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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를 제향한 파주 자운서원이 애초 천현면 호명산에서 휴암 백인걸과 자운서원 사액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파주 3대 서원이 휴암 백인걸을 제향하기 위해 3단계(건립·합사·분사 과정)를 거쳤다는 연구서도 처음 나왔다. 15일 파주문화원(원장 박재홍)에 따르면 파주문화원은 백인걸(1497~1579)의 생애를 다룬 단행본(318쪽) ‘청백리 유학자 휴암 백인걸의 삶과 사상’을 발간했다. 휴암은 파주 성리학의 정점으로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율곡의 사상과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 휴암의 삶을 알아야 하고 휴암을 이해하기 위해선 율곡의 글을 살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실제 휴암이 상소할 때 율곡의 문장을 인용했다고 비난을 받았을 때도 “율곡의 문장과 식견이 뛰어나 윤색했다”고 할 정도로 율곡을 아꼈다고 평가했다. 파주 월롱산의 한 자락인 휴암(休庵)을 호로 쓴 백인걸과 율곡의 연관성은 자운서원의 합사와 분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자운서원은 당시 천현면 호명산과 법원읍 자운산 등의 두 시기로 나뉜다. 1628년 호명산 사당에는 동사(동쪽 사당)에 율곡(당초 1609년 자운산에 있던 사당을 옮김), 서사는 휴암 사당을 별도로 건립했다. 그러다 1650년 효종 때 휴암 증손 백홍우의 청원으로 자운(紫雲)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686년 호명산 자운서원이 자연재해로 무너지자 36년 만에 율곡사당은 본래 있던 자운산으로 옮겨가 자운서원으로, 휴암을 단독 제향하려던 파주 용주서원이 사액을 못 받자 임시로 있던 파산서원에 그대로 청송 성수침 등과 병향됐다. 휴암과 우계 성혼의 관계도 밝혀졌다. 성혼의 부친 성수침은 휴암과 조광조의 동문이다. 그는 아들 성혼을 휴암 문하에서 공부하게 해 휴암 외손녀가 성혼의 아들 성문준과 혼인한다. 사제관계로서 휴암 행장(8천276자)은 우계가 썼다. 1682년 송시열은 신도비문을 완성했다. 박재홍 원장은 “청백리 반열에 올랐던 휴암 평전 발간은 휴암과 기호철학 종장 율곡 및 우계 연관성으로 파주의 가치를 더 높일 뜻깊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저자인 차문성 파주학연구소장은 “휴암 백인걸은 사상계와 파주에 큰 영향을 줬으나 학계 등에서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며 “단행본을 계기로 파주 3대서원(자운서원, 파산서원, 용주서원)의 통합적 문화콘텐츠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여주박물관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과 공동 주최로 2024년 7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여주박물관 여마관 1층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억상자’ 전시를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억상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제작한 이동형 전시 콘텐츠로, 2023년부터 각 지역의 독립기념관에서 순회 전시되고 있다. 이번에는 여주박물관에서 개최하게 되어 의미가 크다. 여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군무부장으로 활동한 조성환 선생과 선전부장을 역임한 엄항섭 선생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부터 독립을 위한 외교·군사 활동, 1945년 광복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그리고 1948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건립까지의 역사가 소개된다. 또한,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는 유물과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이해를 돕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여주 출신 독립운동가 조성환과 엄항섭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소개하며 관련 유물이 전시된다. 전시 장소는 여주박물관 여마관 1층 로비 전시홀이며, 전시 기간은 2024년 7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이다. 개막식은 2024년 7월 9일 오후 1시 30분에 개최되며, 그룹 오션(5tion) 출신 이현이 뮤지컬 ‘영웅’의 대표곡을 부르는 개막식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여주박물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자세한 문의는 031-887-3583으로 하면 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국회의원(광주 광산구갑)은 11월 24일(목) 오전 9시 국회 소통관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시민주권운동중점,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동인문학상 수상 예정자에 수상거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재차 가졌다. 동인문학상은 친일파 김동인을 기념하는 상으로 1955년 제정돼 1978년부터 조선일보가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민족의 아픔이나 약자의 아픔을 돌아보는 윤리의식을 가진 작가를 수상 후보자로 삼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김동인은 일본의 전쟁 범죄를 옹호하고 제국주의를 찬양한 대표적 친일파다. 11월 14일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시민주권운동중점,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의원실, 한국작가회의가 함께 모여 조해진 작가에게 동인 문학상 수상 거부를 요청했다. 인동문학상은 친일파 기념상인 동인문학상을 폐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만든 대안 문학상이다. 작품과 작가의 행위를 모두 평가한다는 점에서 기존 문학상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은 658명의 시민이 참여한 명칭 공모전을 통해 결정됐다. 동인의 역어逆語이자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동인문학상 수상 거부 여부가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53번째 동인문학상 후보자로 오른 조해진 작가의 동인문학상 수상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이용빈 의원은 “지난 14일 당시 저희는 올해 제53회 동인문학상의 유일한 후보인 조해진 소설가에게 동인문학상 수상을 거절하고 인동 문학상을 수상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도 어떠한 공식적 회신을 받지 못했다”며, “이에 제1회 인동 문학상 수상자는 없지만, 부디 조해진 작가께서 친일파 기념상인 동인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시길 다시 한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동인문학상은 친일파 기념상으로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문학상입니다. 1955년에 소설가 김동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 김동인은 태평양전쟁에 젊은이들을 나가 죽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을 찬양한 대표적인 문인입니다. 2009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그의 친일 활동을 반민족행위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은 올해로 53주년을 맞았습니다. 조선일보는 매해 친일파 기념문학상인 동인문학상 후보를 미리 공개하고 이들 중 하나에 상을 주고 있습니다. 매해 6명에서 4명의 후보가 공개됩니다. 저희는 이 후보들을 인동문학상 후보로 삼아 동인문학상 거부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고자 합니다. 친일파 기념문학상을 거부했을 경우 인동문학상을 드릴 예정입니다. 인동문학상은 시민들 손에 의해 이름이 정해지고 그 방향성이 정해졌습니다. 열흘 전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 이상의 말로 동인문학상을 대체하는 새로운 문학상인 인동문학상의 제정을 발표하였습니다. 우리는 기자회견 후 바로 제53회 동인문학상의 수상자로 예정된 조해진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내어 인동문학상 제정의 취지와 당신이 인동문학상의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22일까지 동인문학상 수상 거부 의사를 표명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22일까지 답신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의사가 조해진 작가에게 닿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조해진 작가와 소통하였습니다. 조해진 작가는 인동문학상의 제정 사실 등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해진 작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소상히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소통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조해진 작가는 동인문학상의 수상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조해진 작가는 22일까지 동인문학상 수상 거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형식에 따라 오늘 이 기자회견의 제목을 ‘수상자 없음’으로 정했습니다. 현수막도 그리 제작하였습니다. 제53회 동인문학상 수상식은 내일 오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아직 조해진 작가에게는 하루의 생각할 시간이 더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루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조해진 작가에게 다시 한 번 요청합니다. 친일파 기념상인 동인문학상을 거부해주십시오. 제1회 인동문학상 수상자는 없습니다. 잠정적으로 그렇습니다. 2022. 11. 24.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시민주권운동중점, 국회의원 이용빈, 한국작가회의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금요저널] 안성은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인 안성시장을 보유한 내륙 교통의 요충지로 안성~천안 간 왕복 열차가 하루 3회 운행됐던 지역이다. 현재는 철도가 폐선됐으나 아직도 미양역이 있던 지역은 ‘역전마을’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안성시 미양면 역전마을이 안성시시민활동통합지원단의 ‘2022년 동네 어르신과 함께, 안성맞춤 마을공동체 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역전마을은 주민 단합을 도모하고 살아있는 역사를 남기고자 이번 안성시시민활동통합지원단 공모사업을 통해 마을 유래비를 건립할 예정이다. 안성과 천안을 오갔던 학생들의 통학열차 추억과 안성장·천안장으로 봇짐장수들이 지역 생산물 등을 이고 진 채 기차를 이용했던 안성 철로의 역사를 기록하게 됐다. 여우석 역전마을 이장은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마을 유래비 건립 외에 금화규 꽃차 및 공동체밭 공동 경작하기도 진행하고 있다 수확물의 일부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작은 즐거움의 날’ 행사를 열어 불우이웃들과 함께 나눌 계획”이라며 “마을 주민들의 애향심 및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by 손창규 안성 취재본[금요저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오는 15일 오전 11시부터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 영릉에서 세종대왕 탄신 625돌을 기념하는 숭모제전을 개최한다. 숭모제전은 한글 창제를 비롯해 국방, 과학,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리는 행사이다. 세종대왕릉 정자각에서 거행되는 숭모제향은 초헌관의 분향과 헌작, 축관의 축문 낭독, 문화재청장의 대통령 명의 화환 헌화와 분향, 축사의 순서로 진행된다. 또한, 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세종대왕의 북방 영토 개척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 ‘세종, 우리 옛 땅을 되찾다’를 6월 26일까지 개최한다. 숭모제전이 열리는 15일이 휴일인 점을 고려해 행사장 내에 일반관람객의 참관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며 세종대왕의 탄신을 기리는 뜻으로 세종대왕 영릉과 효종대왕 영릉을 국민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앞으로도 세계유산인 영릉과 영릉을 온전히 보존하고 다양한 활용프로그램을 개발해 세종대왕의 위업을 선양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양산의 역사인물을 대표하는 삼장수 문중에서 보관중이던 미공개 고문헌이 대거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장수는 양산이씨 시조인 이전생의 세 아들로 이징석, 이징옥, 이징규 등 조선초기를 대표장수이며 양산을 대표하는 명문가이다. 이번 발견은 이달 초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 삼장수 생가터를 정리하던 중 별도에 보관중인 목궤안에서 발견한 것으로 이근수 씨가 시립박물관에 알려오면서 확인됐다. 발견된 고문헌은 양산이씨가첩, 조선중기의 상서문, 집안의 내력을 알 수 있는 호적 관련 문서 서간문, 고서 등 총 127점에 달한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문서류는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 문건으로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집안의 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들로 매우 귀중한 역사자료라는 것. 특히 경상 감영에 올렸던 상서문과 서간문 등은 당시 지역사회의 소사를 알 수 있는 문건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박물관에서는 문건들의 보관과 고증을 위해 박물관으로 임시 이관한 상태이며 향후 문건의 정확한 해제를 위한 연구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발견을 계기로 시에서 현재 추진 중인 ‘삼장수마을’관광화 사업과 ‘이징석 장군묘’문화재 지정사업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향후 삼장수마을 테마체험관 건립을 포함해 인물, 장소, 전설, 유물을 포함한 융복합형 문화관광에 대한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발견된 고문서류는 문중과 협의해 기초조사를 마친 후 문화재 지정절차와 함께 순차적으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박물관에 보관중인 삼장수 관련 문서는 보물 1001호로 지정된 문서를 포함해 총 131건 143점이 있다.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은 “이렇게 많은 삼장수 집안의 고문서들이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보관됐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이번 발견으로 양산지역의 역사 정체성 확보에 획기적 자료가 될 것이며 향후 삼장수 문중의 단독특별전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수원화성박물관이 소장한 ‘경국대전’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이 3일 보물 지정을 예고한 ‘경국대전’은 조선의 통치체제를 규정한 최고의 성문법전이다. 세조는 즉위년부터 노사신·최항·서거정 등에 “새로운 법전을 편찬하라” 명했고 몇 차례 수정과 증보를 거쳐 1485년에 ‘경국대전’이 완성됐다. 을사년에 완성돼 ‘을사대전’이라고도 불린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본은 16세기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경국대전’으로 권4·권5·권6의 내용이 2책에 걸쳐 수록돼 있다. 금속활자로 간행된 ‘경국대전’ 중에서 권4~6에 해당하는 국내 유일본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경국대전’은 2016년 11월 보물로 지정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조선경국전’과 더불어 조선시대 법제사와 제도사 연구의 핵심이 되는 문헌이다. 금속활자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경국대전’이 16세기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을사대전’이며 ‘경국대전’의 인쇄본으로 이보다 더 앞선 사례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기에 희소성이 크고 ‘경국대전’ 권4~6에 해당하는 국내 유일본으로 조선왕조 통치의 기틀을 다진 법전으로써 역사적 상징성이 있고 이미 보물로 지정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조선경국전’의 맥을 잇고 있어 학술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헌이라고 인정했다. ‘경국대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구상한 통치 이념과 정치 체제가 반영된 법전이다. 조선 후기 개혁정치를 꿈꾼 정조가 국정운영의 요체로 ‘대전통편’을 펴내는 데 중요한 기틀이 됐다. 조선의 주요 법전을 모두 소장한 수원화성박물관은 조선 법제사 연구의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지정 예고 기간 이후인 6월 초 최종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확정 고시가 이뤄질 예정이다. 수원화성박물관 관계자는 “개관 이후 지금까지 매년 진행한 유물 구입으로 귀중한 유물을 다수 소장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의 확보에 힘써 역사문화도시 수원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최근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터가 좋지 않아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대부분 불행했던 것이라며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굳이 풍수지리가 아니더라도 본래 청와대 터가 조선시대 칠궁과 같은 사당이나 호위무사 연습 터로 쓰던 자리였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도 또한 있다. 글쓴이 : 김수한 이러한 여러 가지 잡음 속에 드디어 2022년 5월10일 개방하는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회의실 및 주거실 등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경호실·춘추관·영빈관 등 부속 건물로 되어 있고 넓은 정원과 북악산(北岳山)으로 이어지는 후원(後園) 및 연못이 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1960년 8월까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명명으로 제1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명 ‘경무대(景武臺)’로 불려오다가, 그 해 8월 13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尹潽善)이 선출되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명하였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으로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이 경무대는 어영(御營: 조선시대, 인조반정 뒤에 조직한 군대의 하나)의 연무장(鍊武場)이나 과거장(科擧場)으로서, 또는 친경(親耕)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울안에는 원래 융무당(隆武堂)과 경농재(慶農齋: 조선 말엽 경복궁의 뒤뜰에 있던, 각 도의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못됨을 알아보던 집) 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 후 1927년 일제에 의하여 헐리고, 일본인이 조선총독 관저를 건립하였다. 이곳을 제7·8·9대 조선총독이 관저로 사용하였고, 광복이 되어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Hodge, J. R.)중장이 사용하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한국정부로 이관되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동시에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통령 관저명으로 사용하였다. 이승만(재임 1948∼1960) 대통령은 6·25전쟁의 피난시절을 제외하고 1960년 4월까지 초대·2대·3대 대통령으로 보낸 12년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4·19혁명에 의한 하야와 함께 이화장(梨花莊)으로 옮겼다. 경무대라는 이름은 3·15대통령 부정선거 등 독재와 비정(秕政)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1960년 8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뒤 1963∼1979년(5∼9대) 박정희(朴正熙), 1979∼1980년(10대) 최규하(崔圭夏), 1980∼1988년(11∼12대) 전두환(全斗煥), 1988∼1993년(13대) 노태우(盧泰愚), 1993∼1998년(제14대) 김영삼(金泳三), 1998∼2003년(제15대) 김대중(金大中), 2003∼2008년(제16대) 노무현(盧武鉉), 2008∼2013년(제17대) 이명박(李明博), 2013~2017년(제18대)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거쳐 갔다. 2017년(제19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입주하였다. 청와대 ①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개최하는 건물로서 1978년 1월에 착공하여 그 해 12월에 준공이 되었다. 이 곳 영빈관은 말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며, 외국의 대통령이나 수상이 방문했을 때 우리 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사용된다. ②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장소이다. 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조 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으며, 우리 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八作)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약 30만 장이나 되는 청기와는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 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대통령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 식당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그리고 건물 앞의 넓은 잔디마당은 국빈환영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지는 곳이다. ③ 수궁(守宮)터인 지금 청와대가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吉地)로 알려져 890년 전인 고려시대에 이곳에는 남경의 이궁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 곳은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으며, 그 뒤 1868년(고종 5)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융무당·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이곳은 농사가·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미의 논이 있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다 허물고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8·9대 총독이 사용했다. 일본인들이 여기에 관사를 지은 것은 조선 왕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그 앞에 청사를 짓고 그 뒤편에는 총독관사를 지음으로써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지리학상 용맥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하여 이 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자 했던 것이다. 높은 곳에서 보면 총독관사 건물은 大(대)자의 모양을, 총독부 청사건물은 日(일)자의 모양을, 서울시청 건물은 本(본)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세 글자를 이으면 대일본이 된다. 그 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이곳은 미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청와대 건물은 1993년 11월 철거되었는데,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구 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하게 된 것이다. 철거 뒤 그 자리를 옛 모습대로 복구시킨 뒤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었다 하여 지금은 수궁터라 부르게 된 것이다. ④ 비서실별관(신관) 및 동별관은 비서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서, 신관은 1969년에, 동별관은 1972년에 건립되었다. ⑤ 상춘재(常春齋)는 1983년 4월 준공된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외빈접견 등에 사용되고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외국에서 손님이 와도 우리 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할 길이 없었던 차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하여 전통 한식가옥인 상춘재를 짓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연혁을 보면 현 상춘재 자리에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 관사로 건축된 일식 목조건물인 상춘실(약 20평)이 있었으나 1977년 12월에 철거하고, 이듬해 3월 천연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건물(약 22평)로 개축하여 상춘재(常春齋)라 명명하였다. 그 뒤 전통한식집을 형태 변경 없이 목재로 보수하는 공사를 1982년 11월 20일 착공하여 온돌방 1개와 대청마루가 있는 연건평 116평의 건물을 1983년 4월 5일 완공하였다. ⑥ 녹지원(綠地園)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채소밭이 있었고 일제 총독관저가 들어서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이 조성되었는데 1968년에 약 1,000여 평의 평지에 잔디를 심어 야외 행사장으로 이용했다.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1995년 5월 28일에는 인근 주민 약 3,000여 명을 초청하여 KBS 열린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또 주변에는 녹지원을 상징하는 소나무인 한국산 반송이 있는데 수령은 약 310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이다. 연혁을 보면 옛 경복궁의 후원으로 채소밭·가축사육장·온실 등의 부지였으며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는데 국내외 귀빈 및 외교사절단을 위한 야외 행사장,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⑦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 1990년 10월 25일 완공되었는데 형태는 전통한식(본채는 八作지붕의 겹처마에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이며 구성은 본채·별채·대문채·사랑채·회랑으로 되어 있다. ⑧ 춘추관(春秋館)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린 건물이다. 현재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 나라 언론사 기자 78명이 상주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로서 1층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담화발표 등을 하는 소회견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과 각종 문화행사 등을 하는 다목적실이 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오늘날의 자유언론의 정신을 잘 상징한다는 뜻에서 채택되었다. 고려시대 시정(그 당시의 정사)의 기록을 맡아오던 관청으로 고려 개국 초에는 사관이라 하다가 1308년(충렬왕 34) 이를 문한서에 병합하여 예문춘추관으로 고쳤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예문관과 갈라져 춘추관으로 독립했다. 춘추관은 다시 1356년(공민왕 5) 사관으로 개칭하였다가 1362년 다시 춘추관으로 되고 1389년에는 예문관을 합하여 예문춘추관으로 환원되었다. 조선 개국 당시에는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예문춘추관이라 하다가 1401년(태종 1) 예문관과 분리하여 춘추관으로 독립되었고,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청와대가 서울 시내에서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특별시의 중심인 종로구에 있다지만, 바로 뒤에 북악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은 경복궁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서 중심이라면 중심인데 중심이 아닌 느낌. 그래서 서울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구로 청와대 이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특히 용산기지 이전으로 청와대의 용산 이전론이 탄력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에서 청와대가 옮겨갈 만큼 넉넉한 부지가 용산 이외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용산 지하에 있는 벙커 등을 지하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고려되었다. 또한,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불필요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의 반대론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지만, 결국 윤석열 정부는 청와대를 2022년에 용산으로 이전하는 것을 확정하였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종로구가 4월 22일 오후 2시 숭인근린공원 내 동망봉에서 ‘제14회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제’를 개최한다. 단종비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고 종로와 정순왕후의 인연에 주목하며 지역의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이다. 지난 2008년을 시작으로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해 2020년을 제외하고 매해 꾸준히 추진해 왔으며 올해에는 거리두기 전면 해제에 따라 더욱 많은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들로 기획했다. 이번 추모제의 주제는 동정으로 정했다. 단종을 그리워하며 오랜 세월을 홀로 살다 간 왕후를 동정하는 마을 여인들의 마음이 500여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정순왕후를 기리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는 뜻을 담았다. 여산 송씨 종친회와 구청 관계자, 인근 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2시부터 식전공연 인사 말씀 추모공연 추모제례 기념 촬영 순으로 이어진다. ‘식전공연’을 위해서는 퓨전국악팀 하나연과 비보이들이 함께 정순왕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통국악기와 춤으로 풀어내고 ‘추모공연’은 창작무용·타악 퍼포먼스 그룹 아작이 맡아 왕후의 혼을 위로하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제례’ 봉행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이끌 예정이다. 한편 1454년 어린 나이에 왕비에 책봉된 정순왕후 송씨는 단종이 왕위를 세조에게 일임하고 상왕이 되면서 왕대비가 되지만, 단종이 영월로 유배됨에 따라 궁에서 쫓겨나 관비로 전락한다. 단종 승하 후에는 날마다 동망봉에 올라 그의 명복을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에 종로구는 정순왕후가 머물렀던 청룡사, 정업원 터, 단종의 안위를 빌기 위해 매일 올랐다는 동망봉,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 마지막 인사를 나눈 영도교 등 관련 유적지를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숭인동’ 골목길 탐방 코스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정순왕후의 한 많았던 삶과 조선왕조의 역사에 대해 배우는 숭인동 코스를 포함해 종로 구석구석에 얽힌 해설을 듣고 관광하는 ‘해설사 프로그램’은 구청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 후 이용하면 된다. 구 관계자는 “매해 4월마다 정순왕후 추모제를 통해 후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알리는 시간을 가져왔다”고 설명하면서 “지난했던 정순왕후의 삶을 기리는 올해 추모제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오는 22일 11시 ‘성암 김재계 선생 80주기 추념식’을 거행한다고 밝혔다. 억불산 김재계 선생 묘역에서 열리는 추념식에는 김재계 선생 유족을 비롯한 1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행사는 약력보고 헌화 및 분향, 추념사 순으로 진행된다. 성암 김재계 선생은 우리민족 암흑기인 일제 치하의 시대에 종교인으로서 독립운동가와 민족교육자로 활동했다. 1906년 장흥군에 천도교당이 개설되자 천도교인이 되어 활동하면서 천도교 장흥교구의 발전에 정성을 기울였으며 1919년 장흥의 3·1만세 운동을 주도하며 3년간 옥고를 치뤘다. 이후에도 줄곧 천도교 선교와 아울러 사회교화 운동에 신명을 바쳤으며 자주독립을 기원하는 기도 운동과 독립자금 모금활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했다. 1938년 멸왜기도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해 1942년 6월 옥고로 인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다. 김재계 선생 환원 이후, 1987년 지금의 억불산 묘역으로 묘소 이장을 하면서 매년 4월 22일 김재계 선생 추념식을 개최해 선생의 애국정신을 계승해 위상을 높이고 있다. 장흥군 관계자는 “80주기를 맞아 김재계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광복회광명시지회는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을 맞아 4월 20일 오후 6시 광명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초빙해 강연회를 개최한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 쇼와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수뇌부를 응징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그해 12월 19일 가나자와 미고우시 일본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어 2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광복 후인 1946년 조국에 봉환되어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윤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강연을 맡은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많은 역사서를 저술하며 중국의 동북공정과 임나일본부설의 부당성을 역사적 고증자료로 반박하는 등 우리역사 바로알기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와 상하이 의거 관련해서 강연을 진행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김충한 광복회광명시지회장은 “이번 강연회에 많은 시민이 참석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에 대해 함께 고찰하고 역사인식과 나라사랑 정신 함양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전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가락국 제10대 구형왕과 계화왕후를 추모하는 제례인 덕양전 춘향대제가 지난 16일 산청군 금서면 덕양전에서 봉행됐다. 이날 제례는 이상률 경남경찰청장이 초헌관, 전보삼 전 문체부 문학진흥정책위원원장, 김길수 경남문화원연합회장이 종헌관으로 봉행 헌작했다. 또 지역 기관단체장과 전국 가락 문중·유림 등이 참석했다. 가야시대 대표 유적지 중 한곳인 덕양전은 지난 1983년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됐다. 덕양전은 인덕문과 함께 직사각형의 돌담을 두르고 그 안에 홍살문, 영전각, 안향각, 추모재, 동재, 서재, 해산루 등 건물이 들어서 있다. 경남도 우수 선현제례 행사로 선정된 덕양전 춘·추향대제는 매년 음력 3월 16일과 음력 9월 16일에 봉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덕양전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 보름에 삭망향례를 올림으로써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