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과 사법 붕괴를 경고한다]

{허균의 『호민론(豪民論)』과 현대 정치철학의 교차점에서 진단한 한국 정치의 병리학}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6.24 08:33

 

[필자]

정치(政治)의 기원은 본디 야만적 폭력을 이성적 합의로 대체하는 ‘사회계약’에 그 뿌리를 둔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이러한 공생의 철학을 철저히 폐기한 채, 오직 수적 우위라는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헌정(憲政) 질서를 맹폭(猛爆)하는 이익집단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입법의 권위는 진영의 사유물로 전락했고, 사법의 잣대는 권력의 광기 앞에 위협받고 있다. 범죄적 혐의를 등에 업은 자들이 도리어 의회의 포디움(Podium)에 올라 법치주의를 조롱하고, 헌법 정신을 유린하는 악법을 양산하는 현실은 일찍이 토크빌(A. de Tocqueville)이 경고했던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Majority)’의 가장 치명적인 변종이다. 본 평론은 시대의 심연을 직시하는 평론가의 고뇌와 철학적 성찰을 담아, 일방통행식 입법 독주의 해악을 해부하고 주권자의 이름으로

이 땅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준엄한 궤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입법 만능주의의 폭력성: 국가 경제의 목줄을 쥐는 이익 카르텔

 

우리는 과거 숱한 시련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수레바퀴를 굴리며 이 나라를 지탱해 왔다. 조국과 산천에 대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사랑은 결국 이 공동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근원적 믿음에 기인한다. 그러나 현재 거대 야당이 보여주는 일방적 입법 폭주는 이 믿음을 산산조각 내고 있다. 법안이 국가 백년대계의 주춧돌이 아니라, 특정 진영과 결탁한 패거리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 가장 참담한 증표가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위시한 친노조 포퓰리즘 법안들의 강행 처리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 시장경제의 창의와 기업의 정당한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불법적 파업과 쟁의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운동을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벗어난 성역으로 격상시키려 한다. 귀족 노조가 경제의 동맥을 끊고 국가 위에 군림하려 했던 뼈아픈 과거를 잊었단 말인가. 이는 노동권의 보호가 아니라, 거대 노조라는 특정 이익 카르텔에 국가의 경제 주권을 헌납하는 행위다.

지금 거리는 텅 비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노동 시장의 왜곡 속에서 기회를 박탈당한 채 절망하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서 파산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민생의 파탄 속에서, 정치가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는커녕 경제의 활력을 질식시키는 악법을 생산하는 데 몰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명백한 배임(背任)이자 역사적 범죄다.

 

2. 사법 붕괴의 획책: 범죄의 정치 권력화와 법치주의의 조종(弔鐘)

 

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사법 정의(Judicial Justice)가 정치 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형 비리와 부패, 예컨대 대장동 사태로 상징되는 천문학적 기득권 카르텔의 의혹 앞에서도 정치권은 부끄러움을 상실했다. 단죄받아야 할 주체들이 도리어 의회의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들을 향한 사법의 칼날을 부러뜨리기 위해 ‘공소 취소’를 압박하거나 사법 시스템 전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몽테스키외가 설파한 ‘삼권분립’의 대원칙이 다수당의 횡포 앞에 형해화(形骸化)되고 있다. 특정인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입법 권력이 동원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관과 검사를 탄핵의 위협으로 길들이려는 작태는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전체주의의 전조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철학적 결단을 통해 사법적 절차의 숭고함을 목숨으로 지켜냈건만, 작금의 정치꾼들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아예 "법 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철학이 빈곤한 권력,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집단은 반드시 부패하며 파멸로 향한다.

진리가 이러함에도 끊임없이 말 바꾸기와 선동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행태는 개인의 사기를 넘어 국가의 영혼을 갉아먹는 반국가적 행위와 다름없다.

 

3. 허균의 호민론(豪民論): 침묵하는 대중의 분노와 역사의 심판

 

정치권력은 언제나 대중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우매한 존재로 착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허균이 남긴 날카로운 경고, 『호민론』의 철학적 심연을 다시금 길어 올려야 한다.

억압에 순종하며 묵묵히 법을 지키는 ‘항민(恒民)’이나, 탄식 속에서 원망만 하는 ‘원민(冤民)’은 지배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권력이 진정 전율해야 할 존재는 바로

시대의 모순을 직시하며 가슴속에 분노의 칼을 품고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천하를 뒤엎는 ‘호민(豪民)’이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지식인이나 정치가가 아니었다. 위기마다 장롱 속의 금가락지를 꺼내 들고, 부당한 권력의 폭주 앞에서는 기꺼이 촛불과 횃불을 들었던 그 위대하고 영민한 백성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호민’이다.

 

지금 국민들은 숨죽여 사태를 응시하고 있다. 거대 의석을 무기로 벌어지는 입법의 폭거, 기득권 노조와의 야합, 사법부를 향한 테러를 지켜보며 민심의 임계점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국민을 선동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자신들의 패거리 권력만을 탐하는

소인배의 정치(政治)는, 머지않아 호민들의 거대한 역사적 심판대 위에 오를 것이다.

 

4. 민주주의의 복원과 상생의 미래를 위한 비전

 

파국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를 구출하고, 통일 조국의 도약대로 삼기 위해 우리는 지체없이 비정상(非正常)의 정상화를 이룩해야 한다. 이에 다음과 같이 국가가 나아가야 할 결연한 궤도를 제언한다.

 

첫째, 헌정 질서 수호와 의회 독재의 타파: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형식적 절차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헌법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복원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는 입법 폭주의 방파제가 되어, 시장경제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위헌적 법률의 효력을 단호히 정지시켜야 한다.

 

둘째, 사법의 완전한 독립과 법의 지배 확립: 권력이 사법을 겁박하는 시대는 야만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는 예외 없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법을 무력화하려는 어떠한 정치적 시도도 국가 내란에 준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단죄해야 한다.

 

셋째, 기득권 카르텔 청산과 상생 경제로의 전환: 정치권력과 결탁한 강성 노조, 이념 단체들의 배타적 특권을 박탈해야 한다. 청년 세대의 미래를 착취하고 소상공인의 숨통을 조이는 낡은 진영 논리를 폐기하고, 경제 살리기와 민생 회복이라는 국가 본연의 임무로 회귀해야 한다. 경제가 튼튼한 반석 위에 설 때 비로소 진정한 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역사의 준엄한 경고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정치꾼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명심하라. 주권자의 권리를 찬탈하고 국가의 토대를 허무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역사의 가장 비참한 파멸뿐이다. 비겁한 패거리 정치와 위선의 말 잔치를 당장 걷어치우고, 뼈를 깎는 성찰로 헌정의 본령(本領)으로 돌아오라. 천심(天心)을 대변하는 호민(豪民)의 서릿발 같은 눈동자가 지금 당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고 있다.

 

2026.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인

[필자의 한가한 시간]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