 소비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공론장이 된다면, 그 축제는 지역의 자긍심을 넘어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천시가 쌀 축제를 농업정책과 연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제에서 확인한 시민의 관심을 안정적인 소비로 이어 가고, 농민의 목소리를 정책 의제로 발전시키며, 축제가 끝난 뒤에도 약속이 지켜지는지 점검해야 한다.

축제의 진정한 성공은 마지막 공연이 끝나는 순간 결정되지 않는다. 농민이 논으로 돌아가면서 무엇이 달라졌다고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5. 농업을 지키는 것은 농민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농업을 농민만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농업의 생산 기반이 약해지면 식량 공급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고, 농촌 인구가 줄어들면 지역 공동체와 생활 기반도 함께 약해진다. 실제 경작자가 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농지가 생산의 기능을 잃어 간다면, 그 손실은 결국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한다.

 

식량안보는 단순히 쌀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실제로 농사를 지을 사람이 있는가, 농지를 이용할 수 있는가, 생산 기술과 경험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농민이 생산비와 소득의 불안을 견디지 못해 농사를 포기하는 일이 늘어난다면, 그것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사회와 행정이 충분히 마련했는지 되물어야 한다.

이천은 쌀의 명성을 지닌 도시다. 그 명성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논을 지켜 온 농민의 노동과 경험, 지역의 자연환경, 생산과 유통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함께 쌓아 올린 결과다.

그렇다면 이천의 쌀 브랜드를 지킨다는 것은 상품의 이름과 판매 실적을 지키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 브랜드를 만들어 낸 사람과 생산 기반을 지키는 일까지 포함해야 한다.

 

농업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쌀 생산량과 판매액뿐 아니라 농가의 실질소득이 얼마나 안정되었는지, 생산비 부담이 얼마나 완화되었는지, 고령 농민의 노동 여건이 개선되었는지, 청년 농업인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행정의 성과를 꾸미기 위한 숫자가 아니다. 정책이 실제로 누구의 삶을 바꾸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기준이다.

이천시가 쌀 축제의 성과를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연결해 평가한다면, 축제는 지역 홍보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6. 축제가 끝난 뒤에도 농민의 시간은 계속된다

 

축제는 끝난다. 무대는 철거되고 행사장은 정리되며, 방문객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농민의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농민은 수확을 마친 뒤에도 다음 농사를 준비한다. 농기계를 정비하고, 한 해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며, 내년의 날씨와 쌀값을 걱정한다. 풍년을 맞았다고 해서 다음 해의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천시는 쌀 축제의 성공을 자축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축제가 끝난 뒤 무엇을 바꿀 것인지 시민과 농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농민의 의견을 어떤 방식으로 수렴할 것인가. 생산비와 소득 안정에 어떤 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농지 전수조사 과정에서 제기된 우려를 어떻게 살필 것인가. 축제의 성과를 농가의 실질적인 이익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특히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갈등은 행정이 농민과 소통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농민의 불안을 듣고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며, 부당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농지 투기를 막는 일과 실제 농민의 생업을 보호하는 일은 함께 달성할 수 있다. 이천시는 그 두 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실현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관계 기관과 협력하며, 농민이 겪는 행정적 어려움을 줄이는 데 힘써야 한다.

농민에게 이천 쌀을 믿고 구입해 달라고 말하기 전에, 농민이 자신의 지역과 행정을 믿고 농사를 이어 갈 수 있는 조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광고 문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산자가 존중받고, 소비자가 품질을 믿으며, 행정이 공정하게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가치가 만들어진다.

쌀 축제를 개최하는 이유도 단지 쌀을 많이 팔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쌀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농업을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기반으로 인식하며, 다음 세대에도 농업이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해서여야 한다.

쌀 한 톨에는 농민의 시간이 담겨 있다. 봄의 기다림과 여름의 인내, 가을의 수확과 겨울의 계산이 들어 있다. 그 시간은 시장의 가격표 하나로 모두 설명되지 않으며, 축제 무대에서 건네는 감사의 말 몇 마디로 보상되지도 않는다.

농민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만이 아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안정적인 판로, 감당할 수 있는 생산비, 공정한 행정, 그리고 다음 해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제 이천시는 쌀 축제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쌀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그 명성을 만들어 온 농민의 삶까지 지키고 있는가. 축제의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축제를 통해 드러난 농업의 과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쌀을 자랑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쌀을 자랑하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쌀을 생산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축제를 성공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축제가 끝난 뒤에도 농민이 웃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쌀 한 톨의 가치를 말하려거든 그 쌀에 담긴 농민의 시간을 먼저 기억하라. 농민의 시간을 기억하려거든 그들의 아픔을 정책으로 바꾸어라. 그리고 그 정책이 실제로 삶을 바꾸도록 끝까지 책임져라.

이것이 쌀의 고장 이천이 축제를 통해 시민에게 보여 주어야 할 진정한 품격이며, 농업의 미래를 향해 행정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축제는 농민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농민의 삶을 바꾸는 실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쌀 축제가 끝난 뒤에도 농민의 희망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천 쌀의 명성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길이다.

 

2026. 10.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곡창지대]

 

이분희 취재본부장
BlinkH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