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시민단체 [호남역사 바로 세우기 국민연대] “일본서기는 위서다”라는 주제로 학술대회

‘전라도 천년사’ 발간 저지 운동 불붙어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3.07.02 17:12

전라도 천년사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편찬위원회 측에 맞서 <호남역사 바로 세우기 국민연대> 등 시도민 운동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전라도 천년사를 폐기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629일 목요일 오후 7시 전일빌딩에서 일본서기는 위서다라는 주제로 재야역사학자 이원희 변호사가 참여하는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전라도 1천사 발간 저지 학술대회1]

책 제목을 전라도 천년사로 못을 박음으로써 전라도역사가 실제 1천년 역사로 한정 축소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고조선 강역 논란, 동학농민 혁명, 지명을 일본서기에 근거해 비정하는 등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전라도 천년사는 편찬위원회가 기록한 전라도 지명에서 해남은 침미다례, 남원은 기문국, 장수는 반파국 등으로 기록되어 일본서기에 나온 지명을 비정(比定)하면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한편 편찬위원회 측은 일본서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증했다고 하지만 재야역사학자 이원희 변호사는일본서기는 창작된 사서 즉 위서(僞書)다라고 말한다.

[‘전라도 천년사’ 발간 저지 운동 불붙어2]

이원희 변호사는 경북 영천 출생으로 검사, 경남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연구한 저서로는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日本列島百濟語,속국 倭國에서 독립국 日本으로,일본천황과 귀족의 백제어가 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이원희 변호사 사무실.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382pixel, 세로 778pixel
[아래는 이원희 변호사가 밝힌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3]

전라도 천년사집필자측은 우리도 일본서기를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고,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신중하게 활용하여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 데에 극히 제한적으로 참고하였으니, 자신들의 비정은 정당하다고 반박한다.

 

집필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진실로 일본서기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신중하게 활용하였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라도 천년사  출간저지 학술강연4]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본서기는 창작된 사서 즉 위서(僞書)로서, 거기에 나오는 내용은 99.99999%가 허구이고, 역사적 진실은 단 0.0000001% 미만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다고 생각된다.

 

일본서기보다 약간 앞서는 고사기역시 마찬가지이고, 뒤에 나온 풍토기신찬성씨록은 이들 창작사서의 진실성을 보강하기 위하여 꾸며낸 책들이므로, 사료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적다.

전라도 천년사일본서기를 금과옥조로 여길까? 근본적으로일본서기가 어떤 성격의 책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말로는엄중하게 비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맹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5]

일본인 연구자의 눈으로 일본서기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천년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강단 사학자, 고고학자들의 일반적인 행태이기도 하기에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라도 천년사는 임나일본부는 부정하면서, 거기에 나오는 개별적인 사건은 실제 역사로 믿고는, 지명 비정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이 역사적 진실과 부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민단체의 반대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

따라서 임나일본부와 관련된 전라도 천년사의 모든 내용은 삭제하여야 마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료의 세계에서 배제되어야 할 창작기사를 사료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빈약하면 빈약한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일 것이다. 창작소설집인 일본서기를 이용하는 것은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황국사관의 농간에 놀아나는 결과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근세에는 우리가 힘이 약하여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만, 고대에는 문화와 모든 면에서 한국이 우위에 있었다고 믿는 한국인들의 소박한 역사인식은 100% 정당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을 비롯한 고위관료는 거의 전부 일본인이었으며, 100만에 가까운 일본인들이 건너와 지배층이 되었다.

 

그들이 곳곳에 마음대로 일본식 지명(경성, 중앙통 등)을 붙여놓았고, 건축이나 의복 등 일본식 문물이 대유행하였다. 한국어에도 무수한 일본어가 침투하여 지금도 남아있다.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고대의 왜국에서 벌어진 바있다. 백제가 왜국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전라도 천년사는 왜 칠지도나 이 많은 자료들은 누락하고, 임나일본부의 지명은 어찌 그리 중시하였을까? 강단 사학자들이 이병도 이래의 전통, 그리고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타성적으로 답습한 결과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승섭 연합취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