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시사 시론】 국민의 주권을 호도하지 마라

— 패거리 정치의 폭주와 '호민(豪民)'의 경고: 2021년의 우려가 증명한 현실과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류남신 취재본부장 2026.08.17 08:05

 

[필자]

1. 근원적 안식처로서의 조국, 그리고 왜곡된 정치

 

사람이 세상만사의 신산(辛酸)한 풍파를 겪고 난 뒤 최종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곳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태어난 고향이자 조국이다. 태어나 처음 마신 공기와 산천(山川)의 기억, 어머니의 곁에서 느끼는 절대적 안정감은 인간의 원형적 유전자에 각인된 진리다. 부모에 대한 애증이 있을지언정 육친을 향한 그리움이 변치 않듯, 국가와 국민의 관계 역시 본질적으로는 서로를 보듬고 안위(安慰)를 살펴야 하는 숭고한 계약에 기반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에게 주는 느낌은 안도감이 아닌 끝없는 피로와 염려뿐이다. 국민이 정치가와 나라를 걱정하는 이 전도(轉倒)된 현실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미진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자신들이 여당일 때 내뱉었던 말을 야당이 되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반대로 집권당이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정당했던 기준과 잣대를 내팽개치는 모습은 자칭 지도자라 불리는 이들의 가벼운 입술을 증명할 뿐이다. 대국민 말 바꾸기는 단순한 개인 간의 채무 불이행보다 치명적인 사회적 죄악이다. 국민 전체의 삶에 악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공동체의 신뢰 자산을 근본에서부터 와해시키기 때문이다.

 

2. 거대 의석의 오만과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훼손

 

정치는 본래 상생(相生)과 협치(協治)를 통해 국민의 복리 증진을 도모하는 고도의 예술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정치 현장은 다수 의석이라는 수치적 우위를 무기로 모든 제도와 법안을 일방 독주하는 '수의 폭거'가 일상화되어 있다. 국회 의석수가 많다고 하여 헌정 질서의 기본 원리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국가 시스템을 흔드는 것이 과연 우리가 피 흘려 지켜온 자유민주주의란 말인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의 분립과 견제,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와 사적 자치(私的 自治)의 보장에 있다. 아무리 절대다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사상과 재산,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넘어서는 무소불위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올공(올림픽공원) 사태'와 선거 관리 체계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극단적 진영 대립은 한국 정치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주의의 기본을 상실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거리로 튀어나온 대립의 정치,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敵)으로만 규정하는 집단 패거리 정치는 민주주의의 원동력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고사시키는 독약이다. 진영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을 갈라치고, 제도적 정당성을 숫자의 힘으로만 억지로 밀어붙이는 행태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다.

 

3. 공공이라는 이름의 사적 자치 침해: '치매 안심 재산 관리'의 그늘

 

더욱 참담한 것은 국가와 공공기관이 '국민을 보호한다'는 선의의 명분을 내세워 개인이 지닌 사유 재산과 권리의 영역까지 무차별적으로 침범하려 한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추진하는 치매 환자 자산에 대한 국가 위탁 및 공공신탁 제도를 보라. 취지는 인지 능력이 저하된 어르신들의 재산을 범죄나 가혹한 착취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가 권력이나 공기업이 사적 재산권의 핵심 영역에 개입하여 국민의 자산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위화감을 지울 수 없다.

만약 국가가 '안전 관리'와 '복지'라는 명목으로 국민 개개인의 재산 형성권과 처분권을 공공기관의 통제하에 두기 시작한다면, 이는 사유 재산권을 존중하는 시장경제 체제의 뿌리를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치매 환자라는 이유로 국가가 자산을 원천적으로 관리·지출 통제하는 구조는, 자칫 국가가 국민의 삶 전체를 관리·감독하는 '거대한 보육 국가(Nanny State)'로 탈바꿈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역할은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안전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에 그쳐야 하지, 국민의 재산을 대신 맡아 주무르는 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율성을 국가 통제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늘어날수록, 국민은 주체적 주권자가 아니라 국가의 시혜를 기다리는 피통치자로 전락하게 된다.

 

4. 집단 이기주의와 귀족 노조의 오만: 국민을 외면하는 기득권 연대

 

정치권의 파행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또 하나의 축은 집단적·배타적 이기주의에 빠진 기득권 세력이다.

과거 정권부터 이어진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일부 대형 노동·사회 단체들의 행태는 이미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막강한 조직력과 높은 연봉, 고용 세습마저 요구하며 '정부 위에 군림하려는' 기득권 집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절망하고, 자영업자들은 경기 침체와 고물가 속에서 하루하루 가게 문을 닫으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이들 집단은 자신들의 기득권 사수에만 몰두하며 파업과 투쟁을 일삼는다.

 

"현 정권이 우리 때문에 들어섰다"는 식의 착각과 오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대통령과 정부를 선출한 것은 거리의 집단적 행동이 아니라 silent majority, 즉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세금을 내는 절대다수 현명한 국민의 투표였다.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상생과 공생의 길을 외면한다면,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결국 국민의 엄중한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통일로 가는 길도, 복지로 가는 길도 결국은 경제라는 단단한 기초 체력이 살아있을 때 가능하다. 한 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논하기 전에, 당장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에 올인해야 할 정부에 찬물을 끼얹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또 다른 형태의 폭거다.

 

5. 허균의 호민론이 전하는 엄중한 경고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은 그의 저서 『성소부부고』의 「호민론(豪民論)」에서 백성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설명했다.

 

  • (恒民):늘 시키는 대로 따르며 법을 지키고 사는 소박한 백성으로,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 (冤民):포악한 관리와 위정자에게 수탈당하면서도 억울함에 탄식할 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는 백성이다.
  • (豪民):남모르게 사회의 모순과 위정자의 오만을 지켜보며 틈을 엿보다가,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잘못된 권력을 뒤엎고 일어서는 영민하고 무서운 백성이다.

 

오늘날 정치가들과 권력자들은 국민을 그저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표나 던져주는 '항민'이나 '원민' 정도로 착각하고 있다.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법안을 야합하고, 대장동 사건과 같은 이권 사업에서 부화뇌동하며 비겁과 위선을 일삼아도 백성들이 모를 것이라, 생각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지켜온 진정한 원동력은 엄혹한 독재 시절에도, 환란과 경제 위기 속에서도 집안 장롱 속 돌 반지를 내놓았던 현명한 '호민'들이었다. 이 나라의 애국 훈장은 정치가나 권력자가 아니라, 이름 없이 낮고 약한 자리에서 세금을 잘 내고 법과 질서를 지켜온 백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신전의 경구를 전파하기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다. 정치 권력은 자신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빈곤한 철학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권력은 잡았을 때 지속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고 스스로 부패하기 때문에, 내로남불과 아집에 사로잡힌 지도자는 결국 역사와 국민의 심판에 의해 비극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6. 결언: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점으로 돌아가라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적 아집과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수의 오만으로 인해 심각한 질식 상태에 빠져 있다. 뉴스 한복판을 도배하는 위선과 말 잔치는 국민에게 멀미와 어지럼증만을 안겨준다.

정치가와 권력자들은 당장 거리의 정치, 패거리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국회의 거대 의석수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국민의 사적 자치와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국가 통제의 욕망을 거두어야 한다.

 

"국민의 주권을 빼앗지 말라.

 

나라의 주인은 정당도, 노조도, 위정자도 아닌 오직 국민이다. 협치와 상생의 틀 안에서 경제를 살리고 국민의 안위를 먼저 보살피는 정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국가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호민(豪民)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만과 독선을 고집하는 정권과 정치 세력은, 결국 국민이 내리는 가장 엄중하고 서슬 푸른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6. 0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율면 파크 동호회]

 

류남신 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