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시평

[겹쳐지지 않는 심연들의 동행: 『무의식의 평행』론]

1. 서론: ‘깊이’에서 ‘거리’로의 인식론적 전환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3.29 09:27

 

[필자의 서재]

전통적으로 무의식은 ‘수직적 심연’의 영역이었다.

프로이트 이후 무의식은 의식 아래에 침잠된, 발굴해야 할 유물과도 같았다.

그러나 지난번 비평집『무의식의 평행』은 이러한 고전적 관습을 단숨에 전복시킨다.

화자는 무의식을 ‘아래’에 두지 않고 우리 삶의 ‘옆’에 나란히 세웠다.

‘평행’이라는 기하학적 용어가 무의식과 결합할 때, 그것은 만나지 않으면서도 끝내 동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 비극과 미학적 필연성을 동시에 상징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내면의 탐구’가 어떻게 ‘타자와의 등거리(等距離) 유지’라는 윤리적 과제로 이행하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2. 수평적 무의식: ‘나’와 ‘내 안의 타자’가 걷는 길

 

본저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무의식을 ‘개인적 파편’이 아닌 ‘구조적 선(Line)’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화자는 현대인의 소외를 단순히 소통의 부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무의식이 평행선을 그리며 달리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투명하게 들여다보면서도 결코 섞일 수 없는 ‘투명한 고립’의 상태를 주목한다.

동기화된 고독 : 평행선은 같은 방향을 향하지만 접점이 없다. 화자는 현대 문학 속 주인공들이 겪는 고독이 ‘방향 상실’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역설을 제시했다.

비가시적 동행 : 내 안의 트라우마와 외면하고 싶은 욕망이 의식과 평행하게 달릴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할 실마리를 찾는다.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평행한 존재로 인정하는 ‘공존의 미학’이다.

 

3. 한국 사회의 사회적 무의식과 ‘평행’의 연대

 

이 평론이 닿는 또 다른 지점은 한국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에 대한 비평적 성찰이다.

세대 간, 젠더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현시점에서 화자는 ‘무의식의 평행’을 통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억지로 하나로 합쳐지려(Intersection) 할 때 발생하는 마찰과 폭력을 경계하고, 서로의 다름을 유지한 채 같은 시대를 관통하는 ‘평행적 연대’를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비평적 언어로서 매우 세련된 지점인데, 타자를 내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고(포섭), 타자의 궤적을 그대로 존중하며 나란히 걷는(평행) 행위야말로 2026년 문학이 지향해야 할 ‘환대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4. 텍스트의 결과 비평의 문체

 

『무의식의 평행』은 문체 면에서도 비평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단정적인 마침표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쉼표의 언어를 사용하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적 평행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자문하게 만든다.

비평은 이제 작품을 ‘해부’하는 도구가 아니라, 작품과 함께 ‘평행하게 달리는’ 또 하나의 서사가 된다.

 

“우리는 결코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함께 갈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아포리아(Aporia)이자, 가장 아름다운 위로의 문장이다.

접점이 없다는 절망을 동행의 가능성으로 승화시킨 저자의 통찰은 눈부시다.

 

5. 결론: 새로운 문학적 기하학의 탄생

 

결국 『무의식의 평행』은 한국 문학 비평사에 ‘문학적 기하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심연에 갇혀 있던 무의식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수평의 선으로 펼쳐놓은 이 작업은, 파편화된 개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필자의 책은 단순한 책집을 넘어, 2020년대 중반을 통과하는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내면을 다독이는 ‘차갑고도 따뜻한 거울’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2026. 03.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필자의 서재]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