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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었을 뿐입니다 ]

최희선 지음. 퍼플 펴냄. 215쪽. 1만6천900원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6.08.25 18:03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 ]

38년 공직생활의 묵묵한 기록을 담은 최희선 작가의 신간 에세이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화려한 성공담이나 출세의 요령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1987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9급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수많은 좌절과 승진 누락의 아픔, 가정과 일 사이에서의 번민, 그리고 코로나19 최전선에서의 헌신을 거쳐 복지국장(기술서기관)에 오르기까지 제자리를 지켜낸 한 공직자의 진솔한 생의 기록이 담겼다.

저자의 38년 공직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9급에서 8급으로 올라서기까지 9년, 7급에서 6급에 이르기까지 무려 14년이라는 뼈아픈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인사발령 방송에서 끝내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던 날, 아무도 없는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며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던 기억은 그가 통과해야 했던 시련의 깊이를 아프게 증명한다.

만삭의 몸으로 감행해야 했던 야간 단속과 보건소 한구석에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다 잠들곤 했던 어린 딸의 모습은 행정 최일선에서 주민을 지키면서도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저자는 끝내 시련과 억울함을 원망으로 돌리지 않았다.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출근해 민원 창구와 보건·복지 현장을 묵묵히 지켰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는 감염병 대응의 최전선에 서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일궈냈다.

긴 세월 동안 그를 지탱한 힘은 화려한 승진의 속도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감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견딤’이었다.

공직생활의 마침표를 앞두고 찾아온 유방암 진단이라는 뜻밖의 시련 역시 저자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시련을 성찰로 승화시키며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인생 2막을 시작한 저자는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잘못 온 것은 아니며, 조금 늦게 피는 꽃이 있듯 조금 늦게 인정받는 사람도 있다”는 담담한 깨달음을 건넨다.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와 속도 경쟁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에서,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는 조급한 마음의 정적을 깨며 독자 곁으로 깊숙이 다가간다.

승진과 평가의 압박에 지친 직장인, 홀로 뒤처진 것 같아 불안해하는 청년,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중장년 모두에게 이 책은 버텨온 지난날을 보듬어주는 나지막하지만 깊은 위로의 손길이 되어줄 것이다.

이승섭 연합취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