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천시 율면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고향 없는 서러움과 고향의 향수가 그리워 어찌하다 보니 율면 고당리에 삶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부끄러운 과거일시 분명하다. 핑계일지는 모르나 어쩌면 그렇게 그 옛날 용인, 중리 라는 마을과 비슷한 곳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소 늦다고 할지 모르나 후회는 없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은 이익을 탐하는 노릇이라 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익을 탐하기 위해서 이사를 했다면 도시로 나가서 아파트를 사서 돌리고 돌리다 보면 자연스레 이익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없다.라는 것이다 것이 필자의 경제 소신이다.
그래도 필자는 법을 준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노후에 편안한 삶보다는 산속에서 전원을 느끼며 새소리, 수목 산천과 어울리며 자유로운 영혼 속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기에 더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고향 같은 산속이라 내 소원을 푼 셈이라 하겠다.
그러나 요즘 들려오는 소리와 나라가 시끄럽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고 너도나도 살기 버겁다 난리들이다.
온 세계가 전쟁과 경제위기와 고물가로 몸살을 넘어 경제가 어렵다는 것에는 모두가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위에 보면 수사를 받는 사람들이 몇십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본다면 그 사람들은 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인지 참 기가 막힐 지경이다.
또한 북한의 김정은은 우리를 주적이라 부르며 미사일을 쏘아대고 광기를 보이고 있고 헛소리의 집합이 극심하며 허소리 정보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악성의 댓글들은 정신계를 어지럽히는 중구삭금(衆口蔘禁)이다.물론 여론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며 믿을만한 정보인지는 글쎄올시다. 이다.
이런 현상들은 민주라는 이름에 도전하는 도덕 불감증의 잘못일 수 있다는 일로 볼 때 무서운 개인의 파멸을 가져오는 경우가 심하다.
순식간에 퍼지는 악성의 소문은 걷잡을 수 없으며 진실 게임으로 번지는 일로 치부하면 회복 불능의 아픔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위험의 수위에서 곡예사가 되어 외 줄을 타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러신가?
이제는 그물처럼 펼쳐진 법이라는 테두리를 만들어야 한다.
한번 열거를 해보자, 민주노총, 공무원노조, 등 다양한 단체들이 법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왕국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과연 법치주의가 있는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도덕적인 양식(良識)이 전개되지 않는다면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을 알아 지금부터라도 법은 공정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사실 지금도 보면 흔히 청문회에서 이른바 자녀가 명문교를 보내기 위해서 주민등록법을 어긴 사람들이 거의 모든 공직자가 대부분 아닌가?
분명 잘나가는 사람치고 법을 준수한 경우가 없는 것 같은 현상은 작금의 사회나 청문회 단골 사항인 데서 이젠 식상(食傷)하고 으레 그럴 것이다, 라는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지는 추세에 아픔을 겪는 과도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조금 전 국토부장관 원희룡 장관이 시무식에 하는 말을 들었다.
작년, LH 사건도 설명하며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헌하지만 글쎄올시다.이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공염불을 해논 터라 기다려봐야겠지만 7개월에 1회씩 이사를 하였다는 어느 고위 공직자를 보면서 누가 보더라도 자녀 교육 때문에 이사 유혹에 빠진 것을 보면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변명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요설(饒舌)일 수 있지만, 그들도 청문회장에서 온갖 수사를 동원하여 방어막을 쳤다 해도 너무한 것은 사실이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지나친 느낌이다.
아울러 이 나라 지도자의 수준이 이토록 어리석다는 점에 가슴이 쓰리다. 어디 그뿐이랴 언젠가 고위 공직을 지냈다 해서 전관 예후로 누리는 기막힌 5개월에 16억을 벌었다는 기록에는 숨이 막힌다.
그가 청문회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해도 상식을 넘어선 변명에 누가 따를 것이며 지도자의 덕목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그들만의 생각이 아쉽다. 평범한 변호사는 1년에 기껏 1억의 수임도 힘겨운 현상과의 괴리와 대비가 초라하다.
공동의 목표란 가정의 행복에 초점이 모아지고 그런 일에 의견을 함께 하는 것은 지도층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현실을 목도(目睹)하는 필자는 아내나 자식의 허물은 곧 당사자의 허물이고 이를 변명으로 덮으려 하고 있다니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인 것이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존경 근처는 갈 수 있어야 지도자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은 당연지사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말의 성립은 곧 당사자와 가족과 분리되는 의미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에서 출발하는 개념이라는 말이다.
아내가 너무 똑똑하면 남자는 힘겨울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똑똑하고 현명한 아내는 남편과 키를 맞출 줄 알고 자식의 교육에서는 비교의 안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어머니가 남의 자식보다 월등하기를 바라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며 뛰어난 교육을 받으려는 욕망이 없을 수는 없지만 지도자의 지위는 아무나 누리는 자리는 아니기에 금도(襟度)를 헤아리는 지혜가 없다면 남편도 바보의 행진이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땅에 지도자의 회의를 느끼는 것은 필자만일까?
정말 역사적인 줄기에 슬픔을 느낀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거개의 경우 탐욕과 물욕에 삼켜버린 현상이 더 많았음은 역사적인 불행의 그늘로 치부한다.
현명한 지도자를 갖는 일은 국민의 행복이라면 그 점에서 국민의 가슴 아픔은 결국 비극적인 현상을 감수하면서 인내의 길을 걸었던 오랫동안의 아픔이었다.
이 불행의 그늘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고 계묘년에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정권이 바로 서는 한 해가 될 수 있어야 하지만 반대 아닌 반대만 일삼는 상대가 있기에 더욱 의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법치가 바로 설지는 케션마크 (?)이다.
백성 모두가 깨우침의 농도가 밝을 때 얻게 되는 이름이라면 지금은 지도자의 의식이 국민의 의식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초라하게 따라오는 이름일 것 같아 초조함이다.
국민을 위한 봉사라면 나를 버리고 모두를 위한 의식의 깨우침이 사회 곳곳에 고르게 번질 때 맞게 되는 이름이라면 지금 우리의 경우는 회색빛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국민성과 법치를 내세우는 기치를 걸고 한번 시동을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통을 역설하는 정치판의 아성은 모조리 소통의 사회학이 낮잠을 자는 어둠을 깨워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삶의 어려움도 동반하는 것 같아 백골난망(白骨難忘)이지만 그래도 이 어둠을 깨우라 지도자, 지식인들이여
2023. 01. 04.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