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특별 시론] 닫힌 철문 앞의 통곡,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해부한다

- 올림픽공원 사태가 폭로한 삼권(三權)의 기능 부전과 정상화를 위한 제언 1. 서막 : 축제의 요람에서 민주주의의 무덤으로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7.03 08:38

 

[필자]

어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를 찾았다. 1988년 전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의 비상을 알렸던 긍지와 화합의 요람이, 이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훼손된 치욕의 현장으로 전락해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 그 앞을 겹겹이 에워싼 2천여 명의 경찰 기동대, 그리고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대치의 현장.

국민이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치열하지만 아름다워야 할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를 지탱하는 뼈대인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해 내린 참담한 ‘난장판’이자, 길을 잃고 표류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지난 6월 5일 이후, 무려 27일이다.

국가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247만 장의 투표지와 380여 개의 투표함이 보관된 장소가 외부 시위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봉쇄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신성하게 다루어져야 할 주권자의 목소리가 감시용 CCTV조차 없는 어둠 속에 한 달 가까이 인질처럼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초현실적인 사태 앞에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 비극은 단순한 선거 관리의 실무적 부실로 치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떠받치는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3권(三權) 시스템 전체가 얼마나 심각한 복합적 기능 부전(Multiorgan Failure)에 빠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국가적 재난이다.

우리는 지금 이 사태를 단순히 분노하고 조롱하는 것을 넘어, 메스를 들고 썩어들어간 환부를 냉철하게 해부해야 할 역사적 책무 앞에 서 있다.

 

2. 행정의 침몰 : 신성한 주권은 어떻게 방치되었는가

 

가장 먼저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은 선거 행정을 총괄하는 헌법상 독립기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태의 발단부터가 IT 강국이자 행정 선진국을 자부하던 대한민국의 국격을 진흙탕에 처박은 원시적 참사다.

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요 예측조차 실패한 것은 행정력의 완벽한 붕괴를 의미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경악스러운 것은 그 이후의 대처였다.

사상 초유의 혼란 속에서도 선관위는 막대한 표가 보관된 장소의 보안을 책임지지 않았다.

물리적 충돌이 예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즉각적이고 안전한 제3의 장소로 투표함을 이관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감시 장치인 CCTV조차 확보하지 않은 채 상황을 수수방관했다.

 

이는 단순한 무능을 넘어선 국가 기관으로서의 명백한 직무 유기다.

선관위는 그간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견고한 방패 뒤에 숨어 외부의 감시와 통제를 거부해 왔다.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기관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공직 사회의 뿌리 깊은 보신주의와 무책임 카르텔이 247만 명의 주권을 캄캄한 체육관 바닥에 내팽개친 것이다.

 

3. 사법의 마비 : 27일간의 무법지대, 눈치 보는 공권력

 

행정의 빈자리를 채우고 법과 질서를 수호해야 할 사법부와 치안 당국 역시 뼈아픈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투표함이 봉쇄된 27일이라는 시간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공권력이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증거물이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경찰과 검찰은 특정 단체의 불법적인 점거를 신속하게 해산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행여나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공권력 투입을 주저하며 눈치만 살핀 것이다.

'법 앞의 평등'과 '신속한 엄정 집행'이라는 사법의 대원칙은 얄팍한 정치적 셈법 앞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법은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불법과 떼법이 국가의 중요 시설을 점거해도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법치의 실종은 국민에게 ‘힘과 목소리 큰 자가 정의’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며, 궁극적으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사회적 야만 상태를 초래한다.

올림픽공원 앞의 2천 명의 기동대는 질서를 수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결단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국가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거대한 병풍에 불과했다.

 

 

4. 입법의 타락 : 폐허 위에서 벌어진 진영 논리의 굿판

 

여기에 불난 집에 부채질을 넘어 기름을 부은 것은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다.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비상시국에 국회는 사태를 수습하고 국민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이 엄중한 위기마저 철저히 당파적 이익을 위한 정쟁의 불쏘시개로 전락시켰다.

초당적으로 신속하게 대처해야 할 국정조사 특위 구성은 한 달 가까이 지연되었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늑장 대응의 결과였다.

뒤늦게 찾아간 현장 검증의 자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상대 진영을 향한 저주의 언어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오직 ‘내 편은 선이고 네 편은 악’이라는 극단적 팬덤 정치와 진영 논리만이 폐허가 된 개표소 앞을 맴돌았다.

국민의 불안과 국가의 위기를 인질 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만 챙기려는 구태의연한 정쟁.

이것이 바로 대중문화와 사회 현상을 관통하며 보아온 우리 정치의 가장 참담하고 비극적인 연출이다.

 

5. 처방 : 타협 없는 특검의 칼날과 일벌백계의 당위성

 

이처럼 행정, 사법, 입법이 모두 고장 난 총체적 난맥상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적당한 정치적 타협이나 선관위의 기만적인 ‘셀프 조사’로는 결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썩은 살을 도려내지 못하는 칼을 수술대에 올릴 환자는 없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하고도 명확한 해법은 '조건 없는 특별검사제(특검)'의 전면 도입뿐이다.

기존의 정치권과 행정부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되고 성역을 두지 않는 특검만이 증거의 인멸을 막고 객관적 진실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공무원의 과실과 무능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특정 배후 세력이 개입된 의도적인 조작과 선거 방해 공작이었는지 압수수색과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한 점 의혹 없이 낱낱이 재구성해야 한다.

 

나아가 범죄 혐의가 드러날 경우, 그 처벌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중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심장인 선거 제도를 훼손한 자, 국가 중요 시설을 불법 점거하여 법치를 유린한 자,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여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고위 공직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이 허용하는 최고 수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 ‘일벌백계(一罰百戒)’야말로 무너진 국가 기강을 다잡고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첫 단추이자, 민주주의를 농단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다.

 

6. 재건 : 국가 대개조를 위한 구조적 쇄신

 

우리는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이 사안의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된다.

사후 처벌을 넘어, 대한민국이 다시는 이런 후진국형 참사를 겪지 않도록 국가 시스템 전반을 투명하게 재설계하는 대개조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첫째, 선관위에 대한 맹목적인 독립성 부여를 재고하고 실질적인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감사원의 상시적 직무 감찰을 의무화하고, 투개표 과정 전반에 걸쳐 시민 사회와 다당이 참여하는 촘촘한 상호 감시망을 구축해야 한다.둘째, 선거 인프라의 완전한 디지털화 및 보안 강화를 이뤄내야 한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모든 보관소의 24시간 CCTV 공개를 법제화하여 불필요한 음모론이 싹틀 토양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셋째, 극단적인 당파싸움을 제도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정쟁을 멈추지 않는 국회에 대해서는 세비 삭감 등의 강력한 페널티를 부여하고,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를 타파할 선거구제 개편 등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7. 결어 : 골든타임의 끝자락에서 다시 부르는 희망

 

올림픽공원의 난장판은 대한민국의 오만함이 빚어낸 참사이자, 곪아 터지기 직전이었던 시스템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비극이다.

수많은 지식인과 평론가, 그리고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국민 모두가 이 거대한 난맥상 앞에서 깊은 탄식과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운 법이다.

분노와 냉소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위기를, 수십 년간 묵혀온 우리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고 건강한 세포를 이식하는 고통스러운 외과 수술의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

당파적 이익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오직 국민과 국가의 미래만을 바라보자.

원칙대로 엄중하게 처벌하고, 투명하게 제도를 재건하자.

그것만이 이 혼돈의 강을 건너,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 법치 국가이자 성숙한 민주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침몰하는 배를 구해낼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

닫힌 철문 앞에서 통곡하던 국민의 눈물이, 내일의 굳건한 국가를 세우는 주춧돌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젋은이들의 1인 시위]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