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잉크로 짓는 성벽]

(글을 쓰고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5.02 09:41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시대는 거대한 소음의 바다와 같다. 01로 치환된 정보들이 초 단위로 명멸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문장을 학습하여 되돌려주는 이 기묘한 풍요의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본질적인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왜 여전히 우리는 고통스럽게 글을 써야 하며, 왜 굳이 두꺼운 책장을 넘기며 타인의 사유를 탐닉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나 정보의 전달이라는 실용적 차원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최후의 영토'를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파편화된 자아를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로 구축하는 건축의 과정이며 현대인은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이미지와 짧은 텍스트의 파도 속에 자신을 내맡긴 채 살아가기에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요구가 덧씌워진 일상은 마치 형체 없는 안개와 같아서, 기록되지 않은 삶은 휘발되기 마련이다.

 

 

이때 펜을 들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는 무질서하게 흩어진 감각들을 언어라는 그물로 긷는 일이다. 문장을 짓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생각 당하는 존재'에서 '생각하는 주체'로 격상되며 주어와 동사를 고르고 목적지를 향해 문장을 밀고 나가는 그 고독한 노동은, 자아의 중심을 잡고 자기 존재의 고유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에 저항하며, 오직 나만의 속도로 시간을 재편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동시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자의 고통과 환희에 접속함으로써 내 존재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하는 행위이며 인간은 태생적으로 단 하나의 생()밖에는 살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수백 년 전의 철학자와 대화하고, 가보지 못한 공간의 이방인이 되며, 내가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타인의 내밀한 심연을 유영한다. 영상 매체가 즉각적인 자극으로 우리의 뇌를 마비시킨다면, 활자는 독자의 상상력이라는 엔진을 빌려 비로소 완성되기에 저자가 던진 문장 사이의 여백을 독자의 숨결로 채워 넣을 때, 비로소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감각하는 이 '공감의 연습'이야말로 혐오와 단절이 일상이 된 이 시대에 우리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면역 체계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효율'이라는 신을 숭배한다. 결과물이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는 일,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행위는 곧잘 무용(無用)한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존엄은 바로 그 '무용한 것들'에서 피어나는 것이기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행위는 생산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차라리 '깊이'를 향한 갈망이기 때문에, 스크롤을 내리며 정보를 '소비'하는 행위에는 깊이가 없다. 그러나 문장을 곱씹으며 사유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독서와,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집필의 시간은 우리 영혼에 단단한 옹이를 만드는 결과물이다. 그 옹이가 있어야만 우리는 삶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쉽게 부러지지 않고 자신만의 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문학적 서사는 우리가 마주한 실존적 허무를 극복하게 하는 유일한 구원인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죽음의 공포를 유예 시키고 신체적 불편을 제거해 줄 수는 있지만, "나는 누구인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며 오히려 기술이 정점에 달할수록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소외감을 경험한다.

 

 

이때 책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느끼는 그 불안과 외로움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며,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씨름해온 숭고한 흔적이라고 말이다.

고전 속 인물들의 방황과 투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하고, 비로소 삶의 비극마저도 하나의 아름다운 서사로 받아들일 용기를 얻고 희망을 보는 것이다.

 

 

비평가로서 바라보는 이 시대의 문장은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이기도 하며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정보에 길들여진 대중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기 쉽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장, 나의 세계관을 뒤흔드는 책을 만나야 한다.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여 낯선 언어의 숲을 헤매는 독자는 선동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스스로 문장을 구사하는 양식은 타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따라서 읽고 쓰는 행위는 개인의 수양을 넘어 공동체의 건강한 정신을 지탱하는 민주적인 기초가 되기에 중심을 잡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왜 글을 쓰고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료하다.

그것은 우리가 '기계'가 아니라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이다. 인공지능이 가장 완벽한 문법으로 정보를 조합해 낼 수는 있어도, 그 문장 뒤에 숨은 떨리는 고독과 진정성 어린 눈물을 흉내 낼 수는 없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결핍을 문장으로 승화시키고, 타인의 아픔을 읽으며 함께 울 줄 알기에 이 비효율적이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야말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럽고도 고귀한 축복인 것이다.

 

 

나의 친구, 선배, 후배, 모든, 인간들이여,

그러니 우리는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읽고 써야 한다. 작가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할 줄 아는 모두는, 우리가 남긴 비루한 문장들이

 

훗날 누군가에게는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작은 이정표가 될 것이며, 우리가 읽어 내려간 수많은 페이지는 우리 영혼의 지층을 이루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줄 것이다. 화려한 영상과 자극적인 소음이 세상을 뒤덮을지라도, 종이 위에 흐르는 고요한 잉크의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 '이해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는 그 뜨거운 열망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지고, 내일의 타인에게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으며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책을 들고 펜을 쥐어야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이다.

 

 

2026. 05.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필자의 출간 예정집]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