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거나 문학 행사장에 갈 때면, 으레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 후배 시인이나 지망생들이 있다."선생님, 어떻게 하면 유명한 시인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내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자주 써야 한다"고 정석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들의 눈빛에는 '누구나 아는 뻔한 대답'이라는 묘한 실망감이 스치곤 한다.
나 역시 답답함을 느낀다.
시의 길에 '수학 공식' 같은 정답은 없기 때문이.
작가이자 먼저 시를 써온 선배로서, 오늘 그대들의 그 세속적이면서도 간절한 질문에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그리고 조금은 뼈아픈 답을 한다.
제1장. '유명세'와 '베스트셀러'의 본질을 직시하라
- '시'가 아니라 '시대의 결핍'이 만든다.
당신이 묻는 '베스트셀러 시집'은 단순히 시를 잘 썼다고 탄생하지 않으며 윤동주의 시가 시대를 관통하고, 나태주의 시가 현대인에게 위로가 된 것은 그들의 시가 당대 대중이 앓고 있던 '결핍'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만 파고드는 시, 자기 연민에 빠진 시는 일기장에 머물고 말지만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대중이 지갑을 열어 시집을 사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 시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해지고 싶다면 거울을 보는 대신 창밖을 보라.
지금 사람들이 무엇에 아파하고, 무엇에 외로워하며, 어떤 단어를 갈구하는지 시대의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 시인이 되려 하지 말고, 유일한 시인이 되어라 유명(有名)하다는 것은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뜻일 뿐이고 그러나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고유(固有)함'이다.
백석의 토속적인 언어, 기형도의 우울한 도시적 감수성처럼, 단 한 줄만 읽어도 "아, 이건 누구의 시다"라고 알 수 있는 자신만의 지문(指紋)이 있어야 한다.
남들이 쓴 성공한 시의 문법을 답습해서는 결코 유명해질 수 없으며 당신만의 고유한 세계관이 확립될 때, 비로소 대중은 당신의 이름표를 기억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제2장. "자주 써라"라는 말의 진짜 의미: 다작(多作)이 아닌 퇴고(推敲)
내가 "자주 써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매일같이 시를 공장처럼 찍어내라는 뜻이 아니다.
- 것은 배설일 뿐, 시가 아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단숨에 써 내려간 시를 명작이라 착각하지 마시라.
그것은 감정의 배설에 가까우며 진정한 시는 감정이 식은 뒤, 이성의 차가운 칼날로 문장을 해부하고 조립할 때 탄생하기 때문이다.
매의 눈으로 자신의 시를 냉혹하게 비판하라.
- 부사를 가차 없이 지워라: "아름다운 슬픔", "너무나 아픈 눈물" 같은 상투적인 수식어는 시의 힘을 죽이기에 감정을 직접 말하지 말고, 사물과 상황을 통해 보여야 한다.
- 낯선 조합을 실험하라: 상상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연결하는 것이기에 '슬픔'과 '식탁'을 연결하고, '그리움'과 '신호등'을 결합해 보시라.
뻔한 단어들의 충돌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 내어 읽어라: 시는 본래 노래였다.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는 천지 차이이며 호흡이 턱턱 막히는 구절이 있다면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제3장. 사물과 상상의 나래를 구체화하는 방법
"사물을 관찰하라"는 조언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론 제시
- 시선과 망원경의 시선 교차하기 무명 시인들의 시를 심사하다 보면 대부분 시선이 '나'에게만 고정되어 있거나, 너무 거창한 '우주', '생명' 등을 논하려다 공허해지는 경우를 본다.
길가의 잡초 하나, 버려진 종이컵 하나를 현미경처럼 미시적으로 관찰하라.
그 종이컵에 묻은 립스틱 자국에서 현대인의 고독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시인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 직업과 삶의 현장이 곧 시어(詩語)의 보고이며 시어는 사전 속에 있지 않다.
당신이 밥벌이하는 현장, 당신이 서 있는 지역에 가장 생생한 언어가 있으며 억지로 꾸며낸 고상한 단어보다 땀내 나는 삶의 언어가 독자의 가슴을 훨씬 더 강하게 타격하기 때문이다.
제4장. 어떻게 세상과 접속할 것인가 (대중문화적 접근)
작품만 좋으면 언젠가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은 낭만적인 착각이며 현대 사회에서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기획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 매체를 넘어, 독자가 있는 곳으로 가라.
정통 문단에 등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채널(블로그, 브런치 등)을 만들라.
가벼운 감성에 매몰되지 말고 당신만의 깊이를 유지한 채 플랫폼에 맞게 시를 노출하는 영리함이 필요하다.
- 공모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라.
첫 3행에서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뒤로 넘어가며 첫인상에 승부를 걸어라.
또한, 중앙 문단만 고집하지 말고 각 지자체나 예술재단의 지원 사업과 지역 공모전에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라.
작은 성취가 모여 이력과 평판을 만든다.
- 칼럼을 두려워하지 마라.
시만 쓰지 말고, 세상에 대한 시각을 산문이나 칼럼으로 써 보고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깊어질수록 시의 깊이도 함께 깊어지기 때문이다.
결어: 다시,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유명한 시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유명세는 목적지가 아니라 치열한 창작의 결과물로 따라오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 밤, "이 시는 내가 아니면 세상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글인가?"라는 질문 하나만 책상 위에 올려두시라
당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껴안으며 그렇게 당신만의 세계를 묵묵히 구축해 나갈 때, 어느 날 문득 세상이 당신의 시를 부르고 대중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또 시인의 자리에서, 언젠가 당신의 빛나는 이름 석 자와 심장을 울리는 시 한 편을 마주하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내려 놓을까 한다.
2026.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는 무엇으로 쓰는가] 출간 예정
저작권자 © 금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