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글은 마음의 통찰이다]

― 왜 좋은 글에는 마음의 깊이가 있어야 하는가?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09.17 12:30

 

[필자]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신문 칼럼도 썼고, 시도 썼으며,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생각들을 글로 옮겨왔다. 때로는 책을 읽고 글을 썼고, 때로는 사람을 만나고 글을 썼으며, 어떤 때는 말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아 그것을 붙잡고 며칠씩 생각하다가 한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다시 내가 쓴 글들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잘 쓴 문장인데도 마음에 남지 않는 글이 있다. 문법도 맞고, 지식도 풍부하며, 미사여구도 넘치는데 이상하게 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반대로 문장은 투박하고 화려하지 않은데도 한 문장이 오래 가슴에 머무는 글이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이제 그 차이가 마음의 통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글은 지식의 나열이 아니며 문장의 장식도 아니다.

글은 결국 한 인간이 세상을 오래 바라본 뒤 자기 마음속에서 건져 올린 하나의 깨달음이다.

 

그래서 좋은 글은 머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머리에서 출발할 수는 있지만 결국 마음을 지나야 한다. 지식은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정보는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아름다운 문장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통찰은 그렇게 얻어지지 않는다. 통찰은 살아온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도 오래 생각해 본 사람, 실패하고도 자기 자신을 돌아본 사람, 사랑하고 이별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 사람, 성공한 뒤에도 성공의 허무를 경험한 사람,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 사람에게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 눈으로 쓰는 글이 통찰의 글이다.

나는 이것을 마음의 깊이라고 부르고 싶다.

 

1. 많이 아는 것과 깊이 아는 것은 다르다

 

사람은 많이 알수록 좋은 글을 쓸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많이 읽었다고 해서 깊은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학력이 높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옛사람들이 학문을 단순히 지식의 축적으로 보지 않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의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말을 글쓰기에 그대로 적용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읽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함께 가야 한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자기 생각이 없다면 그 글에는 남의 문장만 쌓이게 된다. 반대로 자기 생각이 많아도 읽고 배우는 일이 부족하면 자신의 좁은 경험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글은 배움과 사유가 만나는 에서 태어난다.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을까?”라고 묻는 것. 사건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서 멈추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묻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라고 묻는 것. 바로 그 질문의 깊이가 글의 깊이를 만든다.

 

2. 글은 사건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건 뒤의 마음을 쓰는 것이다

 

신문에는 매일 수많은 사건이 실린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으며,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헤어진다. 성공한 사람이 있고 실패한 사람이 있으며,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사건 자체는 문학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 뒤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다. 한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보다 왜 떠났는지가 중요하고, 왜 떠났는가보다 남겨진 사람이 그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 울었다는 사실보다 왜 울었는지, 그리고 그 눈물이 지나간 뒤 그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문학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사건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마음을 찾아가는 일이다. 누군가가 화를 냈다면 그 화만 기록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화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과 외로움까지 바라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욕심을 부린다면 욕심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욕심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인간을 단순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잘못을 보면서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묻는다. 그 사람의 성공을 보면서도 그 성공 뒤에 있었던 외로움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실패를 보면서도 실패한 사람에게 아직 남아 있는 인간의 존엄을 바라본다. 그때 글은 비로소 사람을 살피는 글이 된다.

 

3. 통찰은 오래 바라보는 데서 나온다

 

통찰이라는 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통찰은 특별한 천재의 능력이 아니다. 나는 통찰이란 남들이 한 번 보고 지나간 것을 한 번 더 바라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꽃이 피었다. 누구나 본다. 그러나 시인은 그 꽃이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와 바람을 견뎠는지를 생각한다. 노인이 길을 걷는다.

누구나 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노인이 지나온 수십 년의 시간을 상상한다. 한 아이가 울고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아이의 울음 뒤에 있는 두려움까지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서 통찰이 시작된다.

보이는 것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 문학은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에게 모방의 본능이 있으며, 인간은 모방을 통해 배우고 그 배움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또한 시는 단순히 사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삶을 구조화하여 보여주는 예술이라고 보았다. 나는 여기에서 문학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한다. 문학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고 그 속에 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한 사람의 삶을 쓰지만 결국 인간 전체를 이야기한다. 시인은 작은 꽃 한 송이를 쓰지만 결국 존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수필가는 자신의 하루를 쓰지만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보는 것. 구체적인 삶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통찰이다.

 

4. 좋은 글은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본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허물은 쉽게 보인다. 그러나 내 허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남의 욕심은 쉽게 비판하면서 내 욕심에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거짓말에는 분노하면서 내 거짓말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글이 달라진다. 프랑스의 몽테뉴가 위대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다. 그는 『수상록』에서 거대한 철학 체계를 세우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 습관과 약점까지 글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인간을 탐구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글쓰기의 태도다. 자기를 숨기지 않고 바라보는 것.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왜 화를 내는가. 왜 어떤 말에는 상처를 받고 어떤 말에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왜 나는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다른 사람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가. 왜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왜 때로는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가. 이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순간 글은 깊어지기 시작한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글은 쉽게 남을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 사람의 글에는 이상하게 겸손함이 생긴다.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외로움을 말하면서 자신도 외로운 인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 앞에서 자신도 얼마나 서툰 존재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은 글에는 자기 고백의 그림자가 있다.

 

5. 마음의 통찰은 상처를 지나온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상처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사람을 쉽게 판단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할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욕심이 많을까. 왜 저 사람은 용서하지 못할까.

그러나 세월을 살아보면 사람에게는 저마다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약할 수 있다. 누군가의 무뚝뚝함 뒤에 외로움이 있을 수 있고, 누군가의 공격성 뒤에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인간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나는 이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인간을 변명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좋은 글은 독자에게 “저 사람이 잘못했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오래 살아 움직일 때 글은 생명을 얻는다.

 

6. 문장은 머리로 만들지만 울림은 마음에서 나온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문장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멋진 표현을 찾고, 어려운 말을 찾아 넣고, 한자어를 사용하고, 시적인 비유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아름다운 문장이 반드시 아름다운 글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아름다운 문장은 때로 독자와 글 사이에 벽을 만들기도 한다. 진짜 울림은 화려한 단어에서 나오지 않는다. 진짜 울림은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보다 아무 말 없이 오래 곁을 지켜준 행동이 더 큰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다. 글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정말로 느끼고 생각한 것이 문장 안에 들어가면 단순한 문장도 살아난다. 반대로 아무리 화려한 문장을 써도 자기 것이 아니라면 독자는 그것을 알아챈다. 독자는 글의 내용만 읽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의 마음까지 읽는다.

그래서 글에는 글쓴이의 삶이 묻어난다. 얼마나 많이 살았는가보다 얼마나 깊이 바라보았는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가보다 읽은 것을 자기 삶 속에서 얼마나 오래 생각했는가가 중요하다.

 

7. 좋은 글에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다. 뉴스도 빠르고, 정보도 빠르고, 사람의 판단도 빠르다. 무언가가 일어나면 곧바로 말해야 하고, 누군가가 말하면 즉시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글은 그렇게 빨리 익지 않는다. 좋은 글에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 일어난 뒤 바로 쓰는 글과 며칠,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지난 뒤 쓰는 글은 다르다. 시간은 사건에서 감정을 조금 걷어내고 의미를 남겨준다. 젊은 날에는 사랑이 끝나면 그것이 세상의 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젊은 날에는 실패가 인생의 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그 실패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것이 경험이 통찰로 바뀌는 과정이다. 시간이 경험을 숙성시키고, 사유가 경험을 통찰로 바꾼다. 그리고 그 통찰이 언어를 만나면 글이 된다.

 

8. 결국 글은 자기 마음의 깊이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사람은 글을 쓰면서 세상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같은 봄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꽃을 보고, 어떤 사람은 꽃이 지는 것을 본다. 같은 이별을 겪고도 어떤 사람은 상대방을 원망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했던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같은 죽음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남겨진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사건은 하나인데 해석은 다르다. 왜 그런가. 사람마다 마음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글쓴이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준다.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면 내 마음의 폭이 좁은 것일 수 있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의 공간이 조금 넓어진 것일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잘 쓰려면 먼저 인간을 잘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을 잘 바라보려면 자기 자신부터 바라보아야 한다.

 

9. 통찰이 있는 글은 독자의 마음에서 다시 태어난다

 

좋은 글은 글쓴이가 모든 답을 말해주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글은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했는가.” “나는 성공만을 좇으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면 글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글은 독자의 삶 속에서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문학의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종이에 글을 쓰지만, 독자는 자기 마음에 글을 쓴다. 그래서 좋은 글은 읽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며칠 뒤에도 생각나고,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다시 떠오르며, 오래전 잊었던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울림이다. 울림은 소리가 아니다. 마음속에서 계속 진동하는 생각이다.

 

 

10. 그래서 나는 글을 마음의 통찰이라고 부른다

이제 나는 글을 이렇게 생각한다.

글은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지식만으로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생각만으로 깊은 글이 되지도 않는다.

글은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이지만 아름다운 말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없다. 결국 글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마음의 통찰이다.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무엇을 느꼈는가. 무엇을 느꼈는가보다 무엇을 생각했는가. 무엇을 생각했는가보다 그 생각을 통해 인간과 삶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가. 바로 거기까지 가야 글은 깊어진다. 나는 이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된 문학이 살아남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시대는 변하고 언어도 변한다. 그러나 인간의 외로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변하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변하지 않는다. 배신의 아픔도, 이별의 슬픔도, 죽음 앞의 두려움도 여전히 인간의 마음에 남아 있다. 고전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까닭은 그들이 오래전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한 배움과 사유의 관계도 결국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성찰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와 모방과 인간의 행동을 논한 것도 결국 인간이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몽테뉴가 자기 경험을 끊임없이 들여다본 것도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시대는 달라도 질문은 하나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좋은 글은 언제나 그 질문을 품고 있다.

 

맺는 말 글은 결국 마음이 지나간 자리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면서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 바라보는 사람이다.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의미를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마침내 펜을 들면 글이 나온다. 그래서 글은 손으로 쓰지만 사실은 마음으로 쓴다. 문장은 머리에서 만들어지지만 통찰은 삶에서 나온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마음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줄의 문장을 읽고도 자기 삶을 돌아볼 줄 안다면 그 한 줄은 평생의 스승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을 만나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한숨 하나에서 인간의 외로움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한 권의 책보다 더 큰 공부가 될 수 있다.

 

나는 이제 글을 쓰면서 화려한 문장을 먼저 찾지 않으려 한다. 먼저 묻고 싶다.

 

내가 정말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내가 정말 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는가.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파문 하나라도 일으킬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글을 시작하고 싶다. 왜냐하면 글은 결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기 마음속에서 발견한 진실을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은 지식을 자랑하지 않는다.

 

►좋은 글은 마음을 열어 보인다.

►좋은 글은 사람을 가르치기보다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좋은 글은 결론을 강요하기보다 질문 하나를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 머물 때, 글은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나는 그것을 마음의 통찰이라고 부른다. 결국 글은 마음이 지나간 자리다.

 

►많이 살아온 사람의 글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고,

►많이 사랑한 사람의 글에는 사랑의 흔적이 있으며,

►많이 아파본 사람의 글에는 타인을 이해하는 온기가 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 사람의 글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한 줄이 남는다.

글은 마음의 통찰이다. 세상을 바라본 눈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본 뒤 자기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세상을 바라본 눈. 그 두 번째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마침내 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어쩌면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가장 오래된, 공부가 아니겠는가?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2026. 09.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무전 여행]

 

이분희 취재본부장
BlinkH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