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사람들

[정원이 농촌의 미래를 바꾼다]

― 귀래면 다둔리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삶의 철학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6.06.19 11:22

 

[필자]

강원도 원주시 남동부에 자리한 귀래면(貴來面)은 예로부터 산수가 수려하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치악산 남쪽 자락과 백운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맑은 물줄기가 산골짜기를 따라 흐르며 사람들의 삶을 품어 왔다.

귀래(貴來)라는 이름 또한 의미심장하다.

'귀할 귀(貴)', '올 래(來)'를 써서 '귀한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자연이 아름답고 인심이 후덕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 했던 땅이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정원1]

귀래면의 여러 자연부락 가운데 다둔리(多屯里)는 특별한 역사와 공동체 문화를 간직한 마을이다.

'둔(屯)'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터전과 마을을 뜻한다.

다둔리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온 삶의 터전이며, 오랜 세월 이웃과 함께 농사를 짓고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온 공동체의 공간이다.

 

산을 등지고 들을 바라보며 형성된 다둔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마을은 단순한 농촌을 넘어 또 다른 문화적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원마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다.

나는 최근 문학행사 참석을 위해 귀래면 운계다둔길을 찾았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과 마주하게 되었다.

[정원의 극치 2]

그날 내가 만난 것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었다. 한 편의 시였고, 한 권의 수필집이었으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써 내려간 살아 있는 문학이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상한 감동이 밀려왔다.

논과 밭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집집마다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정원들이었다. 붉은 장미가 피어 있는 담장.

잘 다듬어진 향나무.

정갈하게 손질된 잔디밭.

계절꽃이 만발한 화단.

아기자기한 소품과 정원등.

어느 집 하나 예외가 없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박람회장을 연상시켰다.

보통 농촌마을은 생산의 공간이다.

밭과 논이 중심이 되고 집은 그 주변에 놓인다.

그러나 다둔리는 달랐다.

[문학의 향연3]

이곳에서는 농사가 생계를 위한 노동이라면 정원은 삶을 위한 예술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어떻게 아름답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마을 곳곳에 배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마을을 걸었다.

골목길은 깨끗했고 집 앞마당은 정갈했다.

꽃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피어 있었다.

나무들은 과장되지 않은 모습으로 풍경 속에 녹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문화는 거대한 공연장이나 화려한 축제에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생활 속에서 태어난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단순히 꽃을 심는 행위가 아니다. 삶을 가꾸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가꾸는 일이다. 그리고 마을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고즈넉한 이정숙선생의 자택 정원4]

문학행사를 마친 후 마을 초입에 위치한 이정숙 공인중개사선생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저녁 7시 무렵이었다.

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푸른빛과 자주빛이 섞여 하루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 시간에 만난 정원은 낮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정원등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은은한 조명이 잔디 위에 내려앉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수목들은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은 저택을 둘러싼 정원은 마치 한 편의 서정시 같았다.

잔디는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고, 나무들은 조각가의 손길이 닿은 듯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곡선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은 방문객을 자연스럽게 정원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 작지만 그림 같은 자택5] 

정원 곳곳에는 주인의 취향과 철학이 담겨 있었다.

화려함을 과시하려는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것은 돈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라 시간으로 완성한 정원이었다.

좋은 정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포기의 꽃을 심고, 한 그루의 나무를 가꾸고, 비바람을 견디며, 계절을 기다리고, 다시 손질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결국 정원이란 기다림의 예술이다.

그래서 정원에는 주인의 인생이 담긴다. 나는 이정숙 씨의 정원을 걸으며 정원이 곧 삶의 자서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성껏 가꾸어진 꽃과 나무들은 주인의 성품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날 저녁 차를 마시며 정원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모습대로 집을 만들고, 집은 다시 그 사람을 닮아 간다. 그리고 정원은 그 집의 마음이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오랜 시간 함께 만들어 온 화해의 공간이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아름다움이 특정한 한 집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을 전체가 그러했다.

한 집의 정원이 끝나면 또 다른 정원이 시작되었다. 꽃길은 꽃길로 이어졌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불러왔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힘이다.

좋은 공동체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서로의 가치를 높여 준다.

누군가 꽃을 심으면 이웃도 꽃을 심고,

누군가 정원을 가꾸면 마을도 함께 아름다워진다.

그렇게 형성된 문화는 어느 순간 마을의 정체성이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농촌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지방소멸이라는 무거운 단어들이 농촌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둔리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농촌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다.

농촌은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의 극치6]

문화가 있는 농촌,

예술이 있는 농촌,

정원이 있는 농촌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유럽의 수많은 마을들이 꽃과 정원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듯이 다둔리 역시 한국형 정원마을의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은 관광자원이 된다.

정원은 지역의 브랜드가 된다.

정원은 사람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정원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

 

그날 해가 완전히 저물 무렵 나는 정원의 불빛과 산 그림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고요한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꽃들은 말이 없었지만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문학이란 결국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둔리는 이미 한 권의 문학작품이었다.

꽃은 시어가 되었고, 나무는 문장이 되었으며, 정원길은 서사의 흐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주인공들이었다.

나는 그날 귀래면 다둔리에서 농촌의 미래를 보았다.

생산만을 위한 농촌이 아니라 품격을 가꾸는 농촌.

경제만이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농촌.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농촌의 미래를 보았다. 언젠가 다시 다둔길을 찾게 된다면 나는 꽃의 이름보다 꽃을 가꾸던 사람들의 미소를 먼저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원이 아름다운 마을은 결국 사람이 아름다운 마을이기 때문이다. 귀래면 다둔리.

그곳은 단순한 시골마을이 아니다.

그곳은 자연과 인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품격이 함께 꽃피는 아름다운 정원공동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내가 진정으로 감동한 것은 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었다.

 

2026. 06. 1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이승섭 연합취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