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저널] “닭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닭으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게 뭐라고 닭 이야기만 하면 그렇게 즐겁습니다”경북 문경시 농암면 선곡리에 사는 곽정호 씨의 말이다.
쌀농사와 과수농사, 시설채소농사 등 저마다 바쁜 농사일을 하는 이웃들이 요즘 모이기만 하면 닭 이야기부터 꺼낸다.
지난 6월 4일 생후 90일 된 중추를 입식하면서 시작된 변화다.
불과 5개월 만에 닭은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이 됐고 서로 다른 마을에 사는 농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됐다.
그 변화는 실제 농가의 통장에서도 확인된다.
문경시 공공브랜드 ‘오미에그‘에 참여한 곽 씨의 10월 한 달 계란 판매 순수익은 163만 5750원이다. 10월 20일 81만 4250원, 11월 5일 82만 1500원이 두 차례에 걸쳐 입금됐다.
곽 씨만의 특별한 성과도 아니다.
오미에그 참여농가의 10월 평균 정산액은 151만 6910원이다.
문경시가 올해 20농가를 대상으로 시작한 시범사업에서 이른바 ‘계란연금’ 이 실제 농가소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료는 무상, 계란은 공동수거 농가는 닭을 돌본다 오미에그의 특징은 농가가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육과 유통의 역할을 분담한 데 있다.
계사는 보조금으로 설치하고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를 활용한 전용사료는 무상으로 공급한다.
농가는 닭을 돌보고 생산된 계란을 마을 공동집하장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이후 수거와 선별·포장·판매는 공동 유통체계에서 담당한다.
농가가 최초로 부담하는 것은 중추 입식비용이다.
다음 입식부터는 플랫폼 운영업체가 중추를 무상 공급하기로 약속해 재입식에 따른 농가의 부담도 줄이는 구조다.
이에 따라 농가가 정기적으로 받는 계란 판매 정산금은 별도의 사료 구입비나 유통비를 공제할 필요가 없는 운영 순수익이다.
다만 최초 중추 구입비는 초기 투자비용에 해당한다.
농가는 하루 약 1시간의 사육관리와 계란 수거 작업으로 기존 농사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현금소득을 얻을 수 있다.
농가가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던 기존 농업 방식과 달리, 소규모 농가도 공동 플랫폼을 통해 일정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은 셋, 닭 이야기는 하나 다시 모이기 시작한 농민들
그런데 곽 씨가 계란연금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사람이다.
농암면의 오미에그 생산공동체는 지동리 7농가, 선곡리 1농가, 사현리 2농가 등 서로 이웃한 세 마을의 10농가로 구성돼 있다.
지동리를 중심으로 추진한 시범사업에 인접 마을 농가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산공동체가 형성됐다.
곽 씨는 이들 10농가 가운데 가장 막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참여농가는 74세다.
“사실 모두들 큰 농사는 따로 있다. 쌀농사가 있고 자두농사가 있고 사과농사가 있고 시설채소도 있어요. 그런데 만나면 닭 이야기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문제가 생겼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이야기한다”농가들은 수시로 모여 사육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토론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눈다.
계란의 맛을 함께 보고 평가하며 더 좋은 계란을 생산하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지 의논한다.
그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고 한다.
“우리 모두의 닭이고 우리 모두의 꿈이고 우리 모두의 오미에그이다. 같이 토의하고 같이 노력하고 함께 하려고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단순한 친목 모임과도 다르다.
같은 계란을 생산하고 같은 브랜드의 품질을 책임지는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받아들인다.
곽 씨는 “우리의 노력이 막연한 것이 아니고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닭장에 들어가기 싫다던 배우자들, 이제는 교육도 단톡방도 함께
오미에그가 바꿔놓은 것은 농가의 소득과 이웃 관계만이 아니다.
가정 안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배우자들이 닭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했다.
닭을 키운다고 하면 크고 시끄러운 축사, 불쾌한 냄새부터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오미에그 계사는 생각과 달랐다.
규모가 작고 조용했으며 냄새도 적었다.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이제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매달 한 차례 실시하는 사육기술교육에 배우자들이 꼬박꼬박 참석한다.
농가들의 단체대화방에도 배우자들이 함께 들어와 사육정보와 경험을 나눈다.
닭을 키우는 일이 농가 한 사람의 부업을 넘어 부부가 함께 배우고 이웃과 교류하는 일이 된 것이다.
곽 씨는 농업에 종사하면서 지금처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어린 시절은 모두가 함께였잖아요. 농촌 하면 공동체를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런 맛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오미에그로 인해서 우리는 다시금 공동체의식이 복원되는 기분이다”그는 계란연금이라는 말도 좋지만, 무엇보다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고 했다.
이제는 앞으로 함께 무엇을 해볼지 새로운 꿈도 생겨나고 있다.
씨앗의 가치가 계란이 되다 기술혁신에서 농가소득까지
오미에그의 출발점은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의 씨앗과 과피에 남아 있는 자원의 가치다.
오미자 가공 후 남는 씨앗과 과피는 단순히 버려지는 부산물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품고 있는 농업자원이다.
문경시농업기술센터도 일찍부터 그 가능성에 주목해 다양한 활용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러한 자원의 가치를 사료기술로 발전시킨 것은 지역 농업회사법인 오미원의 연구 성과다.
김태인 대표 등이 2017년부터 약 6년간 연구한 끝에 2023년‘오미자 당 발효물의 부산물을 이용한 가축사료 첨가제 제조방법‘이 특허로 등록됐다.
문경시는 이 민간의 기술개발 성과를 농가소득과 연결했다.
특허기술을 적용한 오미자 전용사료를 산란계에 급여하고 계사 설치 지원과 공동생산·유통체계를 결합해 공공브랜드 ‘오미에그’로 발전시킨 것이다.
계란 자체의 차별성도 추구하고 있다.
시험분석을 통해 오미자 유래 리그난 계열 성분이 계란에서 검출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난각번호 2번의 실내 평사 사육과 체계적인 사육·품질관리로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고 있다.
순환경제의 가치도 담았다.
오미자 가공 후 남은 씨앗과 과피는 사료자원이 되고 닭은 계란을 생산한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계분은 퇴비로 만들어 다시 농경지에 환원하는 순환농업 체계로 발전시키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가 참여하면서 하나의 경제적 순환이 완성된다.
소비자가 오미에그를 정기구독하면 안정적인 판매 기반이 형성되고 농가는 생산과 품질 향상에 집중할 수 있다.
소비자의 지속적인 구매가 농가의 정기적인 소득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기반을 넓히기 위해 오미에그는 11월 5일 서울 동대문구청 앞 미래광장에서 열리는 중소기업 우수제품 판매전에도 참여한다.
현장에서 서울 소비자들에게 오미에그의 차별성과 가치를 알리고 정기구독을 통해 도시의 소비가 농촌의 안정적인 소득으로 이어지는 상생의 의미를 전할 계획이다.
지역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문경시가 농가소득 사업으로 연결하고 농가는 좋은 계란을 생산하며 소비자는 정기구독으로 그 가치를 이어간다.
오미에그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비싼 계란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지역의 자원을 다시 살리고 농가의 소득을 높이며 소비자와 농촌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농업경제를 만드는 일이다.
20농가의 실험, 농촌의 새로운 소득모델을 묻다 문경시가 올해 20농가를 대상으로 시작한 오미에그 시범사업은 2027년에도 10농가를 추가하는 2개년 사업으로 계획돼 있다.
아직 시작 단계이고 농가 수 역시 많지 않다.
계사 설치 지원과 전용사료 무상공급, 공동유통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면서 안정적인 소비시장을 확보하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다.
그럼에도 이번 시범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농업인의 새로운 소득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실제 농가의 통장에 매월 두 차례 정산금으로 찍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이웃한 세 마을 농가가 하나의 생산공동체를 이루고 배우자들까지 함께 배우고 고민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공동체의 활력이 약해지는 농촌에서 소득을 만드는 일이 다시 사람을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곽 씨는 말한다.
“계란연금이라는 말도 좋고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 좋다. 앞으로 꿈꾸는 것도 생겨나고 있다”통장에는 매달 계란 판매 정산금이 쌓이고 마을에는 다시 모일 이유가 생겼다.
문경의 작은 계사에서 시작된 오미에그가 보여주는 것은 계란 한 알의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