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의 굵은 상흔을 뜨거운 인간애로 풀어내며 4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가 펴낸 4년만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이념과 역사의 비극을 눈물겨운 해학으로 승화시키며 독보적인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작가가 이번에 펼쳐 보이는 무대는 평균 연령 일흔여덟살의 산골 ‘수평마을’이다.
오전 여덟시 반, 마을회관에 긴급 소집된 주민들은 마을의 자칭 지식인 ‘윤 선생’의 긴급경보를 청취 중이다.
윤 선생이 비장하게 폭로한 중대 사건은 서울에서 이사 와 마을 평균연령을 낮추는 두 젊은 여성 성진과 혜진, 일명 ‘찌니들’이 “여자끼리 좋아하는” ‘레지’라는 사실이다.
윤 선생은 ‘마귀 새끼’를 당장 좇아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세상의 날 선 시선을 피해 수평마을까지 흘러온 찌니들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나 지역 노인들은 그들의 사생활을 선을 넘는 방식으로 궁금해하며 찌니들과 함께 사는 법을 익혀나간다.
찌니들도 입으로는 성희롱을 늘어놓으면서 뭐든 아낌없이 나눠주는 노인들의 마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수평마을 사람들이 돼간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이념 너머의 한 사람을 발견하게 했다면 ‘찌니주의보’는 편견 너머의 이웃을 발견하게 한다.
황석영 작가는 추천사를 통해 “바깥세상은 이미 지옥일지라도, 그래도 ‘우리’가 있어 아직은 살 만하다는 온기를 전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