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폭발 장면과 정치인들의 날 선 발언을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현 글로벌 미·이란 전쟁 국면을 어떻게 보아야 정답인가?"
필자의 입장에서 단언하건대, 복잡계로 얽힌 현대 국제정치에서 단 하나의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노이즈 속에서 '가장 덜 위험한 해석'과 '가장 현실적인 판단 기준'을 세우는 것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정 답일 것이다 미, 이란의 충돌을 헐리우드 영화처럼 선과 악의 구도로 단순화하는 것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프레임에 불과하다.. 이 사태는 국제질서의 재편, 에 너지 패권, 각국의 선거 정치, 군산복합체의 생존 전략, 그리고 중동 지역의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파열음으로 읽어내야 한다.
대중문화에서 갈등은 언제나 명확한 빌런과 히어로를 요구하지만, 현실의 지정학은 철저한 이익의 교환소이다. 미·이란의 군사적 긴장은 단순히 종교적 신념 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목줄을 쥐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통제권 싸움이자, 미국 내 정치 권력
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핵심 변수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 지도자들에게 외부의 적은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가장 효과적인 스펙터클로 기능하기에 그렇다.
또한, 우리는 이 분쟁의 이면에 존재하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그림자를 간과해서는, 안되며. 전쟁의 위협이 고조될수록 특정 산업의 주가는 요동치며, 이는 다시 정책 결정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시청률과 클릭 수를 위해 자극적인 폭발 장면과 극단적인 수사를 반복 재생산하며, 대중은 이를 마치 한편의 스릴러 드라마처럼 소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충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뉴스 헤드라인의 자극적인 단어 들을 걷어내고, 그 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각국의 '국가 이익'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정치는 미국 중심의 단일 패권 체제가 저물고, 다극화 (Multipolarity) 시대로 진입하는 과도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 과거의 냉전이 이데올로기 대립이었다면, 지금의 글로벌 정치는 '자국 우선주의'와 '경제 안보'를 방패로 삼은 각자도생의 투기장이다. 각국은 반도체, 희토류, 배터리 등 핵심 자원과 기술을 무기화하며, 동맹의 가치조차 경제적 이익 앞에서는 언제든 재 협상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대중의 불안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것이 바로 극단적 포퓰리즘이다. 글로벌 리더들은 구조적인 경제 위기나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의 적이나 특정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 한다. 진영 간의 서사 전쟁(Narrative War)은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을 타고 국 경을 넘어 전파되며, 글로벌 정치를 이성적인 외교의 장이 아닌 감정적인 선동의 무대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포인트: 글로벌 정치·외교의 변화]
정치가 서사를 만든다면, 경제는 그 서사에 영수증을 청구하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경제를 흔드는 가장 큰 변수는 지정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이다
전쟁과 제재로 인해 기존의 최적화된 글로벌 공급망이 끊어지면서, '비용 효율성'의 시대는 끝나고 '안보를 위한 중복 투자'의 시대, 즉 고비용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동반한다.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은 모든 산업의 기초 비용을 상승시키며,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 자국 내 제조업을 부흥시키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글로벌 부채의 급증과 개발도상국들의 자본 유출을 초래하고 있다.
한치앞을 알 수 없는 군사적 긴장감은 금융 시장의 피로도를 극대화하며, 실물 경제의 침체와 자산 시장의 거품이라는 모순된 현상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치의 향방: 구조적 위기와 대립의 쳇바퀴
이러한 거대한 글로벌 격랑 속에서 대한민국의 정치는 깊은 구조적 수렁에 빠져 있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외교, 안보 이슈의 국내 정치화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나 중동의 분쟁, 북한의 위협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지정학적 사안들조차 철저히 양극화된 진영 논리에 따라 해석되고 소비되기에 국익을 위한 초당적 협력보다는, 상대 진영을 타격하기 위한 무기로 외교 정책이 활용되면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도가 크게 훼손되고 있어 큰일이다.
내부적으로는 기성 제도와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임계점에 달했고
특히 세대 간의 갈등은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제한된 자원(일자리, 연금, 주거)을 둘러싼 생존 투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저출산, 고령화, 불평등)을 해결할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단기적, 인 포퓰리즘 정책과 혐오 정서에 편승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특정 정당의 문제를 떠나, 이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령이 실종된 한국 정치 시스템 자체의 위기인 것이다.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천수답 경제'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출,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성과는 글로벌 경기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내부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에 과도하게 쏠린 자산 구조가 금리 인상기마다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고 내수 침체, 고물가, 고금리의 삼중고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청년 고용 시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과장된 단정을 피하고, 향후 세계 및 한국 경제의 전개 방향을 세 가지 시나리 오로 나누어 본다.
[핵심 포인트: 경제 전망 시나리오]
다시 필자의 시선으로 돌아와 본다. 오늘날 대중은 왜 이토록 끊임없이 전쟁과 경제 위기, 정치적 파국이라는 '위기 서사(Narrative of Crisis)'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삶이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구조적 폭력 앞에서는 개인의 무력감이 커지지만,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제된 형태 의 재난 스펙터클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있다는 일종의 '통제감'을 부여한다. 우리는 위기를 소비함으로써 역설적인 위안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크린 밖의 현실은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시즌이 끝나면 초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패권의 충돌, 경제적 파고, 그리고 이분법에 갇힌 국내 정치는 우리의 일상과 밥상 물가, 일자리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실존적 위협이다.. 위기서사의 수동적 소비자를 넘어,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덜 나쁜 선택을 위해 질 문을 던지는 주체적인 시민의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6. 04. 10.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