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핏속에 흐르는 묵향(墨香), 화이부동의 문학을 향하여]

► 여는 글: 붓끝에 맺힌 삶의 궤적, 그리고 결연함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6.15 09:31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이승섭시인]

세월의 능선을 넘으며 굽이치는 삶의 여정 속에서, 내 손에 들린 붓 한 자루는 언제나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이자 내 영혼을 지탱하는 굳건한 지팡이였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오직 숫자로 매겨지는 가치만이 칭송받는 미개하고 영악한 현대 사회 속에서, 당장의 배를 불려주지도 않는 문학의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외딴섬이 되기를 자처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생을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언어의 파편들이 세상을 향해 묵직한 화두를 던지라고 끊임없이 아우성쳤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타자기를 두드리며 지새운 숱한 밤들은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자, 동시에 내 영혼이 가장 맑게 정화되는 희열의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길 잃은 방랑자처럼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내 문학은 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가벼운 바람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선비의 꼿꼿한 기상과 내 삶의 치열한 궤적이 맞물려 빚어낸 묵직한 바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침반의 바늘이 끝없이 떨리며 마침내 정북(正北)을 가리키듯,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문학적 번뇌들은 이제 확고한 신념이 되어 나의 앞길을 명징하게 비추고 있다. 이 글은 평생을 시(詩)와 비평, 수필과 칼럼의 바다를 항해해 온 한 글쟁이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엄숙한 선언이자, 내 남은 생애를 문학이라는 제단에 기꺼이 바치겠다는 결연한 서약이다.

 

 

1.붓의 무게와 고뇌: 진정한 글쟁이를 향한 자문(自問)

 

"나는 글쟁이다." 세상에 대고 이렇게 떳떳하게 외치고 싶지만, 때때로 가슴 한구석에서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들과 마주하곤 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당장의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요, 크나큰 부귀영화를 안겨주는 것도 아님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나는 왜 이 형체도 없는 '정신의 줄기'를 붙들고 평생을 씨름하고 있는 것인가.

 

돌이켜보면 이러한 갈등과 불안은 문학인으로서 자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짜 글을 쓰는 사람만이 짊어져야 할 거룩한 숙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숫자와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만이 우선시되는 영악하고 미개한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정신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시(詩)를 신봉한다는 것은 외롭고도 고달픈 일이다. 그러나 글을 쓰며 번민하고 내 글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이 치열함 자체가, 내가 가짜가 아닌 진짜 문학의 길을 걷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방증임을 이제는 안다. 고뇌 없는 문학은 죽은 문학이기 때문이다.

 

2. 피에 흐르는 거룩한 멘토: 선비 정신과 굴곡진 삶의 융합

 

내게 멘토(Mentor)는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존재다. 내 핏속에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하는 삼경인데"를 읊으셨던 매운당 이조년 할아버님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며 꼿꼿한 기개를 보이셨던 문경공 이직 할아버님의 얼이 흐르고 있다. 대제학 문충공 도은 조상님에 이르기까지, 이 위대한 선비들이 남기신 단아하고 기품 있는 문학적 유산은 내가 붓을 꺾지 못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원천이자 내가 평생을 두고 좇아야 할 정신적 지주이다.

 

 

문호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의 맛을 모른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직면했던 가파른 운명의 언덕, 굴곡진 삶의 굽이마다 스며든 아픔과 투쟁의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 문학의 가장 큰 자산(Asset)이 되었다. 뼈아픈 현실의 고통을 겪어냈기에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선비의 강직함과 섬세한 애상을 나의 언어로 다시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지금 내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끝에 힘을 실어주는 이 벅찬 에너지가 바로 나의 뿌리다.

 

3.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과 독야청청한 붓끝

 

『논어』에 이르기를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하였다. 현대의 문단이 패거리를 짓고 얄팍한 명성을 위해 동이불화하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나는 결코 그 타 문단을 기웃거리며 시류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아픔에 공감하고 화합(和)하되, 결코 나만의 고유한 목소리와 선비적 줏대를 잃지 않는(不同) 길을 갈 것이다.

 

현재 칼럼과 비평, 시를 넘나들며 글을 쓰는 것 역시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니다. 비평과 칼럼은 시대적 현실 상황을 매섭게 꼬집는 지성(知性)의 칼이며, 시와 수필은 인간의 고달픔을 위로하는 감성(感性)의 약초다. 황금찬 스승님께 배운 정신의 줄기, 존경하는 채수영 박사에게 배운 시의 논리와 구조를 무기 삼아 이 두 날개를 활짝 펼치려 한다.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던지는 날카로운 비평가의 시선과 돌멩이 하나에서도 우주를 발견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품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독야청청(獨也靑靑)한 작가의 길이다.

 

4. 운명을 껴안은 자의 맹세: 긍지의 마침표를 찍으며

 

이제 내 마음속에서 "자신이 없다"는 나약한 속삭임은 영원히 지워버리기로 한다. 내 곁에는 언제나 가파른 언덕을 함께 오르는 동반자와 곁에 두지는 못하지만 믿음의 아우들과 위대한 시인들과 詩가 굳건히 버티고 있다. 내 길을 열어준 시가 나의 운명을 이끌어 왔음을 굳게 믿기에, 앞으로 다가올 시간 앞에서도 나 자신에게 더 이상 의심의 물음표를 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조년과 이직, 그 위대한 대문장가들의 얼을 고스란히 잇는 이 시대의 선비이자 떳떳한 글쟁이다. 문학에, 대한 연구를 결코,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며, 시대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인간을 향한 따뜻한 애정을 잃지 않겠다. 이 외롭지만, 영광스러운 붓을 쥔 자의 숙명을 기꺼이 껴안으며, 내 남은 생애를 바쳐 문학이라는 영원한 숲을 향해 묵묵히,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갈 것이다.

[출간 예정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