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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 신화와 역사의 대서사시 '그리스 인문기행3' 출간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6.09.01 07:14

 

『그리스 인문 기행 3』의 여정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탁을 통해 신의 뜻을 물었던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를 직접 걸으며 오늘의 삶을 성찰해 온 인문학 칼럼니스트 남기환의 『그리스 인문 기행』 시리즈가 세 번째 이야기로 이어진다. 1권 펠로폰네소스의 신화와 역사, 2권 그리스의 섬과 바다에 남은 신화의 기억, 3권은 그리스 문명과 사상이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폴리스에서 더 넓은 세계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세 권에 걸친 여행을 통해 저자는 그리스의 유적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곳에서 탄생한 신화와 역사, 철학과 문학을 오늘의 삶과 연결한다.

[그리스 인문 기행 3]

 

이번 여정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적 자체가 아니다. 신탁을 믿었던 사람들, 자유를 위해 전쟁터에 나선 시민들, 민주정을 만들고 또 스스로 흔들었던 아테네인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인 소크라테스, 폴리스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세계를 꿈꾸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던진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민회에 모여 민주정의 역사를 만들어간 프닉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
시민의 목소리가 정치가 되었던 자리 너머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여정의 출발지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믿었던 델포이다. 아폴론 신전과 아테네인의 보물창고, 세계의 배꼽을 의미하는 옴파로스, 청동 뱀의 기둥에 얽힌 역사를 따라가며 저자는 신탁과 운명, 인간과 신의 관계를 살펴본다. 미래를 알기 위해 신에게 답을 구했던 고대인의 모습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과 겹쳐진다.

[마라톤 평원에 세워진 밀티아데스 장군 동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그리스인 노부부, 페르시아에 대항해 폴리스의 자유를 지켜낸 용기를 기리고 있다.]

델포이에서 신에게 운명을 물었다면 마라톤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 했던 인간들을 만난다.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선 아테네 시민들과 전사자들의 고분, 승전을 기념하는 흔적을 돌아보며 저자는 승리의 영광보다 그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과 희생에 주목한다. 자유는 저절로 주어진 가치가 아니라 누군가가 대가를 치르며 지켜낸 가치였다는 사실을 마라톤의 땅에서 되새긴다.

[민주정과 철학, 예술이 꽃피었던 아테네를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 정상의 파르테논
신전은 2,50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오늘도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책의 중심에는 아테네가 있다. 저자는 모나스티라키 광장에서 시작해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의 문, 아카데미아와 아레오파고스, 프닉스 언덕과 아고라를 지나 아크로폴리스까지 직접 걸으며 도시의 공간과 고전 속 기록을 겹쳐 읽는다. 그 길에서 만나는 것은 민주정의 영광만이 아니다. 시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과 함께 민주정 내부에서 발생한 갈등과 균열, 자유와 법의 충돌, 다수의 판단이 언제나 정의로운가라는 문제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아크로폴리스 너머로 보이는 피레우스 항구. 고대 아테네는 장벽으로 도시와 항구를 연결해 바다로 나아갔고,
이를 기반으로 에게해의 해상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질문의 한가운데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자신의 철학과 양심을 버리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인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길을 따라가며 저자는 묻는다. 자유로운 사유란 무엇인가. 개인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민주정은 자신을 비판하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크로폴리스의 폐허와 수니온 곶의 신전,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찬란했던 도시의 영광과 함께 인간이 만든 이상이 어떻게 균열되고 무너질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아테네를 떠난 여정은 테베와 테살로니키로 이어진다. 크세노폰의 『헬레니카』에 기록된 역사를 따라 아테네와 스파르타 이후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했던 테베의 흥망을 살펴보고, 테살로니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를 통해 폴리스에 머물렀던 그리스 세계가 어떻게 더 넓은 세계와 만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마지막 목적지는 거대한 바위 절벽 위에 수도원이 자리한 메테오라다. 신탁으로 시작된 여행은 이곳에서 다시 인간의 내면으로 돌아온다. 신전과 전쟁터, 민주정의 광장과 철학자의 죽음, 제국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지나 마침내 절벽 위 수도원에 선 저자는 인간이 유한한 삶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지를 생각한다.

 

『그리스 인문 기행 3』은 유적지를 소개하는 여행 안내서도, 고대 그리스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역사책도 아니다. 저자는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기록을 들고 실제 그리스의 도시와 유적을 걸으며 문헌과 현장, 역사와 오늘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돌과 폐허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소가 된다. 신의 뜻을 믿었던 델포이에서 인간의 용기를 보여준 마라톤으로, 민주정의 이상과 한계를 드러낸 아테네에서 폴리스의 패권이 교체된 테베로,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와 메테오라의 침묵까지. 그 긴 여정 끝에서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은 결국 하나, “인간은 어떻게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이다.

 

『그리스 인문 기행 3』은 그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고전을 들고 길을 걸으며 스스로 답을 찾아보자고 권한다. 2,500년의 시간을 건너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 철학과 민주정의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고전을 들고 떠난 세 번의 여행은 결국 과거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으로 완성된다.

이승섭 연합취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