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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과거가 던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

비밀의 들판┃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408쪽. 2만2천원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6.08.17 08:09

 

[비밀의 들판]

최근 한 배우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증조부의 친일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역풍은 거셌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고울 리 없었다.

배우는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나라는 존재를 거슬러 올라가 뿌리를 찾고, 그 역사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임을 거듭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가운데 ‘비밀의 들판’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 안에는 어쩌면 지극히도 개인적일 수 있는 한 집안의 빛바랜 사진들과 연표, 가계도 등이 담겨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회고’이자 ‘저자의 인생 20여년’이 걸쳐져 있는 책은 복잡했던 20세기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한 가족이 겪었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책의 저자는 1970년대 휴스턴 교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일원이었던 마거릿 주혜 리이다.

그는 “넌 어디 출신이야”라는 물음에 “휴스턴”이라고 대답하면 “진짜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줄곧 들어왔다고 했다.

저자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진정으로 내 집에 머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자신 안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을 가졌고, 이러한 이유가 할아버지의 삶이 잊힌 사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됐다.

기자가 된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파헤쳐 보기로 마음먹는다.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 가족들은 할아버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아버지가 조사하기 시작했고, 마거릿이 이를 이어받았다.

그제야 할머니는 긴 침묵을 깨고 마거릿의 인터뷰에 응했다.

추적 끝에 마거릿은 할아버지인 이철하가 일제강점기 충남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학생 운동가이자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였단 사실을 밝혀낸다.

또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됐고,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이현상의 동지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유해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소?”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듯, 할머니 역시 그러했다.

할머니에겐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앴다.

누군가에 털어놓지 않고 삼키며, 상처가 곪아 터져 언젠가 사라지기를 기대했던 생존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과 가족의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침묵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기억을 삼키고 애도되지 못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승섭 연합취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