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재의 1차 수순: 반응(Reaction)이라는 인간의 함수
인간의 인지 체계를 하나의 거대한 백과사전이라 한다면, 그것은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기초 자료들의 축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자료들이 현실 속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원리를 우리는 '메커니즘(Mechanism)'이라 부른다. 이 두 축이 결합할 때, 인간은 비로소 외부 세계를 인지하고 그에 따른 '반응'을 시작한다. 살아내야 하므로, 적응해야 하므로 발생하는 생존의 필수적인 함수 관계다.
하나의 글이 세상에 나와 책이라는 형태로 발행(Admission)되고 독자와 만나는 출판의 과정을 살펴보자. 주필로서, 그리고 발행인으로서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1차적 수순은 다름 아닌 '독자의 반응'이다. 문장이 던진 자극에 대한 미세한 사유의 떨림, 공감과 비판의 피드백. 세상만사에 순서가 있듯, 인간이라는 유기체와 그들이 만든 문화 역시 반응을 통해 자신의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인간사의 본질은 결국 이 '반응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만약 어떤 존재가 외부의 자극에 작동하지 않고 그저 완강하게 침묵한다면, 타인은 그의 내면을 결코 읽어낼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잘못이나 결함일지라도, 밖으로 표출되어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우리는 부딪치고, 수정하고, 조율할 기회를 얻는다. 자신의 과오를 인지한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태도야말로, 오해와 갈등이라는 소모적인 다음 수순을 생략해 주는 가장 현명하고 간편한 삶의 양식인 것이다.
2. 로컬의 불협화음: 쇠똥 냄새와 이기주의의 풍경화
도시의 화려한 소음을 뒤로하고 내려온 시골의 일상은, 역설적이게도 인간 본연의 날것 그대로의 이기심과 마주하는 장(場)이었다.
농번기가 되면 시골의 논둑길은 소리 없는 전쟁터로 변한다.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를 물을 대기 위해, 타인의 논물 길을 막고 제 논으로 물길을 돌리는 이들의 아집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한 발짝만 양보하면 될 일을, 시기를 놓치면 수확이 줄어든다는 두려움 때문에 앞집과 뒷집이 담을 쌓고 대화조차 단절한 채 살아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만, 자신의 생존과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옹졸해지는 모순을 지닌 존재임을 절감케 하는 풍경이다.
이러한 이득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는 도시나 시골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소음의 형태뿐이다. 어느 날, 내 거처 바로 옆 밭에 우사(牛舍)에서 가져온 쇠똥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6월의 이른 더위 속에 며칠이 지나자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여 문조차 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골의 으레 있는 풍경이라 여겨서인지, 그 극심한 환경적 공해 앞에서도 누구 하나 소리 내어 말하는 이가 없었다. 침묵은 미덕이 아니라, 반복되는 피해를 방지하지 못하는 무감각일 뿐인데 말이다.
인간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는 법. 만약 도시였다면 당장 법적 소송으로 번졌을 이 이상 기류를 나는 다른 차원의 행동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이웃을 살며시 찾아가 정중하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그제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고통을 주었음을 인지하고 밭을 갈아엎어 냄새를 묻었다.
합리적인 소통의 알고리즘과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 때, 존재는 침묵 속에서 서로를 갉아먹는다. 존재는 존재로서 명확한 행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반응할 기회가 제공되며, 반복되는 피해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인지(Cognition)를 통해 피해를 미리 막고 예방하는 조치,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간 사회의 '합리'다.
3. 에필로그: 고독의 문을 열고, 여백의 언어로 쓰는 역사
그러나 존재를 너무 드러내면 주변의 반감을 사고, 반대로 너무 감추다 보면 무시당하는 것이 인간 세상의 비정함이다. 나는 매일 이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고 가며 사유를 소화시키는 일로 일상을 보낸다. 이것이 삶이라는 피할 길 없는 수순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명쾌한 정답이 없다. 그 누구도 완벽한 답안지를 제시하지 못했기에, 인류는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지루한 말의 설전을 이어온 것이다.
하물며 신(神)들의 언어조차도 수학적인 답안처럼 명쾌하지 못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모호함으로 포장되어 있지 않은가. 만약 경전이 수학 공식 같았다면 인간이 개입할 존립의 근거는 사라졌을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본래 틈새와 여백이 많다. 신은 자신의 절대적 진리를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로 전달하려 했기에, 결국 끝없는 분쟁과 싸움의 빌미를 제공하는 모순(矛盾)을 범하고 말았다. '침묵이 금'이라는 격언은 어쩌면 인간 언어의 모순에 대한 변명일지 모른다. 그 변명을 다채로운 말로 포장하는 동안, 신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신은 인간의 곁을 떠나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영악하고도 교활한 행동 양식이다. 신을 창조한 인간의 지혜가 도리어 신이 만든 교리에 발목을 잡히는 함정. 이 거대한 모순의 숲을 바라보며, 나는 결국 인간관계 안에서 철저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체념의 문을 열며 받아들인다.
이제 오는 사람은 따스하게 반기되, 떠나는 사람은 원망하지 않는 달관의 태도로 내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내 모습 그대로 하루하루 희망이라는 시적 물감을 섞어 나만의 역사를 쓰며 지내련다.
젊은 날에는 미처 몰랐던 일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선명해진다. 왜 타인과의 격차는 이토록 크게 보이며, 삶이라는 해답 없는 숲은 왜 이리도 고독하게 다가오는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있어야 할 소중한 것들은 점차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는 것이 자연의 필연적인 이치(理致)라면, 그 변화 속에서 소소한 편리와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 내게 주는 유일한 보상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차가운 알고리즘과 메커니즘의 반응일지라도, 나는 그 속에서 따스한 인간의 온기를 남겨두고 싶다.
2026. 05.
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