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저널] 서울역사편찬원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서울과 역사’제112호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서울과 역사’는 1957년 “향토서울”로 창간해 “서울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약 60여 년이 넘게 발간해온 서울역사 전문학술지이다.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를 통해 인증 받은 등재학술지로 서울을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서울과 역사’ 제112호는 제21회 서울역사학술대회 “서울史를 둘러싼 모호한 경계들”을 주제로 삼은 특집논문 3편과 조선시대부터 근현대 서울 역사를 다룬 연구논문 6편 등 총 9편을 수록했다.
연구논문으로는 ‘인조대 후반 장렬왕후 경덕궁 이어의 정치적 의미’, ‘도총섭 성능의 생애와 활동’, ‘조선시대 선잠제 제기의 구성과 의미’, ‘일제강점 초기 연융대 지역의 기능 변화와 행정구역 변동’, ‘한양도성 성저십리 폐기유적 출토 근대도자의 현황과 특징’, ‘1960년대 김포공항의 국제화와 항공사업 동향’ 등 6편이 수록됐다.
수록논문 중 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연구논문은 3편이 소개됐다.
윤정는 ‘인조대 후반 장렬왕후 경덕궁 이어의 정치적 의미 –후계구도 변경 및 강빈 옥사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에서 인조대 정치 상황을 다루었다.
1645년 인조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책봉례 직후 인조는 당시 장렬왕후의 질병이 염려된다며 중전의 처소를 경덕궁으로 옮기는 이어를 단행했다.
실록에는 소현세자 사후 궁에서 일어난 저주사건, 장렬왕후의 경덕궁 이어 강빈 옥사 등의 사건을 인조의 후궁인 조귀인이 주도했다고 적혀있다.
필자는 이를 인조의 숨겨진 정치적 과제, 후계구도 정리가 이유라고 보았다.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있는 장렬왕후를 멀리하며 소현세자 사후 책봉한 세자인 효종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았다.
김덕수은 ‘도총섭 성능의 생애와 활동’에서 숙종대 북한산성의 축조에 활동한 승려 “도총섭 성능”을 규명했다.
성능은 예천 출신으로 1666년경 태어났으며 한양 사대부와의 교류는 물론, 화엄사 장륙전 중수, 영악사 중수비문 건립, 통도사 금강계단 중건 및 석가부도비 건립 등 다수의 활동을 했다.
또한 도총섭 재직시 행궁 및 사찰 보수, 승군정비, 군량관리 등 책무를 다했으며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워 영조에게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말년에는 다수의 서적 간행에 관여했으며 ‘북한지’를 찬술해 산성의 역혁, 규모, 시설, 축성과정, 운영 등을 정리하기도 했다.
선잠제는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에 명시된 중사로 왕비가 직접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누에 치기의 모범을 직접 보이는 친행 의례로 규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