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시학 논고] 비움과 채움의 현상학: 곡신(谷神)의 서정과 무한 창작론

1. 서론: 과잉의 시대, 문학의 종점(終點)을 묻다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07.26 09:28

 

[필자]

문학의 종점은 어디인가.

 

텍스트가 범람하고 인공지능과 매체가 소음을 양산하는 2026년의 출판 지형도 속에서, 이 질문은 더욱 서늘한 실존적 중력으로 다가옵니다. 삶이란 본래 비움과 채움이라는 서사적 톱니바퀴가 교차하는 무대입니다. 배가 고프면 몸을 채워야 하고, 채워진 것은 다시 비워져야 하는 생리적 순환은 단순한 생존 양식을 넘어 윤회와 존재의 바퀴를 굴리는 근본 동력입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4장에서 *"도는 비어 있어 아무리 써도 차지 않으며, 깊어서 만물의 으뜸 같다(道沖而用之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라고 설파했습니다. 자연의 질서 안에서 있음(有)과 없음(無)의 문제는 우주론적 순환과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인간이 먹고 배설하며 다시 새로운 허기를 느끼는 3단계의 과정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하드웨어 속에서 인간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운용하는 지혜로운 소프트웨어입니다. 글을 쓴다는 행위 역시 이 지혜로운 자연의 순환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비움이 전제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진행형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본론 1: 곡신(谷神)의 창조성과 다작(多作)의 시학적 정당성

 

그러나 순수한 예술 창작의 영역에 도달하면, 인간의 편의나 일상적 절제의 기준을 뛰어넘는 미학적 역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미덕일지 몰라도, 시적 창작의 세계에서는 노자 제5장의 경구처럼 "비어 있어도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나오는(虛而不屈, 動而愈出)"역설의 신비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준을 뛰어넘어 쉼 없이 사유를 퍼 올리는 시인의 다작(多作)은 단순한 탐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미학적 신명(神明)이자, 존재의 본질에 닿고자 하는 거룩한 광기(狂氣)입니다. 노자가 말한 여성적 창조의 근원이자 만물의 어머니인 ‘곡신(谷神)’의 생산성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어머니가 셋의 아이를 낳고, 어떤 어머니가 열둘의 아이를 생산하듯, 시인 또한 곡신의 생명력을 태생적으로 구현하는 창조적 주체입니다.

 

깊은 무의식의 어둠인 '연혜(淵兮)'의 심해로 내려갈 때, 시인은 칼 융(Carl Jung)이 강조한 '망각(Forgetting)을 통한 비움'을 경험합니다. 잊어버림, 즉 지상의 번뇌를 비워내는 절차를 통해서만 무의식의 원형(Archetype)에 숨겨진 신비로운 서정의 원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창작에서 비움은 소멸이 아니라, 더 거대한 존재를 채워 넣기 위한 공간의 확보인 것입니다.

 

3. 본론 2: 영혼의 허기와 결핍의 미학

 

비움과 채움이 이루어내는 시적 정점은 현실의 결핍을 숭고한 언어로 승화시키는 자리에 있습니다.

 

시를 관조하며 / 밖으로 내보낸 후 / 빈 배에 출렁이는 뱃살이

시원하여 밀물로 다가온 / 파문의 고요 앞에 / Ego(자아)가 흔들린다.

누구를 보냈다는 이유로 / 망연자실의 파노라마는 / 또 무엇인가?

찾고 있는 / 흔들리는 봄바람 기다리듯 / 보낸 느낌의 허전도 이럴까?

여전히 정적이 쌓이는 / 허기가 / 하냥 그렇다.— 〈배고픔〉 전문

 

한 편의 시를 관조하고 세상 밖으로 출산한 직후, 시인은 비워진 빈 배에 출렁이는 시원함을 느낌과 동시에 밀물처럼 다가오는 고요 앞에 자아(Ego)의 흔들림을 경험합니다. 무언가를 비워냈다는 아득한 허전함, 그리고 정적 속에 다시 쌓여가는 영혼의 배고픔.

 

이 '생리적 허기이자 존재론적 결핍'이야말로 시인이 날마다 반짝이는 정직한 눈으로 세상을 탐색하게 만드는 위대한 엔진입니다. 시인은 결핍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꺼이 상상력의 바다로 몸을 던지는 영원한 득음(得音)의 유목민입니다.

 

4. 결론: 종점 없는 문학, 영원한 진행형의 선언

 

결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진짜 동력이 실존적 배고픔과 채움이라면, 그 창작의 영토를 넓히는 도구는 단연 '상상력'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글을 쓰고 사유를 퍼 올리는 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자신을 비우고 채우는 구원의 절차입니다.

문학의 종점이 어디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 시학론은 단호하게 답합니다. 자연의 순환에 끝이 없듯, 비우고 채우는 창작의 문학에도 결코 마침표나 종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투명하게 비워내고, 그 빈 자리에 시대를 관통하는 서정적 온기와 철학을 다시 채워 넣는 한, 우리의 문학은 영원히 종점에 도달하지 않는 '아름다운 진행형(In Progress)'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백의 무게를 견디며 오늘도 펜을 쥐는 시인의 허기야말로, 세상을 구원하는 가장 빛나는 문학의 시작점입니다.

 

2026.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출간 예정]

 

이분희 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