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

[2026년 한국문학의 좌표와 실천적 과제]

2026년 현재, 한국문학은 ‘K-문학’이라는 전략적 수사를 넘어 세계문학의 한 축으로 당당히 편입되었다. 한강의 성취가 증명한 것은 한국적 특수성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 고통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의 ‘미학적 보편성’이었다. 이제 한국 작가들에게 해외 문학상 후보 등재는 일상의 사건이 되었으며, 한국문학번역원의 전략 또한 ‘수출’ 중심에서 ‘현지 출판사와의 공동 기획 및 마케팅’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취 이면에는 ‘번역 가능한 문장’에 대한 무의식적 강박이라는 징후가 포착된다. 한국어 특유의 결과 질감을 덜어내고, 세계 시장의 눈높이에 맞춘 ‘매끄러운 서사’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혔으나, 역설적으로 한국어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깊은 심연의 언어들을 소거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2. ‘텍스트-힙(Text-Hip)’과 독자 주권의 재편 최근 20대와 30대를 중심으로 불어온 ‘텍스트-힙’ 트렌드는 고무적이다. 책을 읽고 소장하는 행위가 하나의 문화적 취향이자 ‘멋’으로 정의되면서, 침체 되었던 종간 문학 시장에 활력이 돌고 있다. 특히 양귀자의 《모순》 같은 고전적 텍스트의 재소환이나, 한로로와 같은 젊은 아티스트들의 문학적 접근은 문학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그러나 이러한 ‘애착 자본(Affection Capital)’중심의 독서 문화는 문학을 자칫 소비재나 소품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독자는 이제 평론가의 권위 있는 해석보다 SNS상의 공유된 감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비평의 위기’인 동시에 ‘비평의 민주화’이기도 하다. 문학은 이제 광장으로 나왔으나, 그 광장에서 우리가 나누는 담론이 서사의 구조적 깊이보다 ‘위로와 공감’이라는 휘발성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 3. 장르의 하이브리드화와 AI라는 거울 2026년 한국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순수문학(Pure Literature)과 장르문학(Genre Fiction)의 완전한 경계 해체다. 정보라, 구병모 등으로 대표되는 ‘스윗 스팟(Sweet Spot)’—즉, 문학적 사유와 장르적 쾌감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문단의 중심을 차지했다. 이는 서사의 확장을 가져왔으며, 웹소설과 웹툰으로 이어지는 IP(지식재산권) 확장을 통해 문학의 생존 가능성을 증명했다. 여기에 더해 ‘AI 리셋’현상이 본격화되었다. 작가들은 이제 AI를 보조 도구로 삼아 방대한 자료를 처리하고 플롯을 점검한다. 하지만 AI가 생성한 매끄러운 문장들 속에서 ‘인간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결함의 미학’은 더욱 소중해졌다. 2026년의 문학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비논리적 고통, 그리고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는 단독적인 목소리를 발굴하는 데 그 운명을 걸고 있다. 4. 제도적 안착과 비평의 새로운 책무 올해 말 개관을 앞둔 ‘국립한국문학관’은 한국문학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토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채우는 비평적 시선이다. 최근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적 비참’이나 ‘페미니즘 이후의 윤리’에 대한 치열한 논의는 여전히 한국문학이 사회적 등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평가는 이제 심판자가 아니라 ‘중재자이자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쏟아지는 신간의 홍수 속에서 미학적 가치를 선별하고, 독자들에게 텍스트 너머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경계 감수성’이 요구된다. 문학은 더 이상 고고한 상아탑에 머물 수 없으며, 플랫폼의 속도와 심연의 깊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5. 결론: 침묵의 자리를 위하여 한국문학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화려하다. 하지만 진정한 문학의 힘은 모두가 소리 높여 말할 때, 홀로 침묵하며 세계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데서 나온다. 2026년의 우리 작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글로벌한 성공이나 플랫폼에서의 흥행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단독적인 진실’을 포착해내는 일이다. 한국문학은 이제 변방의 슬픔을 딛고 세계의 중심에서 인간을 질문하고 있다. 이 질문이 멈추지 않는 한, 한국문학의 황금기는 잠시 머무는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가 될 것이다. [필자의 저서] [어느 한적한 호수가에서 필자] 2026. 02.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필자의 저서]

서릿발 칼날 위에 선 행정통합, 희망의 봄으로 갈 수 있는가

또다시 겨울, 봄은 오는가? 안동의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은 엄동설한에도 강철로 된 무지개를 노래하며 일제강점기의 매서운 현실 속에서도 독립의 희망을 외쳤다. 대한(大寒)을 지나 입춘(立春)이 되었건만, 영하의 강추위 속에 주민은 서로의 온기를 방패 삼아 피켓을 들고 비통한 심정으로 머리를 깎았다. 과연 누가, 이 삭풍 속에 지역민을 내몰았는가? 바로 경북대구 행정통합(이하 행정통합)의 재추진이 원인이다. 행정통합은 1월 20일 전격 재추진되었고, 형식적이나마 추진되던 설명회마저 생략한 채 열흘 남짓의 기간에 도의회 의견 청취, 특별법 발의 등의 후속 절차가 진행되었다. 행정통합의 원칙은 명확한 목표에서 나온다. 행정통합의 목표가 무엇이겠는가? 바로‘국토 균형발전’이다. 지방이 더 이상 국가정책의‘시혜나 배려의 대상’이 아닌‘국가성장의 자산’이 되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에 따라 추진되는 행정통합의 대원칙은‘균형발전’이 되어야 마땅하다. 지역 내 성장 불균형도 해결하지 못한 채 추진되는 행정통합이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겠는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대구를 뉴욕처럼 경제 중심으로, 안동을 워싱턴처럼 행정 중심으로 두는 전략만이 지역 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처방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경상북도청을 통합특별시의 소재지로 명시하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행정통합의 절차가 완전할 수는 없으나 주민의 뜻을 최대한 수렴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부산·경남 행정통합은 다소 늦더라도 주민투표를 거치겠다는 원칙을 천명하였고,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행정통합은 큰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행정통합은 어떠한가? 불확실한 청사진으로 두 번이나 무산된 행정통합을 근거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에는 궁색하다. 절차적 정당성에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찬반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이다. 안동시는 수차례 행정통합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지방자치법 등에 명시하라고 요구해 왔다. 주민이 행정통합 시‘권한 이양과 재정 배분의 범위, 명확한 행정통합지원대책 등’을 근거로 찬반을 판단할 수 있고 그를 통한 숙의만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특별법안은 또 어떠한가? 총 335개 중 정부는 137개의 조항에 대해 불수용 의사를 표명했다. 나아가 국회 심의 시 불수용 범위가 늘어난다면 우리는 행정통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마저도 통합특별시에 집중되는 권한이라면, 이는 권한의 이양이 아닌권력의 이동에 그칠 것이다. 행정통합을 통한 지역의 주도적 성장을 창출하려면 중앙에서 이양되는 권한은 기초자치단체까지 과감히 이양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특별법안에 명시될 필요가 있다. 지역이 주도하는 진정한 발전모델의 시작점이 바로 기초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낙후된 지역에 정부의 행정통합지원대책을 의무적으로 배분하는 기준까지 특별법안에 명시한다면 균형적인 재정지출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균형발전을 위한 도민의 20년 숙의 결과인 경북도청 신도시는 도민과의 약속이며, 주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북부권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국립의과대학 유치는 특별법안과 관계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요즘 특별자치도가 위기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창출하는 해법으로 출범했지만, 실질적인 자치권과 재정 자립이 미약하여 특별법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빗발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행정통합에게 닥칠 미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행정통합에 있어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절차’이다. 균형성장이라는 대원칙을 방향삼아 주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는 절차적 민주성 확보만이, 조금 늦더라도 올바른 행정통합을 이루는 길이다. 경북 북부 주민을 비롯한 안동시민은 어느 때보다 사나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우수(雨水)와 경칩(驚蟄)이라는 절기를 거쳐야 비로소 봄이 오듯, 올바른 행정통합도 충분한 숙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매운 계절에 행정통합이라는 서릿발 칼날 위에 선 우리는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며, 경상북도와 안동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희망의 봄으로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

반도체클러스터, 왜 이천이어야 하는가.

반도체는 이제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가 전략자산이다. 그런 점에서 송석준 국회의원이 주도한「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결정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법을 어디에서 어떻게 실현하느냐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대규모 공장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연구와 실증, 소재·부품·장비 기업, 숙련된 인력, 그리고 안정적인 공급망이 가까운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산업은 비로소 움직인다. 세계 반도체 강국들이 클러스터를 단순한 집적지가 아니라 ‘공간 전략’으로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천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도시다. 이천은 제4차 수도권정비계획에서 용인·수원·화성·평택·안성과 함께 ‘스마트 반도체 벨트지역’으로 명시돼 있으며, 반도체 등 생산지원시설을 확충해야 할 대상지역이다. 이는 이천이 이미 국가 계획 속에서 반도체 산업을 떠받칠 역할을 부여받은 공간이라는 뜻이다. 현장 여건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한국세라믹기술원 이천분원과 반도체종합솔루션센터가 기술을 뒷받침하고 있고, 반도체인재양성센터와 한국폴리텍대학 이천 반도체 융복합교육센터, 이천제일고와 반도체 특화 이천과학고 설립 추진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 인재 양성 체계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이천의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반도체기업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강소기업들이 함께 입지해 실증과 협업이 가능한 생태계가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은 자연보전권역이라는 이유로 공업용지 면적, 공장 규모, 환경 규제 등 중첩된 제약에 묶여 있다.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핵심 거점을 40년도 넘은 구법의 획일적인 규제로 관리하는 것은 분명한 정책적 모순이다. 지금 이천에서 작동하지 않는 반도체 전략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완성되기 어렵다. 이제 해법은 분명하다. 이천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속히 지정하고, 반도체 중심 첨단산업에 한해 규제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규제 프리존으로 설계해야 한다. 이는 무분별한 완화가 아니라, 연구·실증 단계에서는 유연성을 높이고 환경 관리는 더 과학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반도체특별법은 이미 문을 열었다. 이제 그 문 안으로 무엇을 현실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국가계획에 포함돼 있고, 생태계가 작동하며, 즉시 실행이 가능한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접근이다. 이천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하는 선택이 있어야, 반도체특별법은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i-SMR 초도호기 경주 유치, 대한민국 에너지 백년대계의 해답이다

최근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유지하는 방침을 밝히면서, 차세대 원전 시장의 핵심으로 꼽히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초도호기 부지 선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여러 지자체가 유치 등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경제성·기술적 시너지·정책적 실현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때 경주시가 가장 현실적이고 준비된 후보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경주는 ‘원자력 전주기’가 집약된 국내 유일의 완결형 원자력 클러스터를 갖추고 있다. i-SMR 핵심 기술 개발과 실증을 담당할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곧 개소를 앞두고 있으며, 반경 5km 이내에는 SMR 모듈 제작을 위한 국가산업단지가 조성 중이다. 여기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중수로해체기술원까지 집적돼 있어 연구·실증·제조·운영·해체에 이르는 원전 전 생애주기를 한 지역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은 경주만의 강점이다. 둘째, 경주는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고 사업을 가장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최적지다. 월성원전 내 유휴부지와 이미 구축된 전력 계통망을 활용할 수 있어, 신규 부지 조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이는 i-SMR의 2030년대 초 상용화라는 국가 로드맵을 현실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조건이다. 셋째, 경주는 i-SMR의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실증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인근 포항의 철강 산업과 연계해 i-SMR에서 생산된 전기와 열로 청정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수소환원제철 공정에 활용하는 모델은 대한민국 탄소중립 전략의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안정적인 대규모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주는 i-SMR 산업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을 갖춘 도시다. 넷째, i-SMR을 활용한 탄소중립 도시 모델을 이미 실행 단계에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주의 경쟁력은 분명하다. 경주시는 지난 2024년 4월,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SMR을 활용한 탄소중립 도시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SMR 국가산업단지와 테크노폴리스 조성, 무탄소에너지 활성화 등 SMR 기반 탄소중립 실현에 상호 협력하기로 뜻을 모은 바 있다. 마지막으로, 경주시민들의 높은 원전 수용성과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경주는 수십 년간 국가 에너지 안보를 떠받쳐 온 도시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책임 있는 선택은 국책사업을 사회적 갈등 없이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i-SMR 초도호기 부지 선정은 단순한 지자체 간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에너지 전략의 효율성과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국가적 선택이다. 연구와 실증, 제조와 운영, 그리고 탄소중립 도시 적용까지 한곳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주는 i-SMR 초도호기의 취지와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도시다.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재도약과 에너지 주권 강화를 위해, i-SMR의 첫 발걸음이 경주에서 시작되는 것은 그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할 역사적 당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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