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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하루도 쉬지 않고 밀려왔다가 밀려나가며 개흙을 실어 나른다. 그렇게 바다는 8천여년동안 조용히 갯벌을 일궈왔다. 자연이 만들어낸 갯벌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갯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가 최근 독자들을 다시 만났다. 이번 개정판에는 지난 2004년 출간 이후 변화한 자연과 갯벌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책은 갯벌의 역사와 서해안·남해안 갯벌에 대한 비교뿐 아니라 갯벌을 곁에 두고 살아온 인간의 역사 등을 서술하고 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갯벌 생물에 대한 이야기에 유독 오랫동안 시선이 멈춘다. 저자는 바다가 됐다가 뭍이 되기도 하는 갯벌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만들어가는 생태계 그물망을 촘촘히 들여다본다. 생물들의 특징을 살린 일러스트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갯벌과 관련한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갯벌에 놀러갔던 기억과 목이 긴 장화를 신겨 아이와 함께 따개비를 관찰하고 흙탕물을 튀기며 놀던 날의 추억까지. 책을 읽으면서 반가운 정보를 확인한 순간 시공간이 쪼그라들면서 지난 수십여년의 세월이 빛의 속도로 되감기고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기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동물, 사물이 서로 교감하는 사실적 표현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진지한 삶을 추구하려는 심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정우재 작가는 2026년 3월 6일(금) ~ 3월 31일(화)까지 경기도 이천 소재의 논 스페이스카페갤러리에서 '빛을 찾아서(In Search of Light)' 타이틀로 초대개인전을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삶을 지향하며 국내 작가들의 전시를 지원하는 온 아트스페이스(대표 정윤하) 주관으로 열린다. 작품 속에는 반려동물과 사춘기 소녀, 일상의 빛과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사춘기 소녀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다. 현대사회 속 우리는 늘 불안정하고, 자신이라는 주체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체성과 자기 내면 사이의 간극 속에 놓인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아를 확인하고, 사회 시스템 속에서 수많은 좌절과 단절을 경험한다. 나는 이러한 복잡한 내면을 아이와 성인의 경계에 선 사춘기 소녀의 모습에 투사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풍경과 빛은 모두가 익숙하게 경험한 현실의 조각들이다. 정류장, 놀이터, 밤의 거리 등 일상의 흔한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결핍을 위로받고, 현실을 감정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나는 이 공간 안에 현실과 비현실, 두 세계의 존재를 공존시킨다. 빛은 이질적인 두 존재를 인물과 동물, 현실과 환상을 감싸며 하나의 장면으로 연결하는 감정의 매개체다. 렌즈 플레어, 빛 망울, 색온도와 산란 등 디지털 감각을 차용한 시각 언어는 단순한 조명의 역할을 넘어서 감정의 밀도와 기억의 흐름을 조절하는 장치가 된다. 빛의 번짐, 흐림, 색감의 균열은 감정의 미세한 어긋남과 시간의 잔향을 담아낸다. 나는 현실을 비추는 빛이 아니라 감정을 비추는 빛을 그리고자 한다. 빛은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함께 호흡하고 있는 듯한 감정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사실주의적 재현은 감상자의 인식과 감정을 끌어올리는 도구다. 사진이나 기계가 대체할 수없는 섬세한 묘사와 관찰의 과정은 몰입과 감동을 유발하며, 감정을 머무르게 하는 공간이 된다. 감상자는 현실적으로 그려진 환상 속에서 온전한 자신만의 기억과 감정에 닿게 된다. 이는 감각의 회복이자, 결핍을 채우는 정서적 경험이다. '빛을 찾아서(In Search of Light)' 개인전을 실시 중인 정우재 작가는 "나의 작업은 일상 속 환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현실을 그린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는 흐려지고, 현실적 존재와 비현실적 존재가 서로 소통하며 감정의 공명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작가는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석사 졸업 출신으로 애착의 대상을 관찰하고 살피며 생겨나는 감성의 존재들을 회화적으로 창작하는 미술인으로 알려져 있다.
□ 한경국립대학교(총장 이원희)는 9월 6일 안성캠퍼스에서 안성시체육회(회장 백낙인)와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한 체육 교육 현장 지원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 협약은 △ 체육교육·산업분야의 연구 및 교육 협력 △ 체육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활동 및 실습지원 협력 △ 체육 관련 정보 공유 및 인적·물적·자원 교류 협력 등 체육교육 강화 방안을 담고 있다. ◦ 이원희 한경국립대학교 총장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체육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주민의 건강한 체육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백낙인 안성시체육회 회장은 “협약을 계기로 안성시 체육 발전과 지역주민의 건강향상에 이바지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한편, 한경국립대학교는 지역문화복합관을 건립하고 지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요가, 골프 등 체육 교육을 실시하는 등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오고 있다.
by 노상균 대구.경북 취재본부장‘열하일기’는 18세기를 대표하는 북학파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1780년(정조 4)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로 청나라에 다녀오며 지은 책이다. 특히 박지원의 실학사상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청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조선의 모습과 비교하고 조선 사대부를 비판하는 등 박지원의 사상과 당시 사회상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실학박물관이 출간한 ‘열하일기’의 평역·출간 작업엔 이승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이 교수는 전체 열하일기 이야기 중 재미있고 박지원의 사상이 잘 드러난 편을 뽑아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재해석해 번역했다. 번역문, 원문과 함께 이 교수의 상상력과 문학적 지식을 녹여낸 ‘평어’의 순서로 구성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앞서 실학박물관은 지난 2009년 개관 이후 15년간 실학인물총서, 실학교양총서, 실학연구총서 등 실학을 알리기 위해 여러 기획도서 시리즈를 발간해왔다. 이번 실학고전총서 시리즈 ‘실학, 고전으로 만나다’는 실학 고전에 수록된 재미있는 글들을 엄선해 현대어로 번역한 시리즈로, 실학 스토리텔링을 위한 원천자료를 확보하고 ‘실학 고전’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됐다. 실학박물관은 ‘열하일기’를 도서관과 실학 유관기관에 배포하고, 실학박물관 뮤지엄숍에서 한정 판매한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가설 1) 정서는 어떻게 길을 찾을 것인가? 오늘의 나로서는 사실 아버지를 닮았고 또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잇는 꼬리로 추적하면 결국 사회의 공통, 혹은 민족성에서 공통점에 이른다. 이러한 정서는 현재까지 함께 살아오면서 형성된 유사상의 측면에서 파악이 된다. 이를 한마디로 민족의 특성 혹은 사회 관습의 일치성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바닷가에서 생존을 영위하기 위한 사람, 산속에서 삶을 지속한 정서는 다름을 인정하게 되는 특성이 도출된다. 환경이 주는 영향은 인간의 심성이나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기에 - 물론 약간의 차이는 내포하지만 유사성의 접근에서는 특성 혹은 자기 개성을 짜 맞출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가령 김소월의 의 시를 서구적인 사람들은 절대로 감동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나를 버리고 가는 사람에게 꽃으로 카펫을 깔아주는 정서가 서구인에겐 보편성을 가질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순종 미학이 참되고 착한 도덕적이었던 것을 대입한다면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논리는 1920년도의 합리성이지만 현대인에겐 전혀 다른 반응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서 또한 변화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변화의 길은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 가설 2) 변화는 어떻게 오는 것인지 정서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모한다. 예를 든다면 1592에서 7년 동안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의 변화 – 임란 이전의 문학은 양반의 문학이었고 이후로 내려오면서 서민문학으로서의 변화를 갖게 된다. 언어도 된소리나 거센소리로의 변화, 가령 갈(力)이 칼로 변하는 것들은 전쟁의 참화를 지난 후에 나타난 의식의 현상 등이다. 양반만 문학을 하느냐 서민인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산문으로의 진행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격식의 파괴는 사회변화의 매듭에 따라 나타나는 추수(追隨)적인 현상인 것이다. 작가도 평탄한 일생을 살아온 것보다는 굴곡의 삶을 살아 이것을 작품 속에 반영하는 실감이 필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위대한 명작은 대체로 체험의 원숙한 인생 후반기에 나타나고 시(詩)의 경우는 상상의 산물로 인해 인생 전반기에 왕성한 욕구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2. 의식의 집중화 – 이별과 자연 그리고 물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또 자연으로 돌아간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작품은 자연을 소재로 역할뿐만 아니라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 혹은 대상화가 된다. 강이 있고 강은 바다로 가고 다시 증발하여 하늘로 순환한다. 너무나 풀밭의 초록 등 흡수력을 갖는 자연의 이름은 작품의 주요 배경을 이루고 용해된다. 이별은 만남의 반대이면서 이 또한 순환의 사이클로 인생사를 이루는 요소일 것이니, 인연 법의 고리를 형성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문학은 휴머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의 축도(縮圖)를 그리면서 비판과 긍정의 모양을 실감으로 재현하려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살아가는 과정은 인간과 인간의 마주침이 문제를 만들고 다시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고 비판하는 과정도 모두 건전한 사회의 구축을 위한 일과 더불어 문학의 영원한 명제인 휴머니즘 구축에 모든 의식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학의 영원한 사명일 것이다. 1) 이별의 평행 이별이라는 말은 만남의 반대편 개념일지라도 생로병사 혹은 우주의 원형이정(元亨利貞) 즉 계절의 순환에 해당할 개념인 것이다. 만남은 떠남이 이어지고 다시 만남으로 돌아오는 길이 일정한 궤도로 작동할 때, 인간은 거기에 감정을 개입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며 삶의 열정을 매진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줄기에 얽매여있기 때문에 그 줄기를 벗어나는 일이 매우 힘겨운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뜻이 이별이다. 부재(不在)로의 거리(距離)를 가질 때, 이별은 문학작품 속에서 비극적인 개념으로 줄거리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문학의 표현은 만남에 대한 사랑과 떠남에 길을 아쉽게 표현하는 관념이 주요 대상이 될 뿐이다. 그 이외는 무대를 장식하는 소품의 개념일 것이다. 여기서 이별이나 만남은 줄거리의 본질에 질서를 형성하는 인자(因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문학작품에 이별은 고구려 2 대왕인 유리왕의 는 서정시의 바탕을 찾을 수 있는 이별의 노래이다. 여자의 질투가 가져온 이별이 남자 의 가슴을 물기로 적시는 줄거리가 한국의 이별 문학의 모태가 되었다면 신라 시대는 향기와 정서에 의한 누이의 죽음을 슬퍼한 등은 일찍이 이별로 서정시의 근간을 이루었다 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 리고 가시리잇고 나 위 증즐가 대평성 (大平盛代) 날러는 엇디 살라 고 리고 가시리잇고 나 위 증즐가 대평성 (大平盛代) 잡 와 두어리마 선 면 아니 올셰라 위 증즐가 대평성 (大平盛代) 셜온님 보내 노니 나 가시 도셔 오쇼 셔 나 위 증즐가 대평성 (大平盛代) 중에서 우리가 알다시피 고려 475년은 초기 100년을 제외하고 375년이 전쟁과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시대였으니 고려의 시인 정지상 또한 대동강에서 이별을 노래한 이별의 문학이었으니 백성 양반, 평민 모두가 참상의 아픔을 감내한 슬픔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서 님 보내며 서글픈 노래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이 언제 마르랴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더하는 것을 정지상(宋人) 대동강을 건너 진남포로 떠나는 임과의 이별에서 대동강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애절 성은 친구 김부식이 시기할 만큼 명작이 틀림이 없겠다. 슬픔의 마음이 묻어 있어도, 질 축 하지 않고 애타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깨끗한 마음의 진정성이 담겨있어 “청록파에서 이별에 건강성이 슬픔의 고개를 넘어가는 시인의 정신이 빛나는 것 같다. 양반인 시인이 얼마나 깊고 아픔의 시대가 절절했으면 명작의 이별이 탄생할 수 있을까는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다시 말하면 멀리서 오는 파도는 점차 다가오면서 모두에게 파급력을 갖는 이치와 같이 아래로 천민 백성에서부터 높이로 양반에 이르기까지 이별이 거의 전 영역에 아픔의 물살을 덮어 씌었다는 뜻일 것이다. 반면에 당시 양반의 술타령은 에서 부패한 냄새가 얼마나 자심(滋甚)한가를 알 수 있는 모순의 시대였다. 아마도 우리말로 쓴 는 이런 시대의 고통을 가장 잘 쓴 시랐는데 일치할 것이다. 또한 이별의 주체가 여성이면서 좀 더 강한 의사가 담겨있음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다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이별은 아픔이고 슬픔의 언덕을 넘는 한탄과 장탄식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반복 후렴을 제외하고 67자의 는 단순히 이별을 아픔으로 노래한 내용이 아니라 빨리 가는 것처럼 “빨리 돌아오라는”는 뜻으로 구속력을 갖고 있음에 현대의 김소월의 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서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 1920년대의 사회는 여자는 남자의 종속처럼 대접을 받던 시대였다. 이른바 절대의 복종은 고려의 여인상과는 오히려 더욱 순종적인 유교적 문화의 사상 속에 여자의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모순의 속내가 와 과의 거리가 역전되는 전도 현상이 되었다. 이처럼 사회의 기류에 삶에 가치도 발전적인 진행이 아니라 역류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왜 그런가 하면 1920년 대의 여인은 거의 숨을 죽이고 남자의 처분에 따르는 ”역겨워 가실 때에는” 진달래꽃으로 카펫을 깔아주는 속내 – 사실 속으로는 안 가면 좋은 것이지만 적극적인 요구는 깊이 감추어 두는 마치 처분을 기다리는 완전 수동적인 자세가 1920년대 김소월의 이별 방식으로 시대를 반영되었던 것이다. 고려 는 오히려 현대적인 적극성의 여성상이라면 은 에이츠의 과 유사하다는 이양하의 지적은 솔직히 말해서 ‘나의 생각’ 가득한 꿈 위를/ 그대여 가만히 밟고 내라 ‘ 지내라라는 점 - “꽃을 밟고의” 김소월과 ’ 꿈을 밟고 ‘ 지나가라는 에이츠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로드 바이런의 와는 이별에서 같은 주제이지만 이스탄불로 시인은 떠나갈지라도 나의 마음을 간직해 달라는 부탁하는 것은 아픔이기보다는 작별에 일반적인 형식이 재치(才致)로 담겨있는 듯하다. 이러한 이별의 노래 중에서 아마도 는 짧은 형식 속에 강, 약의 되풀이에서 가장 뛰어난 백미(白眉)를 창조한 이별 문학으로서 출중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이별에서도 자식과의 이별은 아마도 가장 심대한 통증이 나타날 것이기에 허난설헌 에 이르면 처절의 농도는 극치에 이르는 이별이 아니겠는가.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해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슬프디 슬픈 광릉 땅) 雙墳相對起(쌍분상 대기) (두 무덤 나란히 마주하고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은 일고) 鬼火明松楸 (소나무 숲에는 도깨비불 반짝이고) 紙錢招汝魂(지전초여 혼) (지전을 태워서 너의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네들 무덤에 맑은술을 올린다)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그래, 안다 너의 남매의 혼이) 夜夜相追遊(야야 상추유) (밤마다 서로 따르며 함께 놀고 있음을)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비록 지금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安可冀長成(안 가기 장성) (어찌 제대로 자랄지 알겠느냐)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하염없이 슬픔의 노래 부르며)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피눈물 나오는 슬픈 울음 삼키고 있네) 허난설헌 함종임 에서 경기도 초월리에 있는 남편 김성립과 후처 홍 씨의 묘가 나란히 있고 난설헌은 맨 아래 안장되었고, 그 오른쪽에 두 남매의 무덤이 있어 죽은 뒤로 비로소 함께 지정을 나누는 모정의 애달픔 - 먼저 떠나보낸 자식의 죽음은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에 시(詩)의 슬픈 가락으로 이어지며 애석하게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자식의 죽음은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응어리진 한(恨)이 버릴 수 없는 이별의 최고의 정점을 꾸미는 시(詩)의 형태가 허초희의 운명적인 비극의 극치를 대변한다.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넘어선 슬픔의 가락에 뼈가 슬어지는 느낌이다. 사전적으로 이별은 “서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을 사전적 의미라 하지만 드라이한 측면이 감동을 일탈(逸脫)한다. 사랑이라는 말도 남녀가 좋아함에 이르면 느낌이 매우 삭막함을 느끼듯이 그렇듯 문학적인 수용으로의 이별은 ”아픔과 눈물“ 그리고 회색의 절망이 깊은 상심을 유발하는 지경에 사전을 간과(看過)한 점에서 깊이가 없는 것이다. 얼마나 깊고 처절한 인상을 창조하는가의 문학 - 시(詩)의 가치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이는 체험의 농도가 결정 요소로 작동하리라 본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이별의 용어일지라도 비극적인 인식과 재치의 인식에서 차별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식의 슬픔을 슬퍼한 어머니로서의 허난설헌의 이별은 남녀 사랑에 대한 이별과는 또 다른 절망의 길이 넓어지는 느낌이고 바이런, 에이츠, 김소월의 이별에는 처절성의 농도가 얕은 이별의 형식일 것 같다. 2) 대 자연 모든 인간은 자연에서 자라고 자연에서 산다고나 할까 다시 말하면 자연을 응감(應感)하면서 대상으로 바라보는 소재와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갈망과 자신도 대상화로서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이 무한대의 대 자연의 넓이에서 문학은 언제나 배경의 역할 - 인간이란 주체로 활동하고 자연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 처 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름을 대신하는 것이다. 미국의 삼림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매사추세츠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은 시인이자 철학자인 그가 1854년 2년 2개월에 걸친 월든의 숲 속에서 홀로 오두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기록한 월든〗은 대 자연과 인생의 참된 삼의 천착에 바친 실험의 저서가 아니겠는가. 이 책은 많은 사람들과 자연의 위대한 에너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철학적인 명상이자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물론 동양에 노자와 장자의 철학 또한 대 자연의 대상화를 비유로 살아나게 한 철학서이지만 난해의 숲이 울창한 것이 일반인에게는 난도가 높은 단점이지만 소설에 처음 도입은 항상 전체 줄거리의 예보적인 역할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음산한 영국의 날씨와 줄거리의 전개가 안개 자욱한 날씨로 시작하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는 도입부의 자연 묘사는 남자 주인공 히이드클리프와 주인공 나와의 운명적인 전개를 예고하는 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소설의 도입부터 전개를 해보겠다. 란 히이드클리프 씨의 집 이름이다. 이란 그 지방에서 쓰는 함축성이 많은 독특한 형용사로서, 폭풍이 불 때는 위치 관계상 그 집이 정면으로 그 바람을 받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 집 사람들은 줄곧 그 꼭대기에서 일 년 내내 그 맑고 상쾌한 바람을 쐬고 올 것이다. 집 옆으로 서너 구루 자라지 못한 전나무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이나, 태양으로부터 자비를 갈망하듯, 모두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고 늘어선 앙상한 가시나무를 보아도 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북풍이 얼마나 거센가를 알 수 있으리라 - 다행히 이 집을 지은 건축가도 그것을 생각해 집을 정말 튼튼히 지었던 것 같다. 좁은 창틀은 벽에 깊숙이 박혀있고, 집 모서리는 크고 울퉁불퉁한 돌로 튼튼하게 지어 있었으니 말이다. 는 요오크사 지방의 황야를 무대로 사랑과 증오의 이야기가 주변의 환경 묘사와, 일치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사실 핵심구절은 '집 옆으로 서너 구루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전나무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이나, 태양으로부터 자비를 갈망하듯, 모두 한쪽으로 만 가지를 뻗고 늘어선 앙상한 가시나무를 보아도 산등성을 넘어 불어오는 북풍이 얼마나 거센 것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에 앞으로 전개될 인간관계의 설정이 음산하고 거센 북풍에 주인공들의 개성과 맞닥트리는 암시를 엿볼 수 있는 황량한 대자연의 설정이 아니겠는가. 반면에 김동인의 단편 은 다소 미숙한 형태로 도입부터 흔들리면서, 화창한 봄날의 묘사로 서두가 시작된다. 좋은 일기이다.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 우리 으로서는 감히 접근 못할 위험성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그만 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리고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by 수원본부장 손옥자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는 100만명 가량의 로힝야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로힝야 난민들은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하나. 버마족이 정치와 군사 등 주류를 장악한 가운데 로힝야족은 1982년 시민권이 박탈되고 사회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잃어버렸다. 급기야 2017년 8월에는 1만명 이상의 로힝야인들이 학살 당한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살아남은 이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한 곳이 이곳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캠프다. 캠프 안의 임시 거주지인 셸터는 가족이 몸을 눕히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좁고 어둡다. 이 곳에서 52%가량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로힝야의 규율 탓에 더욱 고립되고 억눌린 삶을 산다.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파시클 刊)는 이 난민 캠프의 여성들을 위한 마련된 작은 공동체 ‘샨티카나’를 구성하는 여성들과 활동가, 연대하는 창작가의 이야기다. 한국의 인도적지원활동가, 다원예술창작자, 국제분쟁전문기자, 독립연구자 등이 ‘산티카나’에서 생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샨티카나’는 억눌린 삶을 사는 난민 여성들에게 울타리 역할이 되고자 만들어진 곳이다. 캠프 안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다른 캠프 안의 여성을 돌볼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돕는다. 이웃 여성들과 유대관계를 쌓으며 정신적 성장과 회복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제약 너머로 걸어 나가는 여성들에게 샨티카나는 마음껏 소리내고 웃으며 함께 춤출 수 있는, 또 다른 집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한경국립대학교(총장 이원희)는 안성시(시장 김보라), 안성경찰서(서장 오지용)와 함께 지역사회 주민의 교통안전과 장애인 보행자의 안전한 통학을 위해「한경국립대학교 횡단 보도 설치 공사」를 마무리하고, 9월 3일 개통식을 개최하였다. □ 한경국립대학교는 평택에 소재한 장애인교육 특화대학인 한국복지대학교와 2023년 3월 1일 통합 출범했다. 이에 따라, 주 캠퍼스인 안성캠퍼스에도 장애인 학생들이 많아짐에 따라 장애인 보행자의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안성시와 안성경찰서와 협의를 통해 횡단보도 설치 공사에 들어갔다. □ 이번 공사는 장애학생 보행안전 및 지역주민들의 편의성과 교통안전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교통영향검토를 바탕으로 교통안전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또한 하계 방학 동안 안성과 평택캠퍼스 모두 무장애환경도 대폭 개선하는 등 장애학생들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노력했다. □ 이원희 한경국립대학교 총장은 “이번 개선 작업을 통해 장애학생이 보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어 기쁘며, 지역 사회의 교통 안전 증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 김보라 안성시장은 “안성에 거주하는 장애인 등 소외계층들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복지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한경국립대학교(총장 이원희)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공모한 『몽골 스마트농업단지 육성 및 온실채소 보급사업 PMC 용역』에 최종 선정됐다. 사업은 몽골 내 연중 안정적인 시설채소 재배 추진 체계 확립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으로 한경국립대학교는 스마트팜 및 농업 관련 해외ODA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간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기간은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총 5년으로 ‣스마트 농업단지 조성 및 기자재 지원 ‣스마트 농업기술교육 ‣영농기술 및 연구역량 강화를 통해 농업 생산성 향상 및 농가소득 증대를 목표로 한다. 대상지는 울란바타르시 북서쪽에 위치한 성긴하루항구 지역으로 농축산업 특화단지로 조성 예정인 Agro-City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 최적 작물 생산과 몽골의 겨울철에도 채소 생산이 가능한 다양한 재배시스템 도입을 위해 채소연구개발센터를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 □ 이원희 한경국립대학교 총장은 “몽골의 기후에 대응할 수 있는 채소생산시스템 구축과 스마트 농업의 확산을 위해 한경국립대학교의 지속적인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 사업을 총괄 담당하는 한경국립대학교 윤덕훈 교수는 “해당사업을 통해 한국의 스마트농업 기술을 전수해 농가들의 생산성 향상 및 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 한경국립대학교는 “필리핀 적정기술을 활용한 지속가능한 스마트농업구축('20-'23,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사업을 통해 K-스마트팜을 전수하며 우수한 성과를 낸 바 있으며, 24년 4월부터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국립대학교 과일채소과학과의 리모델링을 통한 스마트원예 분야 역량 강화('24-'31, 한국연구재단)”를 수행하고 있는 등 우리나라의 스마트 농업 기술을 전파하는 특성화된 교육 및 연구 기관으로 성장해 왔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한경국립대학교(총장 이원희)는 전공자율선택제 입학생의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2024년 2학기부터 ‘새내기성공지원센터’를 개소했다. ◦ 전공자율선택제(무전공)란 학생이 입학할 때 전공을 정하지 않고 대학 생활 과정에서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학사제도로, 최근 교육부에서도 정부재정지원금을 통해 적극 지원하는 등 교육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제도다. □ 새내기성공지원센터는 총장 직속 기관으로 설치되었으며, 전임교원급 학사지도교수와 교육학 석·박사급 학사지도 상담가 등 전문 인력이 전공자율선택제 입학생을 전담 지원하게 된다. ◦ 입학생에게는 초기 상담을 통해 대학 적응 지원 원스톱서비스와 학사지도 상담, 멘토링, 전공탐색 로드맵 등 학생 맞춤형 전공결정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된다. □ 이원희 총장은 “전공자율선택제 학생들이 폭넓은 경험과 자유로운 전공선택의 대학환경을 통해 스스로 원하는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융합화된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내기성공지원센터가 조력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지난 2019년 출간된 장편소설 ‘반달’의 김명석 작가가 5년 만에 신간 소설 ‘기억의 분식집’으로 돌아왔다. ‘기억의 분식집’은 상처받은 과거를 안고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위안과 희망과 행복을 선사해 주는 ‘힐링 소설’이다. 주방장의 비법 육수로 만든 칼국수를 시그너처 메뉴로 삼는 ‘기억의 분식집’과 그 앞에서 쓰러져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깨어나 기억의 분식집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 ‘유성’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그 해결점을 추리해 나가는 내용이다. 책은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잃은 주인공은 ‘기억의 분식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저마다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여러 인물들과 얽히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인 ‘기억의 분식집’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공간이 된다. 주인공은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분식집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과 얽히고 설키며 그들이 당면한 문제에 도움을 주는데, 주인공을 비롯해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치유해 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상처받은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단순한 기억의 회복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새로운 자아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은 읽는 이에게 ‘상실’이 있기에 ‘회복’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겪는 상실과 회복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자아를 찾는 여정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것이다. 또한 유성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겪는 이야기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대임을 알려 준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중견부터 신진까지, 널리 알려진 소설가들이 쓴 21편의 4천자 내외 '초단편' 소설집이다. 한국 문학에서 가장 활발하고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이 '현재의 한국 사회'를 주제로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거지방, 고물가, 오픈런, 번아웃, 중독, 새벽 배송 등 열쇳말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그 방향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첨예하고 날선 질문들을 던진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학원 강사 면접을 보러 갔다가 어처구니 없는 질문 세례만 받고 온 취업준비생 성규(이기호 '너희는 자라서'), 재벌 목숨 한 번 구한 썰로 일약 스타 강연자가 된 셀럽(김동식 '돈'), AI 시대에 맞춰 작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장 생성사 자격면허 시험'(곽재식 '제42회 문장 생성사 자격면허 시험'), 타투 도안을 자유롭게 시술하고 지울 수 있는 기계를 사용했다가 극심한 부작용을 겪지만, 그보다 더한 편견에 맞서게 된 피해자들(정보라 '낙인') 등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노동, 일상, 관계 등을 열쇳말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이거 내 얘기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생생하게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 대부분이다. 혹은 아직 접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해보게 한다. 문화일보가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기사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연재한 시리즈를 책으로 엮어냈다. 기획의 말에서는 "어떤 사실은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때 더 명징해진다"며 "애초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게 소설이 하는 일 중 하나고, 소설가들은 늘 인간의 마음을 유영하고 있기에"라고 했다. 참여 작가는 장강명, 곽재식, 구병모, 이서수, 이기호, 김화진, 조경란, 김영민, 김멜라, 정보라, 구효서, 손원평, 이경란, 천선란, 백가흠, 정이현, 정진영, 김혜진, 강화길, 김동식, 최진영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1. 말하는 시 사람이란 말로써 생활과 축적된 문화의 옥탑을 쌓아 올리는 것이라 하겠다. 하나 시인은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사물을 불러와 의식의 형상화를 축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의 이미지를 조탁(彫琢)하면서 새로운 사물 에로의 끈질긴 갈구에서 이미지의 구성은 탄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인은 일상의 범인과는 달리 언어의 영혼을 투영하면서 사물을 살아나게 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야 하며, 말하는 법이 달라야 하고, 생각하는 길이 달라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된다 해도 시는 항상 신기루의 몸짓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된 생각, 인고의 나날을 끝없이 견디는 아픔, 혹은 생의 환희에 작약(雀躍)하는 기쁨 등은 모두 시혼(詩魂)을 이루는 요소들이면서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모여 한 편의 시를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인의 기도는 신에게 올리는 기도에 필적한 만큼 깊이와 넓이에서 접신을 만나야 그릴 수 있는 시라 하겠다. 하나 갈구하는 마음 혹은 절대의 진정성을 향한 순수의 마음은 동일한 궤적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단순한 언어로 조립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이미지의 성을 만들고 당당한 성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임무는 정열과 신념의 나무를 내면에서 키울 줄 아는 선하고 상상력을 갖춘 사람이었을 때 비로소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출발에 앞서 설레는 의욕이 앞서고, 이미지 축조의 땀이 보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처음 가는 길에 망설임과 헤매는 것을 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를 향한 순수한 열정은 오히려 내일을 열어가는 기대치로 인식될 때, 작은 흠결은 희망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더욱 정진하고 섬세한 정서가 남다름을 직시하게 된다. 왜냐하면 시의 이미지 사냥에 남다름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꽃은 저만큼 지는데 이유 모른 채 애태우더니 잎 지는데 잎은 지는데 이유 모른 채 가슴 아파라 작년은 그렇게 가더니 올해 또한 잎처럼 져버려 내후년 또 내후년 꽃피고 지면 알 수 있으려나 하나 생을 다 살아야만 알 수 있으려나 꽃 필적 사랑이 들더니 잎 질 때 사랑 떠나가 꽃피던 그해 너무 아련하여 잎 지던 그해 너무 야속해 중 꽃이 피면 사랑의 감정이 일렁이고, 잎이 지면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간명하게 시화되었으며, 감수성과 그리움과 아쉬움의 애증이 매우 여린 것 같고 섬세하다. 사물에 시심을 의탁하는 것은 시인의 내면 정서가 작용하면서 매우 감각적인 효과음을 내는 현악기와 같이 민감성을 들어내는 듯하다. 꽃이 지면 ‘가슴 아파라’의 예민성은 시심을 불러오는 영감(靈感)의 촉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적 자산은 시인으로서의 먼 길을 예약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시는 인간의 정서를 포착하여 일체화를 이루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숲 속을 달려가는 한 자락의 바람이나 향기에 실려 가는 꽃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또한 얻을 수 있다면 시와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자동문의 열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은 모든 어려움과 애로 사항을 커버하고 구체적인 정서의 흐름을 만나는 지름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리움 만나기 인간에게 그리움은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서는 방편이면서 대상과 하나로 결합하려는 발상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대상이 인간이거나 아니면 어떤 행동의 구체적인 목표로 설정될 때, 거기에는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정신의 갈증 현상으로 지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거리의 짧음과 긴 파장에 의해 긴밀도의 농도는 얼마나 간절한가의 여부 즉 열정으로 전환한다. 열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와 안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중에 대체로 후자일 경우 미지(未知)에 대한 거리를 좁히려는 발상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움이 짙어질수록 그리움의 농도는 행동으로 나타날 여지를 갖지만 항상 정적인 태도로 작용한 인상으로 남는 듯하다. 들키지 않도록 해야지 그리우면 스쳐 지나간 여운조차 숨기려 해도 감추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 내를 비추지 말아야 한다. 중 오직 사랑이라는 제목에서 정서를 안으로 감추고 사랑의 깊이를 간직하려는 발심인 듯하다. 물론 짝사랑이라는 일방적 의미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겉으로 동일하지 않고 진심을 표출하려 하지만 그런 행위까지에는 상당한 거리와 여백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들키지 않도록 해야지’에서 발각의 경우 놀랄 일은 아닐지라도 곱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상대에게 굳이 알리지 않으려는 생각인 듯하다. 아울러 ‘거울에도 속 내를 비추지 말아야 한다.’라는 서술에서 작심의 농도는 매우 강하나 그러나 감추는 일은 항상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움의 마음은 향기와 같이 무언가 표정으로 드러나는 속성을 감출 길이 없기 때문이다. 유종필은 내면의 향기를 겉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감추면서 애가 타는 심성이다. 이러한 내성적인 정서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성품에서 보이는 특성이 아닐까 한다. 이름으로 남는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조차 아름답기만 하네 우리 언젠가는 소소한 것으로 만나 다음 어느 날에 둘이라도 하나처럼 이름 짓고 싶네 곁 바람, 겸 잎 같이 짝지어 가슴속 몸짓으로 하나이고 싶네 끝없는 그리움이 추억 보듬는 날 첫눈의 눈발도 맨가슴에 날아드는 기억뿐일지라도- 중 아름다움은 마음에서 발동하는 정서의 일종이지만 기억을 윤나게 하는 인자(因子)를 가지고 있어 항상 내면에 숨어 있고, 언젠가는 나타날 순간을 포착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시인의 심성이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에 의식의 얇은 층을 뚫고 나타나는 순간 마치 봄날의 개화처럼 아름다움의 연상을 펼칠 수 있는 놀람 앞에 서 있는 듯하다. 그리움은 연속작용이면서 이 연속성은 항상 아름다움을 채색하는 좋은 기억과 손을 잡으려 하는 모습이다. ‘소소한 것으로 만나’와 같이 작은 것- 여기서 발생하는 인연의 소중함이 점차 커지는 의식을 확장하기 때문에 작은 그리움들이 추억으로 쌓이면서, 아름다움의 옷을 입게 된다. 결국 유종필의 그리움은 ‘겹 바람’ 혹은‘겹잎’처럼 둘이 ‘하나이고 싶네’의 소망을 달성하려는 정서로 앞축 된다. 왜냐하면 ‘추억’이라는 시어가 ‘기억뿐일지라도’의 상상으로 배회하는 그리움- 멀리 있는 미지(未知)를 향하는 호소가 아닐까 한다. 3. 동화(同化)와 변화 이미지 아이덴티티는 대상과 하나로 결합하는 일체화를 뜻한다. 시를 쓰는 것은 본질적으로 대상 즉 사물과 시심을 결합하는 데서 미감(美感)을 획득하는 일니다. 때문에 아이덴티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언어 장치를 필요로 하고 여기서 시인의 재능은 확실한 담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물 자체의 본질로 향하기 위함에서 시어의 모순이 발생하지만 이는 시적 허용이라는 말로 정리가 될 수 있다. 그리움이나 사랑에서는 대상과 하나의 결합이 동화의 이름이 되고 시에서도 그런 집념이 초점을 맞추게 되면 시는 완성의 문패 즉 성주가 되는 것이다. 녹음의 임자 여름 지고 따라나선 푸름이 변색하여 요염해지거든 가을이 오니 유혹에 넋을 잃고 찬 서리 날리는 어느 날쯤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나, 하염없이 높이만, 높이만 오르나 너 닮은 마음이라 나 또한 치솟기만 하네. 중 하늘과 시인이 하나로 결합을 이루면 푸름이라는 물이 든다. 이런 일체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짙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열망이 결합하는 것은 시인의 마음속에 간직된 순수와 투명한 정서가 열린 마음을 필요로 한다. 여름의 푸름과 녹음, 그리고 하늘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면 두 개의 사물은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변모가 된다. 이런 시의 변화는 화학적인 결합이고 변모이기 때문에 신선함과 언어의 탄력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시의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높이만’의 반복이 주는 뉘앙스에서 치솟는 마음의 상태는 정화된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하고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4. 자아(ego) 찾기 나를 찾는 것은 철학의 시작이며 철학의 종점 이러고들 한다. 즉 나를 아는 일은 곧 시의 입구이며 철학도 결국에는 시의 가슴에 안기는 절차가 아닐까? 시란 그런 넓이와 깊이가 있기 때문에 철학도 시의 표정을 수용하는 상관관계를 갖는 것이다. 결국 종국에는 사는 것, 그것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은 철학이지만 시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시인은 방랑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 관리를 포착하여 의미의 성을 구축하려는 노력과 열정이 있기에- 내 속에 내가 없다 내가 없는 속에서 존재하는 나는 이미 몰가치의 상념만 존재하고, 은행나무 곁을 지나는데 잎은 지고 가로수 본연의 충실함으로 길가를 노랗게 물들여놓았는데 .... 중략.....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내 속에 내가 출타하고 기약 없는 세월은 흘러갈 일이고 그렇게 또 흘러가겠지 그때쯤이면 나에게 돌아와 무엇이라 말할 것인지 궁금하구나 자아여..... 중 만약 내가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로 갔을까? 찾아 나서도 어디로 가야 할 방향이 없을 때, 망연함과 절망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절망은 항상 희망의 이름을 부르는 길을 만들기 때문에 나를 찾는 여정은 계속할 수밖에 없다. 자아가 없는 내 인생은 이미 인생이 아니라 허울을 뒤집어쓴 마네킹과 같다면 여기서 개성의 기대는 불가능한 것이다. 시는 참된 인생이 무엇이고 참된 삶의 길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일이고, 감동받는 호소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지난한 난관이 있더라도 내가 무엇이고 내가 어디로 가는 방향의 가늠은 삶의 가치에 직결되기 때문에 알아야 할 영원한 숙제로 남는 것이다. 자아 즉 내 안에서 나를 찾는다는 일은 절망이다, 그러나 거울 속에서 나를 찾는 일 또한 공허의 이름일지라도 나를 향하는 그림자 찾기는 필연으로 엮어진다. 왜냐하면 내 그림자를 떼어 버릴 수 없는 운명이기에- 이 슬픈 여정은 생의 이름으로 진행형일 때, 삶의 이유는 분명해진다. 유종필은 자기(ego) 찾기의 숙제를 달성하기 위해 물음을 던지는 일- 그렇게 시는 이어져 가는 듯하다. 시는 그런 여정을 포착하는 이름일 뿐이기에 길을 묻는 여정은 곧 시로 가는 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다는 것 달콤한 꿈 속에 놓인 불안한 몽환처럼 알 수 없음이라 중 인생의 맛 삶의 맛을 분류한다면 아마도 희로애락의 오욕에 칠정(七情)에 따라 인생에 대한 희비는 생성할 것이다. 그러나 쓴맛과 단맛의 구분은 가장 평범한 구분이라면 결국 생에 대한 각자의 구분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맛이 타인에게는 쓴맛으로 다가올 수 있는 구미(口味)의 문제는 개인차로 한정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안한 몽환처럼/알 수 없음’이라는 말로 정리가 될 것 같다. 개개인은 하나의 완전한 우주라 보기 때문에 비교로 우열을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귀한 삶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고 어디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오로지 개개인 자신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찾는 것도 아니면 버리는 것조차 개인의 문제로 터널을 건널 때, 욕망이라는 자기 확장의 방법만이 있는 것이다. 원래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겠는가? 마음 한 구석 식지 못할 열정 남아 자꾸 먼 산 엿보네 머리 깃털 날리면 길을 가다가도 하늘을 보며 ‘날자꾸나, 날아보자꾸나, 하며 하늘만 우러러보지요. 하늘만 우러러봅니다. 오늘도 중 누구나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이 자리한다. 그러나 날 수 없는 제약의 그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다만 날갯짓이 고작인 슬픔의 일상은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의 현실 앞에서 고뇌의 모습을 연출한다. 이러한 현상을 돌파하고 자기 자신을 확립하는 것은 의지와 신념 그리고 지혜라는 도구를 통해 남보다 다른 개성의 성주가 될 수 있다. 이는 나이라는 켜가 아니라 열정의 에너지를 얼마나 충전하고 먼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유종필은 이런 현상을 일찍 터득하고 인생에 삶에 서 있는 듯하다. 그도 이상이 슬픈 고백처럼 현실의 장벽을 돌파하고 창공의 주인이 되고 싶은 열망을 피력한다. 그러나 하늘은 누구나 오르고 싶은 공간이지만 쉽게 도달의 열쇠를 가질 수는 없다. 하여 ‘하늘만 우러러본다’라는 체념의 언덕에 주저앉아 높이만을 동경하는 모습이다. 이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성찰의 조숙한 인상이 대답을 마련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5. 나를 대면하기 시인은 세속을 버려야 하고 묵언의 진리를 이미지로 만들 수 있는 경지를 방문해야 할 듯하다. 다시 말하면 말의 운용지가 아니라 글을 재료로 인생이나 우주를 담아야 하는 창조자의 임무가 주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명시인』 『시의 배고픔』 등은 스스로의 위치와 처지를 알고 시에 대한 소회를 대변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비 오는 날의 신호등은 홀로 서서 봐주는 이도 없는데 연신 몸짓 간절하여 아무도 없는 밤 장대비가 오는 그런 날에는 내 모습 같아 처량하여 애달프기만 하네 중 무명의 설음은 어느 분야에서나 인간은 같다. 춥고 외롭고 그리고 무관심의 냉정함이 서럽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것은 무명의 대부분의 삶이다. 평범한 시인이 쓰는 간절함의 애달픈 시어가 필자 또한 겪었기에 느끼는 바가 너무 크다. 싹이 나올 무렵의 신산한 고통을 혼자 견디고 나서 그런 연후에 비로소 자존의 문패를 달 수 있는 것이다. 처절함과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이 없다면, 웃자란 식물의 운명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초기의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가의 여부는 결국 성장의 동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춥고 때로는 참담한 경지를 벗어날 때 건강한 존재로 일어설 수 있다는 진리와 이치를 알아야 할 것이다. 6. 에필로그 새는 창공을 날고 싶어 한다. 그러나 비상을 하기 위해서는 땅에서 걷는 법을 알아야 하고 땅의 이치를 알고 하늘의 이치를 대입하면 두 공간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 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이치가 둘의 이치를 포괄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삼라만상 우주의 이치가 아닌가? 시인은 모두를 위한 노래의 가락을 인간에게 바쳐야 할 이유- 오늘은 내일을 향하는 징검다리이면서 결코 생략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닌 꿈을 위한 노력이 배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고개를 숙이고 미래를 염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며 오늘에 겸손할 줄 아는 일은 시의 건강을 위한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의 이미지 구축을 완료 했다면 이다음은 건축의 마무리를 확실히 하는 발성이 기대되는 소이(所以)가 위의 논지를 재촉이 된다는 것을 말하며 더는 숙제가 될 것 같아 설계도의 마무리해줄 것을 기대하며 나가려 한다. 2024. 09.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by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