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아직 끝나지 않은 나를 찾아서 ]

― 이루지 못한 삶의 파편과 고독에 관한 자기 성찰

류남신 취재본부장 2026.09.16 07:26

 

[필자]

문학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만큼의 문장을 쓴다는 것이다.

아무리 언어를 아름답게 꾸미고, 은유와 상징을 정교하게 세워놓아도 그 문장 깊숙한 곳에는 글쓴이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감추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 인간의 내면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읽을 때 시어의 아름다움만 바라보지 않는다.

반복되는 언어를 바라보고, 그 언어가 향하는 방향을 바라본다.

어떤 시인은 사랑을 반복하고, 어떤 시인은 자연을 반복하며, 어떤 시인은 죽음과 고독을 반복한다.

그 반복되는 언어 속에는 그 사람이 오랫동안 바라본 세계가 있다.

어쩌면 문학은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오래된 고백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그리워했을까?

 

 

1. 바람을 따라갔지만, 내가 찾은 것은 바람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내 시에는 계절이 자주 등장했다.

바람이 불었고, 꽃이 피었으며, 계절이 지나갔다.

나는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생각했고, 때로는 그 안에 현재의 삶을 비추어보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바람은 목적지가 아니었다.

바람은 그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징검다리였을 뿐이다.

내가 진짜 찾아 헤맸던 것은 풍경 너머에 있었다.

그것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어떤 감정이었다.

나는 그것을 지금에 와서야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리움에는 분명 대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내 그리움에는 뚜렷한 대상이 없다.

 

누구 한 사람을 향한 것도 아니었고, 특정한 장소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사랑 하나를 붙들고 평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마도 나는 살아내지 못한 삶의 어떤 가능성을 그리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2. 사랑보다 먼저 찾아온 결핍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은 흔히 사랑과 연결한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거나, 떠나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그리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나는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대상보다 사랑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더 오래 품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는 늘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상상의 벌판을 걸었다.

때로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고, 때로는 꿈이라 불렀으며, 때로는 정의라 불렀다.

어쩌면 그것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던 욕망이었을 수도 있다.

젊은 날에는 그것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그저 가슴속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 걸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많은 부분은 그렇게 름 없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3. 이루지 못한 것들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사람은 이루어진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을 오래 생각한다.

성공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지만, 실패한 일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왜 그랬을까.

조금만 다르게 했더라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그때 포기하지 않았다면.

삶을 오래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질문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과거가 더욱 자주 찾아온다.

젊은 날에는 미래가 나를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미래만 나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지나간 시간도 끊임없이 나를 불렀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다시 선택할 수 없는 순간.

끝내 이루지 못한 꿈.

그것들이 하나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때 나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불렀다.

 

4. 나는 왜 쉽게 고개를 숙이지 못했는가

 

내 삶을 돌아보면 정도와 의무감, 의리와 원칙이라는 말이 꽤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있었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타협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에는 나의 에고도 상당히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현실과 타협해서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보다는, 불편하더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싶어 했다.

현실은 교과서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교과서에는 정의가 선명하게 적혀 있지만, 교실에서의 정의는 때때로 침묵한다.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고,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런 현실을 오래 바라보면서 때로는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비판했다.

말했다.

그리고 행동하려 했다.

그 결과 나는 때때로 사람들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그 선택을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고개를 들고 자신의 생각을 지키며 사는 것이 더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길을 선택했다.

아마 그것 역시 내 삶을 만든 하나의 성질이었을 것이다.

 

5. 비판의 칼날 끝에는 고독이 있었다

 

비판하는 사람은 외롭다.

특히 다수가 침묵하는 곳에서 혼자 말하는 사람은 더 외롭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판은 때때로 고독을 부른다.

문학비평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반적인 평가와 다르면 쉽게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나는 평론가의 역할이 박수를 받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론가는 질문해야 한다.

왜 이 작품이 지금 나왔는가.

왜 사람들은 이 작품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무엇이 이 시대의 사람들을 웃게 하고 울게 하는가.

그리고 그 작품 뒤에서 시대가 감추고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

그래서 비평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다.

작품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을 통해 시대를 읽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은 나에게 단순한 공격의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틀렸을 것이다.

나의 판단에도 에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지나쳐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6. 고독은 나를 문장 앞으로 데려왔다

 

사람은 외로울 때 자신과 대화를 시작한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생각이 더 깊어진 순간들이 있었다.

고독은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고독은 나에게 하나의 방이 되었다.

그 방에서 나는 지나간 나를 만났고, 아직 오지 않은 나를 생각했으며, 세상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조금씩 문장이 되었다.

그때 알았다.

문장은 단순히 생각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문장은 생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썼다.

 

시를 쓰고, 수필을 쓰고, 칼럼을 썼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한 일이었다.

 

7. 그리움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모든 감정이 무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몸은 늙어가는데 마음속의 어떤 감정은 늙지 않는다.

그리움도 그렇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젊은 날에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무엇을 놓쳤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때 놓친 사람들, 그때 하지 못했던 말, 그때 이루지 못한 꿈,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

그 모든 것이 뒤늦게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어린아이처럼 막연한 동경을 품는다.

아직도 선하고 따뜻한 것을 원한다.

아직도 사람 사이에 진심이 있기를 바란다.

아직도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철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가끔 웃는다. “이 나이에도 아직 이러고 있구나.” 그러나 그 철없음마저 내게는 소중하다.

그것이 사라지면 내 마음속에서 꿈꾸는 힘도 함께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8. 내가 그리워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이제 다시 묻는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청춘이었을까.

성공이었을까.

아니면 이루지 못한 꿈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느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어쩌면 ‘가능했던 나’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다르게 살 수도 있었던 나.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던 나.

조금 더 용감할 수도 있었던 나.

조금 덜 고집스러울 수도 있었던 나.

그런 수많은 가능성의 내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들을 하나씩 돌아본다.

그때의 나를 꾸짖기보다 이제는 조금 이해해주고 싶다.

그때의 나도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을 테니까.

 

9. 2020년의 나에게

 

이 글의 처음은 오래전 내가 쓴 글에서 시작되었다. 202년 10월 10일.

그날의 나는 지금의 나와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때의 마음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본다. “너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찾고 있구나.” 그리고 그때의 내가 대답한다. “그래.

아직 찾지 못했어.” 그러면 나는 다시 묻는다. “무엇을 찾고 있는데?” 그 질문 앞에서 한동안 대답이 없다.

아마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어느 특정한 곳에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 속에 묻혀 있는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아직 살아보지 못한 미래의 나일 수도 있다.

결국 나는 나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모른다.

 

10. 아직 끝나지 않은 나를 찾아서

 

삶을 오래 살아보면 알게 된다.

인생은 성공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도 삶이고, 후회도 삶이며, 고독도 삶이다.

이루지 못한 꿈도 삶이고, 끝내 붙잡지 못한 사랑도 삶이며, 아직 완성하지 못한 나 자신도 삶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과거의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그때의 나에게도 그때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상처가 있었고,그때의 꿈이 있었으며, 그때의 어리석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그리움은 나를 괴롭히기만 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리움은 나에게 글을 쓰게 했고, 고독은 나에게 생각하게 했으며, 이루지 못한 꿈은 나에게 다시 꿈꾸게 했다.

그러니 그리움은 결핍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무엇인가를 믿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리움의 종착역을 찾지 않으려 한다.

 

종착역을 찾는 순간 길은 끝나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계속 걷고 싶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아직 가지 않은 길을 바라보면서, 그 길 위에서 다시 나를 만나고 싶다.

 

맺음말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평생 찾아 헤맨 것은 누군가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끝내 살아내지 못한 삶의 한 조각, 그리고 그 안에 남겨두고 온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길 위에 있다.

아직도 질문한다.

아직도 쓰고 있다.

아직도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중이다.

삶은 나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과거를 후회하기보다 지나온 시간에게 고맙다고 말 고 싶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가 오늘의 문장을 쓸 수 있었으니까.

 

그 상처가 있었기에 타인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그 고독이 있었기에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었으며, 그리움이 있었기에 아직도 꿈을 꿀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길을 걷는다.

아득한 곳을 바라보며,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무엇인가를 향해,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나 자신을 찾아서.-

 

2026. 09.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희망의 기로]

 

류남신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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