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칼럼]환멸의 시대, 인공의 소음과 인간 증명의 문학

— 2026년 봄, 기계의 소음 속에서 '상식'과 '근본'을 퇴고하다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5.30 08:27

 

[필자]

— 2026년 봄, 기계의 소음 속에서 '상식''근본'을 퇴고하다

 

1. 인공(人工)의 기류와 실존적 멀미

 

인간은 사회라는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는 실존적 유목민이다. 제도와 법률, 그리고 납세라는 일상의 궤도는 깊은 산속에 홀로 은거하며 문명과의 단절을 선언한 무정부주의자의 발목마저 여지없이 붙잡는다. 이처럼 모든 인간이 군집의 속성 안에서만 호흡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을 지탱하는 문학 또한 시대의 정치적 기류와 사회적 중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2026년의 현실은 문학의 정치적 존재 방식을 넘어선, 사유의 심각한 오염 상태를 보여준다. 거대 언어 모델과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단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문장을 쏟아내고, 소셜 미디어(SNS)라는 디지털 스크린을 매개로 한 ‘디지털 부족주의(Digital Tribalism)’와 알고리즘의 지배가 들어찼다. 상식과 공정이라는 자명한 도덕적 기저가 작동해야 할 자리에, 클릭을 유도하는 편향된 정보와 맹목적인 군중심리가 들어찼다.

 

편을 가르고 떼를 지어 다니며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황색 저널리즘의 광풍은 급기야 독자적인 미학적 영토여야 할 문단마저 집어삼켰다. 한쪽에서는 구체성을 상실한 ‘민중’ 혹은 ‘정의’라는 추상적 기표를 참칭하며 온갖 비방과 선전 선동으로 사회적 현상을 왜곡하고 있다. 인공의 소음이 인간의 목소리를 압도하는 이 기묘한 시대를 살아가며, 나는 흔들리는 지반 위에 선 한 명의 평론가이자 관찰자로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의 주체성을 지키며 진짜 '인간임'을 증명할 것인가.

 

2. 제로 클릭의 광장과 기하학적 척도의 상실

 

정권의 부침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가 세상을 밝힌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숭고한 도덕적 정신이 어떻게 정략적인 선동가들에 의해 도구화되고 호도되는지 목격해 왔다. 거대 담론의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일시적인 안도감도 잠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광장의 맹목적 함성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은 채 메아리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대 아테네의 포퓰리즘적 민주주의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권을 가진 이들의 다수결 원칙은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군중의 이성보다는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었다. 대중은 본래 차가운 이성보다 뜨거운 감정(Pathos)에 지배당하기 쉽다. 자기 성찰이 결여된 미숙한 선동가들이 대중의 결핍을 동력 삼아 광장의 중심 세력으로 군림할 때, 공동체의 이성적 질서는 급격히 붕괴한다.

 

2026년의 대중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노고마저 귀찮아하는 '제로 클릭(Zero-click)'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자극적인 감정 소비('필코노미')에 중독된 대중은, 이성적 성찰 없이 타인의 분노에 무임승차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이러한 과잉 선동의 에너지가 서서히 통제되고 있다고는 하나, 왜곡된 가치의 불균형은 여전히 바로 서지 못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회적 운동장을 합리성과 상식의 지평 위에서 복원하는 일은, 이제 문학을 포함한 지성계 전체가 감당해야 할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3. 알고리즘(Algorithm)의 지배와 철학적 준거

 

상식이란 보통의 주체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인식론이자 합리적 판단력이다. 그리고 공정이란 사사로움이 배제된 태도를 뜻하며, 나는 이를 다른 말로 ‘철학적 준거’라 부르고 싶다.

철학의 어원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인류는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무수한 분파의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켜 왔으나, 분류의 비대함은 역설적으로 사안에 대한 해석이 아전인수(我田引水) 식 궤변으로 흐르기 쉽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복잡한 사유의 곁가지를 쳐내고 단 하나의 본질만 남긴다면, 그것은 결국 ‘올바르고 합리적인 기준 자’를 추구하는 일로 수렴된다.

사회의 건강성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정,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사회 전체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알고리즘의 역학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사회의 총체적 담론 지표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고 볼 때, 현재 우리 사회는 합리적 이성을 뜻하는 인 반면, 감정 와 알고리즘의 편향성으로 수렴하여, 상식의 민주주의가 깊이 신음하고 있는 형국이다. 법이라는 이성의 사법적 절차보다 목소리 큰 자들의 감정적 선동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우위를 점하는 현상은 공동체의 퇴행을 자명하게 증명한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독선의 결말은 언제나 파멸적인 비극뿐이다. "나의 철학은 지고지순하고 타인의 생각은 무가치 하다"고 치부하는 독선의 칼날은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악순환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초래한다. 정치적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의 이분법적 스펙트럼 속에서 정의와 포용은 소멸했으며, 권력을 획득하는 즉시 상대를 절멸시키겠다는 적대의 서사만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있다.

 

4. (Field)의 오염과 '인간 증명'의 문학

 

정치적 불통과 배제의 논리는 사회 전반으로 파급되어, 인간 정신의 보루인 문학의 토양마저 황폐화시켰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 문학적 영토는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닌 ‘장(Field)’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학장은 미학적 가치보다 정치적 신념과 사적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헤게모니 투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며 이익 쟁취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대문학의 초상을 돌아보면, 자기를 잃어버린 허무 외에 무엇이 남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AI가 그럴듯한 시와 소설을 대량 생산해 내는 오늘날, 문학은 본래 사회를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자 영혼의 온도를 측정하는 가장 정밀한 '척도'로서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근본이즘)를 위협받고 있다. 정신이 가치 중심을 잃고 표류할 때 우리는 미학적 파산이라는 비극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

 

얼마 전 초대를 받아 참석했던 어느 문학 행사는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씁쓸함을 남겼다. 그곳은 문학적 사유와 향기를 나누는 성소가 아니라,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표밭이었으며, 문학인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의 배경막을 자처하고 있었다. 문학 행사인지 정치 선전장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탁류 속에서 나는 예술가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문학상 시상의 풍경 또한 상식의 궤도를 이탈해 있었다. 오롯이 작품의 예술성과 치열한 문학 정신으로 평가받고 수여되어야 할 영예가, 행사장 뒤편에서는 "누구에게 줄을 서서 얻어낸 전리품"이라는 추잡한 수군거림으로 전락해 있었다. 평상시의 학문적·문학적 성취와는 무관한 이들이 정략적인 공로패와 상패를 나누어 가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소리 없이 그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상식과 철학이 부재한 곳에서 생산되는 예술적 정당성이 과연 존립할 수 있는 것인가.

 

5. 에필로그: 타자의 육체와 양손의 철학

 

인간의 양손은 몸의 일부일 뿐, 결코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이 말해주듯,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감각하는 자각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상식의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다. 한쪽 손이 상처를 입으면 온몸이 고통을 느끼듯, 타자는 극복해야 할 적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확장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진정한 비극은 공동체의 상층부인 권력층과 지식인들의 도덕적 파산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적인 영달과 계급적 이익만 가득할 뿐, 보편적 상식과 성찰적 시선은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 "너는 나의 적이다"라는 칼 [Schmitt] 식의 적대 명제만 횡행할 뿐, 우정과 환대의 공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를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처방전은 결국 상식의 지평 위에서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잃어버린 주체적 자기'를 회복하는 일이다. 남의 티끌만 들춰내며 자신의 대들보를 간과하는 우매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경로가 다양하듯,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타자의 길을 인정하고 마침내 정상에서 만나 손을 잡는 포용의 미학이 작동해야 한다.

사회의 허위의식을 고발해야 할 작가들만이라도 부디 상식의 철학을 실천하며, 기계와 소음의 파도에 맞서 '인간다운 진정성'을 지켜나가는 균형의 길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돌아보면 오늘도 내 문학은 여전히 모순의 옷을 입고, 남루해진 문장을 기우며 고투하고 있다. 나 역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이 눈먼 행렬 속에서 맹목적으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실존적 두려움을 안고, 오늘도 참회하는 마음으로 참된 상식의 펜을 든다.

 

2026. 05. 30.

 

[대중문화평론가 / 칼럼니스트 이승섭]

[필자의 배낭 여행기]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