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과 집 가면 받아주던 양반”, 동국대 ‘김문수 선배’ 대한 기억, 장편 ‘마지막 무관생도들’ 끝으로, 김원봉·고유섭 평전 작업에 집중, “급변의 시대, 흔들리지 말길”
“한국 나이로 이제 팔십 인데 무슨 상을 받아요.
상이라는 건 대개 50대, 60대 한창 일할 작가들한테 ‘더 열심히 써라’하고 격려하려 주는 거죠.
그런데 80세 노인네한테 상을 주면서 더 열심히 쓰라고 격려하면, 나보고 글 쓰다가 그냥 죽으라 하는 건지…”(웃음)
최근 제1회 ‘김문수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천 원로 이원규(사진) 소설가가 밝힌 수상 소감이다.
자신의 문학인생 대부분을 ‘인천’에 천착해온 이원규 작가를 지난 26일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인근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문학상은 김문수 소설가의 작가 정신을 후대 작가에게 계승하고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차원에서 제정됐다.
김문수 소설가는 1939년 충북 청주 태생으로 196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반세기 넘게 소설 창작과 작가 양성에 전념했다. 2012년 타계 이전까지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 수상을 완강히 거절했다고 한다.
고(故) 김문수 소설가는 동국대 국문과 10년 선배이며, 상을 제정한 한국소설가협회의 이사장 역시 그와 동갑내기 동문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가는 자신이 상을 덥석 받기라도 하면 문단에서 학연에 얽매여 자기들끼리 상을 주고받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수상을 만류했다고 한다.
자신이 상을 받을 나이가 아니라, 운영위원회에 기금이나 더 내놓고 후배들 뒤를 받쳐줘야 할 나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런데 문단 원로들은 ‘이원규가 받아야 앞으로의 수상자들에게도 명분이 선다’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이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고 한다.
“선배에게 물론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후배들을 데리고 집에 쳐들어가도 다 받아주던 양반이었다”는 것이 김문수 선배에 대한 이원규 작가의 기억이다.
수상 이후 작가의 마음 한구석이 착잡하다고 했다.
젊던 시절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체력적인 여건 때문이다.
소설이 쉬워 보일지 몰라도, 작가들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황해’나 ‘마지막 무관생도들’ 같은 장편을 쓸 때와 현재는 여건이 다르다. 40대, 50대 때는 3~4시간 꼼짝 않고 집필을 해도 30분만 쉬면 됐지만 지금은 1~2시간 겨우 집중해서 쓰고 나면, 누워서 3~4시간은 꼬박 쉬어야 체력이 돌아온다.
체력 여건이 조금이라도 좋을 때, 인천의 역동적이던 시기 개항 이야기를 장편으로 담아내지 못한 점도 조금은 후회스러운 대목이다.
그는 장편 ‘마지막 무관생도들’ 이후 김원봉·고유섭 등의 평전에 집중했다.
“문수 형이 살아있었다면 ‘너는 그 인천 개항 이야기를 마저 다 쓰고 죽어야 될 거 아니냐’며 호통을 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상이 나한테는 아주 무거워요.”
종이책의 전멸, 시장의 불황과 AI의 등장으로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문단의 큰 어른으로서, 그는 후배 작가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