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두시인 시집<별꽃은 피고지고>의 전진식 시인의 시평
1. 기억의 여백과 부재의 온기
동료 시인 이성두의 다섯 번째 시집 《별꽃은 피고 지고》를 펼쳐 들며, 나는 한동안 깊은 내면의 동굴 속을 걷는 듯한 먹먹함에 잠겼다.
시가 건네는 질문들은 언제나 가볍지 않지만, 이번 시집은 특히 인간의 근원적인 시간과 상실, 그리고 삶의 가장 아픈 허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1부 [분홍 옹알이]에서 시인은 지나간 시간과 기억의 파편들을 더듬는다. 표제작 「낯선 아이」에서 문득 올라오는 흙냄새는 태초의 고향이자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의 체온이다. 사진 속 어린 날의 자신을 타자화하여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세월 앞에 무력해진 존재의, 쓸쓸함이 배어 있다. 골목은 사라지고 허공에 남은 목소리 하나가 자꾸만 발걸음을 돌려세우는 동안, 시인의 입 밖으로 나오려던 이름은 끝내 말끝에서 젖어버린다.슬픔은 소리 내어 울지 않고,가장 여린 언어의 끝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이어지는 「화로」는 일상의 사물을 통해 어머니의 부재와 온기를 소환하는 절창이다.
'시린 속'과 '뜨거운 허기'가 일렁이는 겨울밤, 화로에 불을 지피는 행위는 마치 비단 저고리를 정성스럽게 개어 올리는 것만큼이나 섬세하다.
그러나 동지섣달 긴 밤의 허기를 견디게 하던 그 뜨거운 손길은 이제 말라버렸다.
화로의 붉고 알싸한 그리움은 곧 어머니라는 거대한 부재의 다른 이름이다.
2. 삶과 살의 무게, 그리고 함께 기울어지는 사랑
2부 [달맞이꽃]은 이 시집의 가장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심장부이다. 오랜 병상에 누운 아내를 곁에서 지키며 시인이 마주한 시간들은 한 편의 거대한 기도와 같다.
「판결과 판독」은 법정의 판결과 병원의 판독이라는 두 개의 서사를 교차시키며 인간 존재의 불안을 극대화한다.
'삶'과 '살'이라는 단 한 글자의 차이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참회와 아내의 육체적 고통을 동시에 포착한다.
"꿀꺽, 목이 먼저 운다," 라는 구절은 언어 이전의 신체가 먼저 반응하는 슬픔의 진폭을 보여준다.
「기울어진 수평선」에 이르면 시인의 사랑은 숭고한 경지에 도달한다.
사경증이라는 병마 앞에 비틀린 것은 아내의 몸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이며, 시인 자신마저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바로 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대와 함께 조금 기울어진 채로" 그 고통의 곁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선언할 뿐이다.
함께 기울어지는 것,그것이 이 시가 보여주는 가장 진정한 사랑의 양식이다.
「접속」에서 기도는 종교적 의식을 넘어선다.
아침마다 잡초처럼 돋아나고 자르고 돌아서면 손끝에 다시 자라나는 삶의 무게,술과 담배와 사랑처럼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중독 같은 일상이 곧 기도다.
놓쳤던 시간을 돌아보며 다시 손끝을 모으는 행위는 흩어진 마음을 추스르며 아내를 향해 올리는 가장 간절한 생명의 호흡이다.
3. 소외의 문과 노년의 자아 성찰
3부 [돌아보는 쪽]에서 시인의 시선은 내부의 억눌린 감정과 노년의 자아를 향한다.
「문」은 열려 있으되 나를 위해 열린 적이 없는 문을 통해 깊은 소외와 무력감을 증언한다.
다른 이들은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시인은 끝내 앉아만 있다.
"속옷마저 찢고 싶었다.
"는 마지막 행의 격렬한 토로는 겉포장뿐인 일상과 억눌린 감정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싶은 극한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최면」은 거울 앞에 선 노년의 자아를 철학적으로 응시한다.
거울에 비친 늙은 육체는 '거울의 것'이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면의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늙음을 확인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전부는 아님을 믿고 싶은, 육체와 내면 사이의 이중성을 거울이라는 사물을 통해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절단의 이면」은 상실을 단순한 슬픔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종이를 접어 자르는 행위처럼 관계와 삶의 일부가 잘려 나갈 때, 시인은 묻는다.
"잘려 나간 쪽이 안쪽이었는지." 불필요한 것을 버렸다고 믿었으나,정작 잘려 나간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일부였음을 깨닫는 과정은 아픔을 통한 깊은 자기 인식의 확장이다.
4. 본능의 열기와 욕망의 허무
4부 [작은 불씨]는 생명의 원초적 울음과 세속적 욕망의 허망함을 다룬다.
「구애」는 고양이와 소쩍새의 새벽 울음에서 시작해 입술 붉히는 매화를 거쳐 "어둠이 붉다"는 감각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본능의 열기와 억눌린 정열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순간이다.
반면 「채굴」은 돈과 사랑과 문학을 광맥에 비유하며 인간의 헛된 욕망을 비판한다.
채굴꾼들이 허공에 곡괭이를 찍어대듯, 실체 없는 소문과 외적 성과만을 좇는 인간의 군상은 위태롭다.천장이 무너지고 눈물 같은 보석이 뚝뚝 떨어지는 결말은, 욕망이 빚어낸 성공의 이면에 감춰진 허무와 고통의 진실을 여운으로 남긴다.
맺음말: 별꽃이 피고 지는 자리
《별꽃은 피고 지고》는 기억의 회상에서 출발해 아내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 내면의 깊은 상처와 성찰, 그리고 삶의 본능과 욕망을 거쳐 마침내 숙연한 구도의 경지로 나아가는 시집이다.
화로는 어머니의 온기가 되고, 문은 소외의 심채가 되며, 기울어진 수평선은 사랑의 동행이 된다.
이성두 시인은 아픔을 과장하거나 탄식으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 아픔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기며 묵묵히 곁을 지킬 뿐이다.
별꽃은 피고 진다.
그러나 꽃이 진 자리에도 기억은 남아 삶을 향한 질문을 이어간다.
이 시집을 덮으며 나 역시 나지막이 묻는다.
별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이 견뎌온 세월의 무게이자, 끝내 놓지 못한 사랑의 온기이며,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일 것이다.
그 불씨가 타오르는 자리에서, 나는 한 시인의 숭고한 삶과 문학을 깊이 끌어안는다.
이성두 시인의 제5 시집《별꽃은 피고 지고》가 우리가 일상으로 겪는 아픔은 아니다. 각자의 아픔과 고통, 사랑과 행복은 다를지언정 이 시집에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고된 일상을 보면서 독자들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상황이라고 치환할 때 이 시집은 아마도 긍정적 답변이, 되어 모든, 독자들의 마음을 울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제5 시집을 출간한 이성두 시인에게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투명한 언어로 직조해 낸 시인의 용기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이토록 비극적인 세계를 기꺼이 끌어안고 침묵으로 시간을 깁고 있는 시인의 뒷모습은 먹먹하고도 눈부시다고 말하면서 용기와 응원을 드리며 시인의 한 사람으로 독자들에게 이 시집을 권하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6. 10. 23.
시인/수필가/전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