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시평

일상의 현상학과 존재의 서사: 일상재(日常材)의 시적 환치와 자아 성찰】

1. 프롤로그: 소재의 해체와 시적 환치(換置)의 연금술

류남신 취재본부장 2026.08.06 15:02

 

[필자]

 

글을 쓴다는 행위, 특히 시를 지어내는 작업은 일상의 평범함에서 출발하는가, 아니면 특수한 경험의 집합체인가에 대한 질문은 문학사에서 오랫동안 거듭되어 온 본질적 질문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정답을 내리는 일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일상의 단순한 포장은 자칫 식상하고 진부한 결말에 도달하기 쉽고, 지나치게 특수한 경계만을 고집하다 보면 난해(難解)의 미로 속에서 독자를 소외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는, 시적 기교에 대한 두려움일 뿐, 정작 본질은 '채집된 소재를 어떻게 시인의 내면에서 용해하여 오묘한 시적 언어로 환치(換置)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숙련된 장인(匠人)이 재료의 가치를 탓하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과 독창적인 기술로 명작을 만들어 내듯, 시인 역시 일상의 온가지 현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안목과 삶의 용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시는 보편적인 생활인의 삶을 자양분으로 삼으면서도, 우주의 심오한 원리를 배제하지 않는 무한의 경계를 지닌다. 일상에서의 친숙함은 독자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혀주고, 사유의 독창성은 지적인 승화를 이끌어낸다. 이 상보적(相補的) 관계 속에서 시는 마침내 우리 삶의 가장 정직한 교과서로 거듭나는 것이다.

 

우리가 시를 읽으며 깊은 울림과 행복을 경험하는 이유는 시인의 문장에 진실한 감동의 전달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적 특성을 정교하게 함축했을 때 비로소 시의 안목은 선명한 형태를 얻고, 그 깊이 속에 감춰진 미학적 비밀을 탐색하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시 읽기는 언제나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고뇌하는 시인과, 그 깊이를 이해하고자 땀 흘리는 독자의 상응 속에서 성립한다. 진정한 감동과 행복은 오직 사유의 고행을 감내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대가(代價)인 까닭이다.

 

2. 일상 속 자아 탐색과 실존적 관조

 

(1) 자아의 위치 추적: 시간의 침공과 실존적 자화상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일생을 살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끊임없이 진짜 나를 찾아 나서는 기나긴 추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완벽한 자아를 발견했다고 자신 있게 선언한 기록을 찾기란 드물다. 철학의 두께가 두꺼워진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방황과 슬픔, 고통의 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결국 한 줄기 변명만을 앞에 두고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간 실존의 솔직한 초상이다.

 

주말 오후 아내가 거울 앞에 앉아 있다. 할머니가 되었어도 할머니 소리 듣기 싫다고 대책 없이 출현하는 점령군들과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새치라면 가려서 뽑기나 할 텐데, 여기저기 무작정 튀어나오는 게릴라, 게릴라들과 속수무책으로 전투 중이다.

단정히 앉아 정성스레 싸우고 있는, 남자의 아내

 

K시인의 남자의 아내전문

여자는 자신을 보며 감동하고 남자는 여자를 보며 감동한다는 말이 있듯, 스스로에게서 자아를 발견하려는 태도와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시선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끝에서 세월의 무상함이나 나르시시즘적 한계를 만난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K 시인은 거울 앞에 앉은 '아내'의 모습에서 여자의 본능적 속성을 오버랩 시키며 세련된 객관화의 시선을 확보한다. 늙어가는 주말 오후, 할머니라는 칭호를 거부하며 대책 없이 밀려드는 세월의 점령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아내의 투쟁은 애틋한 자기방어다.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역시 아내의 싸움에 조용히 동조하며, 세월을 함께 건너는 동반자의 운명을 따스하게 응시하고 있다.

 

(2) 타자화된 자아의 자각: 일상적 일탈과 생의 성숙

 

거울을 마주할 때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자기도취에 빠지거나, 혹은 자신의 한계와 부끄러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전자는 타성에 젖기 쉽지만, 후자는 아픔과 고통을 동반할지언정 생의 진전과 성숙을 재촉한다. 반면교사의 교훈은 거창한 담론이 아닌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풍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퇴근하는 길 밴댕이회를 먹으러 갔다. 수족관 속의 은빛 꼬리들이 싱싱하다. 밴댕이 밴댕이들 저들의 속알머리는 어떻게 생겼기에 세상에 그리도 이름을 얻은 것일까? 밴댕이회에 소주를 마시면서 우리들은 직장 동료와 상사들을 안주 삼아 씹었다. 말투에서 걸음걸이까지 넥타이 색깔, 웃음소리, 식성까지 세 치 혀가 퍼런 칼날 되어 시시콜콜 곱씹었다.

고소했다 밴댕이회보다 맛이 더 좋았다. 자정을 넘기고서 일어선 우리는 수족관 유리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저런 우리들은 어느새 밴댕이가 되어 있었다.

 

P시인의 밴댕이전문

 

속 좁은 사람을 비유할 때 흔히 쓰이는 생선 '밴댕이'를 매개로 삼아, 결국 스스로가 밴댕이의 형상으로 변해버렸음을 깨닫는 과정이 대단히 함축적이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직장 상사나 세태를 안주 삼아 씹고 뱉는 행위는 억눌린 일상의 긴장을 해소하는 악의 없는 일탈처럼 보인다.

그러나 식당 문을 나서며 수족관 유리에 비친 스스로의 속 좁은 모습과 직면하는 자각, 즉 "우리들은 어느새 / 밴댕이가 되어 있었다"라는 모놀로그는 단순한 자책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고 자아의 키를 키워나가는 생의 성숙 과정이다. 인간은 자신의 과오를 성찰할 줄 아는 힘이 있기에 비로소 더 나은 문화와 삶을 일궈낼 수 있다.

 

(3) 존재의 유한성과 도축장의 해학: 주검의 사물화(事物化)

 

생명체라면 누구나 죽음이라는 엄숙한 명제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 죽음이라는 한계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항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행위 역시 궁극적으로는 생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죽음은 가장 공평한 법칙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은 비로소 완성에 도달한다.

 

꽃상여도 보이지 않는다. 뿌옇게 뿜어 올리는 소독약으로 햇살은 무지개를 만들고 늘어선 냉동탑차 옆에 줄담배를 물고 있는 몇몇의 상여꾼들

이미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제 옷 훌훌 벗어 버리고 사내들 등에 업혀 나오는 주검 죽음은 또 다른 꿈을 만든다. 유리 냉장고 진열장 안

한 점 한 점 붉은 선열이 화려한 꽃 다시 피웠다.

 

H시인의 조문 - 도축장에서전문

 

도축장이라는 서늘한 공간에서 가축의, 주검을 대하는 시선의 전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꽃상여"나 "상여꾼"이라는 전통적인 장례의 시어를 냉동탑차 운전수와 도축장의 풍경에 대입함으로써 의인화의 미학을 극대화한다.

죽음 이후 쇼윈도 진열장 안에서 정육이라는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화려한 꽃을 다시 피웠다"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시인의 의도는 다분히 철학적이다. 도축장의 허무가 인간 실존의 단면과 오버랩될 때, 시는 관념적 명상의 경계를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로 확장된다. 시적 상상력이 비유의 단단한 뿌리를 얻어 생생하게 살아나는 순간이다.

 

(4) 다의성(Ambiguity)과 정서적 등가물: 그리움의 미학

 

시의 얼굴이 언제나 하나로 고정되어 있다면 감동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변주되며 독자에게 다가간다. 우는 이에게는 나비처럼 다정한 위로를 건네고, 기쁜 이에게는 화려한 연회의 의상을 입혀주는 것이 시의 역할이다. 이를 시학에서는 '다의성(Ambiguity, 애매모호성)'이라 부르는데, 이는 혼란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결을 담아내기 위해 시가 지닌 신비로운 여백이다. 한 잔의 차에 수많은 향미가 내밀하게 스며 있듯 말이다.

 

거문고 소리 간직한 오동나무 아래 먼먼 전설을 우려내는 차 한 잔을 마시네

자네 함께였다면, 이만한 홍복 따로 없겠네

! 차오르는 단맛을 뉘와 나누며, 그리움을 달랠꼬

 

L 시인의 그리움 예찬전문

 

오동나무와 차 한 잔의 결합을 통해 펼쳐지는 상상의 결이 우아하다. 오동나무는 거문고의 재료가 되는 나무이기에, 나무 아래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아득한 전설의 가락을 불러 일으킨다.

차의 오묘한 맛과 낭만적인 풍류가 결합하여 시적 행복감을 선사하지만, 시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허!"라는 짧은 탄식을 던진다. 이 탄식은 혼자 누리는 풍류의 절정이자, 동시에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부재(不在)하는 대상을 향한 깊은 그리움의 표현이다. 대상과의 완벽한 정서적 등가(等價)를 이루어내는 이러한 동화의 경지는 독자에게 오래도록 진한 울림을 남긴다.

 

3. 에필로그: 정진을 향한 시적 제언

 

본 시편들에 나타난 시적 대상과의 적극적인 교감, 그리고 대상과 정서적 등가를 이루어내는 감각은 시인들이 지닌 뛰어난 자산이다. 일상의 사소한 풍경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읽어내고, 이를 여과 없이, 진솔하게 시적 언어로 포착해 내는 안목은 앞으로의 정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일상의 시학이 자칫 평범함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대상에, 보다 입체적으로 접근하고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어내는 미학적 여유가 더해져야 한다. 삶을 향한 깊은 애정과 시적 상상력이 무한히 펼쳐질 때,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진정한 걸작이 탄생하리라 믿는다. 일상 속에서 나만의 글을 찾아 나서는 모든 이들의 여정에 깊은 응원의 마음을 보내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6. 0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무전여행]

 

 
류남신 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