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칼럼] 청년의 절규를 돈으로 틀어막으려는 자들, 그 끝은 파멸뿐이다

1. 잠실의 함성, 신뢰가 붕괴된 사회를 향한 고발장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6.27 09:06

 

[필자]

거리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이다. 잠실 올림픽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터져 나온 젊은이들의 함성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의 시스템 안에서 숨을 쉴 수 없게 된 세대의 처절한 생존 신고이자, 부패한 기득권을 향해 날리는 최후통첩이다. 투표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수개표’를 부르짖는 청년들의 목소리에는, 이 사회의 어떤 룰(Rule)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깊고 어두운 절망이 배어 있다.

 

1. 잠실의 함성, 신뢰가 붕괴된 사회를 향한 고발장

 

기성세대는 묻는다. 왜 저토록 청년들이 선거 과정과 개표의 투명성에 집착하느냐고. 그것은 단순히 특정 선거의 승패를 따지기 위함이 아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고도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해야 하는 세대, 영끌을 해도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 사기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세대에게 ‘공정성’은 목숨과도 같은 마지막 동아줄이다.

 

그들은 입시에서, 취업에서,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서 룰을 지키는 자가 바보가 되는 끔찍한 불공정을 뼛속 깊이 체험해 왔다. 그런 청년들에게 대의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선거마저 투명성을 의심받는 상황은,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전체가 자신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확신에 불을 지핀 것이다. ‘수개표’를 향한 청년들의 외침은, 기득권이 짜놓은 불투명한 ‘블랙박스’를 거부하고 내 눈으로 직접 공정을 확인하겠다는 피 맺힌 고발장이다.

 

2. 구조적 절망에 빠진 청년들, 그리고 치솟는 환율

 

지금 청년들의 삶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연일 널뛰며 치솟는 환율은 수입 물가를 자극해 당장 청년들의 밥상머리와 출퇴근길 교통비부터 옥죄고 있다. 라면 한 봉지, 밥 한 끼의 가격표 앞에서 수없이 망설여야 하는 것이 2026년 대한민국 청년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는 말라붙었다. 지역 공동체와 마을 단위의 풀뿌리 경제마저 팍팍해져 가는 마당에, 사회로 첫발을 내디뎌야 할 청년들은 출발선에서부터 빚더미에 앉거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다. 구조적인 저성장과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뼈아프게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이들이 바로 청년 세대인 것이다.

 

3. 광장의 분노를 모욕하는 천박한 매표 행위

 

이토록 참담한 현실 앞에서, 정치를 책임져야 할 위정자들의 행태는 분노를 넘어 비애감마저 들게 한다. 청년들이 광장에 모여 공정과 투명성을 부르짖을 때, 권력자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뼈를 깎는 자성으로 답하기는커녕 참으로 모욕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국민의 혈세를 헐어 ‘돈’을 뿌리겠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현금을 쥐여주며 불만을 잠재우려는 이 막가파식 포퓰리즘은 청년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푼돈 몇 푼의 적선이 고파서가 아니다. 땀 흘려 일하면 정당한 대가를 받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상식적인 국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주권자의 정당한 분노를 ‘돈으로 무마할 수 있는 징징거림’ 정도로 취급하는 권력의 오만함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다.

 

4. 권력 연장을 위한 꼼수 개헌, 누가 청년의 피눈물을 닦을 것인가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 아비규환의 와중에 여당을 비롯한 기득권 정치 세력이 슬그머니 ‘개헌’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의 피눈물이 거리를 적시고 경제가 파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권력을 어떻게 분점하고 기득권을 어떻게 연장할 것인가를 두고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겠다는 얄팍한 술수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해야 할 헌법 개정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방패막이나 꼼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광장에서는 투표와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 룰을 망가뜨린 장본인들이 룰을 고치겠다며 나서는 꼴이다. 불이 난 집에서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불타는 집문서를 어떻게 나눌지 싸우고 있는 이 기막힌 촌극은 청년들의 절망을 분노를 넘어선 증오로 바꾸고 있다.

 

체주의의 망령, 방관을 넘어 연대와 행동으로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가리키는 파국적 방향성이다. 청년들의 합리적인 의심과 해명 요구를 묵살하는 불통. 국가 재정을 무기 삼아 현금 살포로 대중을 마취시키려는 시도. 위기 상황을 틈타 제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려는 개헌 꼼수. 이것은 역사 속에서 전체주의와 독재가 태동하던 교과서적인 전철과 너무도 맞닿아 있다. 권력이 국민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폭주할 때, 그리고 대중이 국가가 던져주는 시혜적 혜택에 길들여져 저항의 야성을 상실할 때 민주주의는 죽는다.

시대의 아픔을 짚어내는 자로서 작금의 위정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당장 오만의 폭주를 멈추라. 돈으로 청년들의 분노를 살 수 없고, 얄팍한 개헌 꼼수로 국민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가릴 수 없다. 광장의 외침에 담긴 절망의 무게를 깨닫지 못하고 기만으로 일관한다면, 머지않아 도도한 역사의 파도 앞에 철저히 파선(破船)하고 말 것이다.

이제 묻고자 한다. 이 무거운 시대의 짐을 언제까지 청년들의 가냘픈 어깨 위에만 지워둘 것인가. 피와 땀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일궈냈다고 자부하는 우리 기성세대와 깨어있는 시민들이 이제는 응답해야 할 때다. 청년들이 쏘아 올린 절박한 횃불을 우리가 건네받아 들고, 광장으로, 거리로, 불의한 권력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저들의 막가파식 폭주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나 전체주의의 암흑으로 몰아넣기 전에, 어른들이 거대한 방패가 되고 시민들이 단단한 성벽이 되어 청년들의 곁을 지켜야 한다.

방관은 공범을 낳고, 침묵은 민주주의의 무덤을 판다. 청년의 절규가 잠실벌의 외로운 메아리로 흩어지지 않도록, 이제 우리가 함께 행동하고 함께 분노해야 할 시간이다. 권력의 꼼수는 짧고, 깨어 행동하는 시민 연대의 심판은 길다.

 

2026.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출간 예정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