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칼럼] 나의 문장을 사랑한다는 것: 허무의 끝에서 길어 올린 생의 기록

1. 문단이라는 이름의 거울 앞에 서서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5.20 11:33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글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은, 때로는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서는 일처럼 두렵다.

어느 단체든, 누구든 처음 만나면 등단 연도를 묻는 이 관례 속에서 나는 늘 후배의 자리에 선다.

혹자는 직함을 따지지만, 나는 ‘백면서생’이라는 무관의 처지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행사장 맨 앞자리에서 거들먹거리는 이들을 숱하게 보아오며, 그 자리가 얼마나 맞지 않는 옷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글을 어떻게 진지하게, 독자의 마음을 울리며 썼는가 하는 자문이다.

행사장에서는 이 본질이 전도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많아, 요즘은 그런 거추장스러운 자리를 피하게 된다.

작가에게 가장 진귀한 평가는 어떤 글을 썼느냐에 있다.

설사 늦게 시작했든 일찍 시작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어떤 소득을 얻었든, 자화상을 그려가는 여정은 필연의 종착역을 향해 간다.

작가의 숙명은 외적인 화려함이 아닌 내적인 충실도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늦게 시작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나에게 분발의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내 삶에 만족이라는 깃발을 꽂게 해 주었다.

돌아보면, 인간의 운명은 각자에게 정해진 길을 향해 가는 것이라 믿는다.

억지로 만들거나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합리성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운명론적인 깨달음이다.

어릴 적의 꿈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는 사실이, 내 삶의 가장 선명한 증거다.

 

2. 고서점의 먼지 속에서 발견한 운명의 문장

 

생활의 방편으로 시작했던 고서점 운영이 결국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은 운명의 한 수였다.

이 글에서 운명론을 거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쓰고,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에 붉은 줄을 긋고 외우던 습관이 오늘날 나의 글쓰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양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축적된 지식과 끊임없이 읽고 쓰던 그 시간이, 평생 나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깨달아가는 존재다.

끈기와 집념을 가지고 묵묵히 걸어가면, 언젠가는 때가 오고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넘어지면 흙이라도 짚고 일어나는 집념, 그리고 작은 성과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훗날 큰 것을 이룬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복권 당첨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땀방울을 모아 큰 강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성장.

나의 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성장의 결과물이다.

사람마다 재산을 모으는 방법이 다르듯, 글쓰기 역시 각자의 성격과 삶의 방식을 닮아간다.

요행을 바라는 대신 땀 흘리는 것을 선택한 삶, 그것이 나의 문학이다.

 

3. 흠결 있는 위대함, 그 모순을 껴안으며

 

세상살이는 늘 내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성취의 길이 만들어진다는 신념 하나로 살아왔다. 1년에 세 권의 평론집을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랑할 만한 대단한 업적은 아닐지라도, 내 나름의 치열한 성과였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부족함을 환경 탓으로 돌리지만, 나는 나의 그림자를 탓하며 변명하고 싶지 않다.

문학에 평생을 바친 이광수를 떠올려 본다.

결핵균이 척추까지 번지는 고통 속에서도 방대한 소설과 평론, 시를 써 내려간 그의 열정.

물론 일제 강점기 그의 행적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문학적 성취까지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한국 문학의 지평을 좁히는 우매한 짓일 수 있다.

조국을 침략한 나폴레옹을 찬양했던 괴테, 나치에 협력했던 하이데거, 그리고 우리가 성인으로 추앙하는 간디조차도 완벽하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의 잘못은 감추고 타인만을 비난하는 '내로남불'의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리더십 부재와 맞닿아 있다.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는 기득권의 태도가 불신의 씨앗이 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지도층의 자녀들이 전장에 나가지 않았던 반면, 타국의 지도자 자녀들이 목숨을 바친 일화는 우리 사회의 뼈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불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4. 남겨진 문장들, 허무를 넘어선 생의 증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글을 믿는다.

내 글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며, 나만의 진솔한 향기를 품고 있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증거이자,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자부심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글을 쓰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대중의 시선을 좇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오직 글의 깊이에 빠져드는 것에 만족한다.

세상의 인정이나 박수갈채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독자들이 가볍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이끌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껍데기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알맹이에 있다.

농부가 수확한 콩들 중에는 알찬 것도 있고 쭉정이도 있지만, 농부에게는 모두 소중한 결실이다.

나 역시 내 운명을, 그리고 내가 써 내려간 모든 글을 사랑한다.

설령 그것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변함없는 애정을 쏟을 것이다.

고향에서는 영웅이 대접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책을 출간할 때마다 후회와 자책에 시달린다.

내 주변 사람들조차 내 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감, 그리고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나를 돌아보고 성장하게 하는 약이 된다.

글쓰기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더 나은 문장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숙명이다.

결국, 허무와 절망은 삶의 그림자일 뿐이다.

노래가 허공으로 흩어지듯, 우리가 매일 먹고 자는 것을 반복하듯, 삶은 끊임없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과정이다.

아침이 오면 밤이 오듯, 의미를 찾는 여정도 영원히 반복된다.

나는 그저 쓰는 것이 좋아 쓰고, 쓰면서 나를 완성해 나갈 뿐이다.

수많은 수식어는 그저 그림자에 불과하다.

내가 남긴 글들이 내가 얼마나 치열하고 진실하게 살아왔는지를 증명해 줄 것이다.

나의 책들은, 나의 삶 그 자체이며 숭결한 마음이다.

 

2026. 05.

 

이승섭 (대중문화평론가 · 칼럼니스트)

 

[신간 출간 예정]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