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하면 문인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니는 것은 운위(云謂) 하는데 오랜 전통이 따라다닌다. 어느 시대에서나 글은 곧 가치 정신의 지표를 갖는 일면 정신의 고고(孤高)함을 증명하는 방법의 하나였으며 그만큼 정신의 정수(精髓)를 뇌리에서 짜내는 직업의 신성함을 의미한다. 사실, 인정을 받는 만큼 부수적인 갖춤이 있을 때, 지향의 목표가 뚜렷해야 하고 무게를 갖는 일상의 정서가 부스러기가 아니라 정제된 함축미가 필요하다. 이런 조건에 합치되는 일은 오랜 습작과 단련의 결말이 아니면 지난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통상적인 글에 누습(陋習)을 반복하는 창조성 결여를 지적하게 된다. 창조는 언제나 신선함과 선도적인 사고에 발현 점을 갖는바, 이런 조건에 합치는 곧 개성의 뛰어남을 이룩하는 일이다. 개성이 없다는 글은 또 다른 누습의 함정에 빠지는 결과에서 외면의 눈총을 받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의 고양을 목표로 설정하지 못하면 결과에서 독자는 외면 혹은 침묵으로 지나치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안 써야 하는 글의 이유를 합당한 논리로 처리된다. 물론 상이나 숲의 푸른 색채는 온갖 초목이 어울릴 때 멀리서 바라보는 녹색의 단일성을 갖지만 가까이서는 필요와 불필요의 구분이 정확성으로 나타난다. 왜 그런가 하면 글에 개성의 원인이 아니라 근인(近姻)에서 가치의 감동이 수반된다는 점을 특기할 일이다. 미상불 분석적인 현상에서 특징을 갖는 요인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인은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나타낸다. 어쩌다 문인의 모임에 나가면 생면부지의 신인이 와글대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적어도 수 삼 년에 이력을 내세울 것도, 없지만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름을 가질 때, 선배들이 주눅이 드는 일은 양적인 팽창과 밀도를 함께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문인의 숫자가 많음과 창작의 수준과는 불비례의 어긋난 기울임은 결국 탄식을 불러오는 외면이 당연한 것 같다. 때를 벗지도 않고 몇 번의 작품 발표와 한 권의 저서를 출간하면 중견의 어깨가 되는 가벼움이 만연했으니 다시 돌릴 수도 없는 한숨이 고작이고 외면이 당연지사이다. 질서의 무너짐은 잡지의 숫자와 비례하는 것 같다. 신인을 배출하는 일은 곧 잡지의 운영과 상관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은 이 깊이 진행되는 일이라 어느 방향이 옳다고 시정을 촉구할 수도 없는 한계를 넘어 버렸다. 그렇다면 탄식이 정답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올시다, 이다. 잘못된 길을 수정하거나 바른길로 지나갈 수 있는 끝없는 조언이 필요하고 비평의 선도적인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비평은 이미 시들어 기력이 없는 지경임을 필자 또한 인정한다. 물론 뛰어난 논리와 합당한 판단을 구유(具有)한 사람이 전혀 없음은 아니지만, 머리는 기능을 하고 있으나 가슴이 메말라 있는 경우가 흔함을 목도(目睹)한다. 또한 공부의 지속성 연구의 지속성이 없기에 거의 10년이면 비평가의 수명이 끝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비평가가 많다는 아픔은 문학의 아픔과 비례하고 있다. 자기의 본분을, 잃고 다른 쪽에 고개를 돌리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실패의 문패를 달았다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문학의 질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행위인 점이다. 시를 쓰는 시인의 경우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열심히 정진하는 그룹이 있다면 또 한 그룹은 이름만을 즐기는 명찰 - 귀걸이 목걸이의 장식용 시인 - 전자의 숫자는 매우 희소하고 후자는 흘러넘치는 양상이 한국 시단의 모습이고 문제점이라 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시 공부라는 학습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 엉겁결에 시인이라는 호칭에 취하여 문자의 나열 즉 행과 연을 끊어 짧으니까, 시가 된다는 모독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시와 감수성은 훈련으로 어느 정도 젊은 날의 시심을 회복할 수 있지만, 뼈를 깎는 정진에의 노력이 없기에 답보의 정체가 길고 긴 시간에 파묻히는 아픔으로 남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언어의 운용에 무게를 실감하고 음악성으로 리듬을 깨닫고 그림으로 이룩되는 상상의 회화성과 의미의 초점이 모아질 때, 시는 비로소 감동에 눈을 뜨는 법이다. 이런 난제 앞에 시인은 오직 입학만 있고 졸업이 없는 끝 모를 정진이 요구되는 이유는 나변(那邊)이 아니다. 자기를 아는 행위는 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의 인격이 들어있고, 한 권의 시집에는 전 생애가 담기는 것이다. 이런 무게를 실감할 때, 시어 한 글자나 마침표 하나에도 신명을 실어야 한다. 시는 모든 것이, 의미로 통하는 문을 가져야 비로소 시다운 시가 되는 것과 같다.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의 물음은 시인이 들어야 할 몫이다. 독자를 깨우치는 시인이 될 때, 시인은 때로 선생님일 수도 있고 도덕적인 위엄을 갖출 수도 있다. 왜 그런가 하면 다양한 인격을 소화하는 성품은 곧 끝없는 수련에서 시의 길은 환한 불을 밝힐 수 있다. 어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불러 모으는 초점으로의 사고가 단련될 때, 시의 신은 얼굴을 보여주고 금시 달아난다. 왜냐하면, 시는 순간의 예술이며 이를 찰나에 포착하지 않으면 꼬리만 보이고 머리와 몸통이 없는 허무의 그림자와 같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단은 수렁에서 나올 수 있는가 아닌가는 오직 시인 자신들이 선택하는 고행을 갈 것인가에 갈림길이 분기한다. 시인 자신들이 사명과 책임감을 느낄 때, 밝은 길이 열리는 것은 자명한 조언일 것이다. 시인은 모든 문학인의 맨 앞자리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깨어난 정신을 소유자라는 말이 합당한 이유이다. 2025.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필자 저서] [필자 저서] [필자 저서]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에 admission 했다고 가정 해보자, 한국 의학의 경우는 한방이나 양방이나 맥을 짚고 난 후에 그 사람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는 문진과 맥진 방법이 지금까지의 진단이었다면 이는 종합에서 얻은 인간의 시체를 우주로 파악하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서양 의학의 경우엔 아픈 부의와 판단에 따라 집중적으로 메스와 항생제가 치료의 주요 수단이다. 우리도 의학이 발전하여 세계적 수준이 되었지만 이는 분석과 해체에서 얻은 전적으로 얻은 서양의 치료 방법이라면 동양은 종합과 분석의 결합에서 제3의 의학적 처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대체 의학이라 말한다. 어느 것이든 전적으로 옳은 일방성은 없다. 문학에서도 이런 이론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서양적인 이론의 추구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전통의 결합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론에 필요성이라 하겠다. 현재 한국문학은 갈림길에 있다는 생각이다. 2000년 초부터 우리 문학의 판도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액티브(activist)한 다양성이 부재한 듯하다. 민중문학이 잠들고부터 정체의 긴 시간이 무료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뚜렷한 없는 이슈가 없는 현실에서 예언의 말은 들리지 않고 침묵처럼 조용한 현상이 과연 좋은 것인가는, 차치(且置)하고라도 발전을 위한 모티브가 없으며 고민 없음을 대변하는 현실인지는 글쎄올시다. 이다. 물론 우리 문학의 주소를 언급하는 데에는 남한과 북한의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은 문학이 아니라 아첨 혹은 정권 잡이의 문학 – 이도 문학이라면 문학인지 모르겠지만 엄밀한 잣대로 말한다면 거론할 말은 제한적이다. 왜 그런가 하면 표현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정해진 명령의 하달을 실천하는, 이른바 노동당의 기준에 적합한 경우, 충실한 문학인으로 대접받는 일종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우상 같은 표현만 있는 문학은 이미 문학의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광고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이란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하느냐의 함량에서 훌륭한 문학의 업적이 달성된다고 믿는다면 남한의 경우 상업성에 오염되었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가 구가 되는 현상은 올바른 징조이고 미래를 낙관하는 결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한국문학의 문제는 심도에서 사상의 승화가 부족하다는 말을 되뇐다. 감각적인 표현에서는 진전을 이루었지만 정작 그 작품 속에 진지한 사상의 깊이에 고갈 현상이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는 간단히 언급하기에는 어렵지만 우리 자신의 표현에 전통이 아직도 깊은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는 자기를 해체하거나 분석하기보다는 <우리>라는 문화에 녹아 있는 생각의 문제이기에 참혹한 전쟁을 겪었어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전쟁 문학이 없고 – 이런 전통은 고래로 올라가면 더욱 자명하다. 이른바 신라 통일 - 나는 통일이라는 말에 시비를 걸고 싶다. 당나라를 끌어드린 신라통일의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삼국의 정립에 따른 각축을 다룬 진정한 역사적인 통찰의 안목이 없었고 근대로 와서는 온갖 전쟁의 참화 – 7여 년의 임진왜란도 그렇고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삼전도에서 청나라 왕에게 항복 문서를 바친 병자호란 또는 6.25의 비극은 너무 통렬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는 둔감하고 남의 시비에는 민감한 정서를 <우리>라는 두루뭉술로 포장하는 관용이 있기 때문에 어느새 나의 비극을 잊어버리는 징후가 사상의 심화에 미흡한 표현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서구의 사상사는 결국 자기의 문제로 시작해서 객관을 바라보는 접근법, 귀납적 논리학이 주류를 이룬다면 우리는 연역적 논리에 가깝지만 – 보편에서 특수로 가는 결말이기보다는 보편에서 시작하여 다시 보편에 머무는 논리에 익숙한 것이 추상적인 현상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귀납적 논리도 아니고 연역적인 논리도 아닌 중간에 머무는 일 때문에 특성이 없는 결말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 문학이 심도는 돌뿌리에 체이는 안타까움을 맞는다. 북한의 세습 정권을 보면 금새 그 뜻을 알게 된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면서 3대 세습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인민공화국의 간판이 될 수 있는가 말이다. 오로지 독재자 김정은이 향하문 이외는 모두 차단하는 인간 지옥이 유지되는 것은, 결국 <우리> 신앙 문화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서 그 원인은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위한 명분 아래 온갖 수사를 통하여 동원하여 합리 둔갑 될 때 용해되는 <우리> 정서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최면이 깊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를 벗어나면 악이 되고 나는 우리에 소속된 혹은 없어야 당연해지는 일이 어떻게 문학이 추구하는 휴머니티의 소산이 되겠는가? 한때 남한에서 극심했던 저항의 문화도 그렇다. 결국 끼리끼리의 문화였지 발전적인 <우리>로 이르지 못한 것은 편 가르기의 우리에서 너는 적이고 나는 선이란 이분법만 작동되었을 뿐 진정한 용해의 공동에 터가 없는바 일방성 때문에, 공통의 선이 없어지고 독선적인 메아리를 던지다가 소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서 출발해서 우리로 가는 공동의 광장이 서구적인 사상의 모델이라면 우리 문화는 우리에서 출발하여 결국 우리로 돌아가는 공허만이 남게 되었으니, 우리의 문학 작품에는 깊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표피적인 현상만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한때 유명했던 대하소설도 대부분 가족사의 나열이나 이데올로기의 분열상만 파노라마적으로 보여 주었을 뿐이지 정작 작가의 고뇌 어린 해답은 없었다고 느낀다. 소설은 갈등을 다루면서 시간의 정리라면 결국 그 스토리의 깊이엔 작가의 사상이 뼈대를 이루지 못하면 사랑방의 이야기 수준이고 고작이라는 뜻이다. 톨스토이 작품에는 그런 대답이 가득하다는 예를 들면 결론은 자명해진다. 그는 러시아 귀족으로서 자기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땅을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땅 만으로는 살 수 없다>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은 결국 언행이 일치된 사상적 표현의 결집이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농민 혁명의 도화선이 된 톨스토이 – 그가 추운 1월 우랄 철도의 시골 역장실에서 쓸쓸하게 죽었을 때 그의 마부도 따라 죽은 감동은 그의 깊은 인간미에 대한 참된 삶의 실현이었다. 그의 유언은 마지막 말이 “진리를 나는 열애한다.” 왜 저 사람들은, .이란 마지막 말에도 그의 사상은 녹아있다. 나를 찾는 여행은 문학인의 영원한 사명이다. 현실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구현되는 주인공과 등가를 이룰 때, 비로소 작품은 비로소 생명력을 획득하는 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최대 소설인 <모비딕>의 작가 멜빌은 살아있을 때 온갖 모멸과 굶어 죽다시피 했고 죽었을 때는 신문에 부고 한 줄도 안 나올 만큼 무시와 고독을 감내했었고, 생전에 1,775수의 시를 쓴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딕킨슨은 살아 7편쯤 발표한 시인이었지만 70년 후에 평론가의 연구에, 의해 빛나는 미국의 시인이 된 일이나 우리의 한용운은 1962년 <님의 침묵>을 발표한 것은 3.1 운동의 실패, 감옥살이 3년을 겪은 후에 모조리 변절한 사람들의 슬픔과 좌절감을 백담사 오세암에서 쓴 고독한 사랑에의 뜻을 담은 88편은 연작 시라는 점, - 1965년 – 40년 후에 박노순 인권 항의<한용운의 연구>에 의해 유명 애국 시인으로 등극했고, 생전에는 동요 몇 편을 발표한 윤동주도 해방 이후 유고 시집으로 살아난 시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애라는 휴머니즘의 사상에 깊은 감동을 시적으로 표현한 우리의 자랑스런 시인 – 이육사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문학의 표현은 언제나 자기를 고백하고 또 주장하면서, 자기만큼 표현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결국에는 나를 어떻게 혹은 얼마나 객관적인 방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표현의 심도에 감동의 파문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아울러 자기에 몰입하거나 깊이 빠지게 되면 도그마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경계의 몫이라는 조언이 뒤따를 것이다. 명작의 조건은 하나같이 자기를 버리고 제3의 공간을 창조하는 길을 얼마나 진정성으로 표현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인간애의 따스함도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강조가 옳은 대답이 될 것이다. 대부분 문학은 정신이라 한다. 그렇다. 문학의 본질은 결국 사상의 실현이고 이를 어떻게 구조화하는가에 소설이 되고 이미지와 이미지를 결합하여 의미로 만드는 비유가 시가 된다면 자기라는 본질에 대한 “찾음”은 결국 문학적 표현의 깊이와 유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넋두리로 자기를 감추는 것은, 문학적인 깊이와는 멀리 있는 표현일 것이다. 즉 자기 진실을 말하는 것이, 정신 가치 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5.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필자 칼럼집] [필자 시평집] [필자 시평집]
[-청송소방서 소방장 김광수-] 추석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 작업을 계획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안전하고 편안한 성묘를 위해 예초기 사용 시 주의해야 할 사항과 벌초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 예초기 사용 시 주요 위험 요인 및 안전 수칙 예초기는 효율적인 벌초 도구이지만, 잘못 사용할 경우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초기의 무게로 인한 신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체력의 한계를 고려하여 작업하십시오. 또한, 작업 중 돌이나 기타 이물질이 비산되어 부상을 입힐 위험이 있으므로, 주변을 철저히 점검하고 작업 지역이 안전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초기의 날이 사용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므로, 작업 시 반드시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작업자 간 안전거리를 확보하세요. □ 벌초 작업 전 준비 사항 및 중요 수칙 작업 전에는 날씨를 확인하여 비나 강한 바람이 예보된 날은 벌초를 피하거나 연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적절한 복장은 피부를 보호하고 부상을 방지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긴 팔, 긴 바지, 모자, 장갑, 그리고 튼튼한 신발을 착용하십시오. 또한,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할 때는 주변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도구 사용법을 숙지한 후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벌초 지역에는 벌, 모기, 진드기 등 해충이 많으므로 벌레 기피제를 미리 준비하고, 벌집이 보이는 곳은 피하세요. 묘지 근처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화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 응급 상황 대처 방법 간단한 응급처치 키트를 준비하여 상처나 벌레 물림 등의 긴급 상황에 대비하십시오. 휴대폰을 반드시 지참하고, 작업 지역 내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연락할 수 있는 연락망을 사전에 확인하세요. □ 마무리 벌초는 우리 조상을 기리는 중요한 행사이지만, 안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예초기 사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는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므로, 사전 준비와 주의 깊은 작업을 통해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여 항상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지난한 일 앞에 대단한 신기루가 끌고 가고 파라다이스가 있는 줄 일았다. 산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와 이상과 환상이 결합으로 뭉쳐진 이들이 이끌고 가는 것으로 상상의 풍선을 따라 혹은 높이 쳐다보면서 살아왔다고나 할까? 물론 상상은 아름답고 상상의 힘에 이끌려 오늘에서 내일로 가는 행보가 이어져 왔음도 사실이다. 빛나는 로맨스가 내 것처럼 친근했고 애절한 사랑의 로망도 다가오는 것으로 추측한 세월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름들은 항상 허무하게도 내 곁만을 스치면서 지나는 것 같을 때 다시 풍선을 띄우면서 언덕을 혹은 계단을 넘어왔다. 속는 줄 알면서도 속고 속아 사는 것이라 당연히 체념을 내뱉으면서도 또다시 두리번거림을 지속하는 바보의 행진이 다름이 아니다. 살아가노라면 폭풍과 맞서는 일이 더 많은 줄 알면서도 말이다. 생의 문제는 해결이 아니고 함께 도정을 거치면서 더불어 가는 일일 뿐이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누구나 꿈꿀 권리는 있고 또 그래야 험난한 난제 앞에서 살아갈 수 있고 또 다른 큰 산맥이 가로막아도 앞으로 갈 수 있고 무탈하게 하루를 넘기는 일이 굴비 엮듯 일정한 모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유추가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어디 희망가만 부르는 일이 있던가? 오히려 절망과 아픔에 더 자주 희망의 끈을 놓는 일이 많을 때면 접어야 하는 아픔이 연기를 피울 것이다. 돌아보고 돌아 보아라. 지난날들의 표정이 어떤 모습으로 흉상(胸像)이 품목 인가를- 아무래도 후자에 모습이 인생의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슬픔의 벌판을 힘겹게 걸어 오는 대다 수 사람들은 대부분은 화려하고 넉넉함보다는 찢기는 아픔과 고통과 신음으로 비빔밥이 된 눈물과 통곡의 계곡이 깊을 것이다. 이 또한 돌아보면 너무 아름다움이 그윽한, 이른바 융기의 케넌 (canyon)이 전개되는 것이 돌아보는 일의 몫이다. 미국 서부 그랜드 케넌과 나이아가라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듯 험난한 인생 여정도 돌아보면 감동을 주는 이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앞으로 무슨 성과를 달성하는가의 마지막 구축의 문제일 것이다. 예술의 기능은 이런 아픔을 위로하고 앞으로 길을 인도하는 노래일 때 임무가 달성된다고 믿는다. 자기 고백의 엮음을 어떻게 감동적으로 전시할 것인가는 디스플레이를 해보라는 뜻이다. 인생은 가변적으로 쇼윈도(show window)에 진열된 상품이라면 말이다. 기억도 없고 내가 배운 일제 강점기 시절, 6/25, 남침 전쟁의 흉측한 여파에 밀렸던 이후에 삶의 파랑들, - 거기서 살아 남아야 하는 고달픔의 여정,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며 삶의 고독이 과연 {사치한가?} 조부, 조모, 밑에 집안의 고독, 그리고 언감생심이었던 무질서한 생활에서 괴팍한 성격으로 인한 시절이 후회가 앞을 가리는 지금 미안함의 목록 등등 화려하다. 사실 이러한 시절에 운명의 빛이 글이었고 이를 통해 보람과 긍지를 건져 올린 소득은 나를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 줄 수호의 이름일 것 같다. 비록 은유라는 의상을 걸치고 있을 지라도 속 깊이에는 결국 나의 모습이 투영된 기록일뿐이라는 결론이다. 뒤틀린 인간성을 바로잡고 절망, 상처 난 마음에서 일어나 상상의 나래로 나가야 하는 염원의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늦은 세월에 좌고우면(左顧右眄)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 시와 비평 칼럼이었다. 시는 나를 정화하는 이름이었고 비평은 文事原大學, 에서 보조의 역확을 한 것이 시의 길을 재촉하는 역할이었으며 현실을 꼬집는 칼럼을 쓰는 것이 내 길을 재촉한 그림자이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라- 그러나 오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고 싶다. 그 어느 것이나 모든 것은 지나가고 걱정은 뒤를 따르느라 허겁지겁 쌓이는 하루는 그렇게 갔다, 지나는 것은 가볍고 오는 것은 무거운 날마다 맞이하는 가락은 신명을 잃었고 근심이 무늬를 놓고 다시 떠나가는 의무와 다가오는 표정을 그리는 마음엔 이미 황혼조차 낯설던 밤이 자리를 편다 해도 돌아보는 것은, 모두 묵언의 풍경화일 뿐, {걱정을 내려} 중 모든 것은 지나가고 돌아보는 눈에는 아름다움으로 수채화를 그리는 일이 연결될 뿐, 살아가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움으로 노래하는 예술이 필요한 소이(所以)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돌아보면 내 삶의 계곡도 관광객이 아무도 없는 그림 - 그러나 사람 팔자는 뒤웅박이라 누가 알겠는가. 먼 훗날 어느 한가한 탐험가가 대박처럼 광맥을 발견할 것인지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긴 지병으로 인하여 각 포털, 카카오톡, 페이스북, 밴드 등에 소식도 없이 나온 것에 대해 모든 지인, 친구, 선후배께 이 지면을 통해 송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다행히 어머니의 건강이 긴 여정이지만 지금의 이 순간으로 멈추어 있기를 바라는 사실에 자아의 한구석 빈자리가 미어진 것은 사실이나 현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체면이기보다는 글을 쓰는 일상이 다름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로다 인생은 경영이라 늘 강조하지만 어떻게 유효하게 미래를 설계하고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가는 길이 경영의 요체라 한다면 운전 또한 낙관의 관조라는 의식 속에서 넘어질 줄 알아야 일어날 줄도 알 수 있다는 진리 앞에 에고를 버리는 것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으며 동료와 친구들 모두 이런 나의 겸손을 이해 해주기를 바라며 에필로그 하련다. 2024. 0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필자 칼럼집] [필자 시평집]
by 수원본부장 손옥자[청송소방서 소방장 김광수] 최근 인천과 제주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소방공무원으로서 현장에서 직면하는 이러한 사고들은 우리에게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과 정보 접근성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전기차의 배터리는 고에너지 밀도를 가지고 있어, 손상이나 고장이 발생했을 때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화재 발생 시 배터리 종류에 따라 적절한 진압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보는 현장 대응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로서는 전기차의 배터리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어, 화재 발생 시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소방대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안전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기차의 배터리 정보를 차량의 외부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소방대원들이 빠르고 안전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진압 방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튬 이온 배터리는 특정 조건에서 열폭주가 발생해 진압이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정보는 현장 대응 시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전기차 소유주도 자신의 차량에 어떤 종류의 배터리가 사용되었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비상 상황 발생 시 스스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구조대에 신속히 전달할 수 있게 합니다. 국내외 전기차 제조사들과 정부는 이러한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터리 제조사, 모델, 특성 등을 포함한 정보를 차럼 외부에 명시하고, 이를 표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소방대원들의 작업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전체적인 사회 안전을 강화하는 조치가 될 것입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에 따른 리스크 관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소방 당국으로서는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해 지속적인 교육과 진압 훈련으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대비해 나갈 것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이 모두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을 불통이라 하며 가면을 쓴 위선자라 할 것이다.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고집불통이라고 하며 정도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단체나 모임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휩쓸려 다니는 사람을 주관이 없는 인간이라고 한다. 맞다. 우리는 근래 정치를 보면서 더욱 그런 현상에 얼굴이 찡그려지면서 외면과 무시가 전부이다. 참으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슬픔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겨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사노라면 언젠가는 평원을 만나는 일도 있겠지만 요즘 정치를 보자면 상대는 그르고 우리는 옳다. 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현실에 사실 일반 백성들은 외면하고 관심에서 멀어진다. 따지고 보면 불통이란, 교육의 문제도 아니요, 성격도 아니며 정서의 층과 사상의 문제, 정체성이 무너지면 현실과 같은 정치가 도래하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리오. 모두가 내 탓이며 펜덤(fandom) 정치가 주는 아주 몰상식한 속물 정치가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무슨 연예인도 아니면서 무지한 백성을 일방적으로 이끌고 다니는 듯한 현상이다. 우리의 아둔한 국민 정치의식도 한몫하고 있지만 그런 국민을 끌고 가려고 하는 정치인들이 더욱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정치인들이 뒤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렇다. 요즘 여당은 숫자에 밀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야당은 국회의원이 다수가 되었다 하여 무조건 탄핵과 무조건 반대 아닌 반대 오로지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가 과연 정의의 정치인지 참으로 눈으로 보기가 꼴불견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애국과 미래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정치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만 눈에 보이니 참으로 어두운 생각뿐이다. 이것이 진정 세계 10위안에 있다는 한국의 정치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편만 공정의 논리이지 상대방은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도 거부하고 멸시하는 요즘의 정치를 보면서 아집의 정치, 불통의 정치만이 우리 시대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여당은 무슨 동료 시민이라 하면서 야당과 같은 패거리 정치로 온 나라를 흔들고 있으며 야당은 온갖 비리 의심을 받는 자가 대표를 한다고 요란을 떨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정서의 층위에 어긋날 때 불행의 장막이 드리워진다. 정서의 화합만이 답인데 이들은 정서가 메말라 있기에 오로지 독선과 아집에 정지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자기를 모르고 위장과 위선만이 판을 치는 세상인지라 그냥 가엾다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으며 연민만이 드는 것이다. 사람은 많아도 필요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날마다 반복되는 말 잔치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진실이라 우기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출세하는 세상은 아닌지- 특히 정치가의 말은 모두가 거짓말이라 개진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런 범주에 들어 있어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고 떼를 쓰고 있으니 참으로 불통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서로 싸움만 하고 있으니 어찌 미래가 오겠는가? 미래는 절룩이는 미래요. 빈 공허의 미래에 담길 내용물이 없는 혹은 지극히 빈약한 표정을 대면할 때 좌절의 순서는 명백하게 자기 것이 되기에-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의지로 세계를 지니는 마음을 가질 때 새로운 IT, 반도체, 제5차 산업을 이루어 갈 때이며 메모리 반도체, AI, 시대라 한다. 또한 K- 방산과 원자로의 시대가 활짝 열려있으며 조금만 더 하나가 된다면 세계 1등 국가가 된다는 것, 초점을 맞추고 하나로 단합되는 바로미터(Barometer)로 기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 함정 모순을 피하는 일이 성공의 담보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나를 부풀리는 일이 우선이며 나를 축소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너보다 더 월등하다는 가식보다는 낮음과 겸손한 자세로 인간은 항상 깨어 있는 상태에서 똑바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서성이기만 해도 미래는 온다.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순간에 미래는 이미 지나가는 이름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포착하고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공통 분모이며 우리 세대들의 임무일 것이다. 물론 미래는 현실의 바탕 위에서 오로지 공고한 성곽을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 충실할 때 미래조차도 쉽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문제만을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내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일 경우에만 미래는 우리들의 세상을 구축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이 원론적인 미래의 사고에는 나를 이끌고 내일의 높이에 이를 수 있다는 사유(思惟)의 길이보다 명확하게 나타날 것이다. 아무튼 팽창은 불편을 해소 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정작 공간의 부족에 현대인들은 욕망을 불태우는 일은 걱정을 달고 사는 일과 같은 일이다. 세평 땅의 누울 자리만 있다면 욕심이 없다는 옛날 격언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넉넉하면서도 그 넉넉함을 모르고 아집과 고집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해 끝없이 부풀리는 정치가들은 분명 범죄임은 사실이다. 엉터리들이 많은 인간의 진실을 감별하는 사기꾼들이 들끓고 오늘의 넘침은 오히려 부족 속에 갈망을 띄운 시절이 더 인간미의 따스함을 가질 수 있었다는 모순의 발판이 넘침의 반대쪽에 있는 실상이다. 넘치는 것에 비례하여 행복은 오히려 줄어드는 이 역설의 벌판에서 현실은 고달픔의 표정만을 보내며 울상으로 보내는 현실 - 그렇다고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는 것을 주장하는 것도 어설픈 일이다. 다만 넘침에 대한 감사와 자기를 알려는 노력이 선행될 때 발달의 즐거움은 더욱 배가 될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이 기도처럼 깃대를 세워야 할 것임이 분명한 시대이다. 이제는 인간의 지혜로 희망을 찾아야 하며 길을 만들며 신념을 일으켜 세우는 불을 켜야만 한다. 무엇일까? 눈이 먼 사람은 지팡이나 길 안내견이 있어야 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보청기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희망의 지혜로 정서의 불을 켜는 일은 신념으로 정신을 소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는 샘물을 퍼서 올리고 전자파의 충격을 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진리는 언제나 미래를 선택하면서 길을 닦고 만들어 가야 되기에- 이 원리를 이해하는 순간부터 반성의 날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의 정서로 출발하는 이기적인 사고를 버려질 때 사회 질서가 잡히기에 하는 말이다. 세상 모든 빛은 같다. 그러나 중심을 잡고 미래를 보면서 보편적 가치가 있을 때 균등과 일체화가 수립된다는 점에서 오늘은 어떤 흥미로 미래로 갈 것인가를 우리는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 도약할 시기이다. 속고 속이며 사는 일이 인간사라 할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인간의 속내를 모르고 만나고 살아가는 일이 전부인 바에야 달리 방도가 없기에- 언제나 보편성과 상식을 지키는 지혜는 양식으로 갖추어야 할 깨달음이 있다면 자연스레 미래는 환하게 보일 것이다. 인간- 참으로 모순의 얽힘과 설킴에도 자유를 구가한다는 목청에 끼지 못하는 나의 모양은 어리석음일지라도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거울을 닦듯 내 마음을 닦는 일이 일상이기를 기대하며 옛 속담에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을 믿으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4. 0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필자 칼럼집] [필자 시집] [필자 시평집] [필자 시평집]
by 수원본부장 손옥자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미래의 풍요를 위해 우리는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사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고난의 시대에는 예술은 희망의 인도와 예언의 역할을 해왔다면 풍요의 시대의 예술은 장식의 기능이라 한다고 한다. 또한 예술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정서적 안정감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이성의 회복을 기할 수 있을 때 인간성의 유지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인간성의 돌변은 가치가 변모할 때 가장 불행한 경우에 직면한다면 예술은 인간이 알고 있는 구원의 메시지라 보는 것이다. 미술은 안정감의 여행(旅行)을 촉구하고 상상(想像)의 부산물로 따라올 때, 현실을 보다 더 조직적으로 의식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은 긴장감을 가질 때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자기 발견의 모티브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極大化)로 시키느냐의 함량(含量)에서 훌륭한 문학의 업적이 달성된다고 믿는다면 지금 우리는 현재 오로지 상업적으로 의존해 오염되었다 하더라도 표현(表現)의 자유가 구가되는 현상을 올바른 판단이며 미래를 낙관해도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문학은 심도에서 사상(思想)의 승화(昇華)가 부족하다는 말을 명망이 높은 어른들을 말한다. 감각적(感覺的)인 표현(表現)에서는 진전을 이루었지만 정작 작품 속에 진지한 사상의 깊이에 고갈 현상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서로 갈라진 남북의 이념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문화(文化)에 녹아있는 생각의 문제이기에 참혹한 전쟁을 겪어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위대한 전쟁 문학이 결여가 되어 삼국의 정립에 따른 각축을 다룬 진정한 역사적인 통찰(洞察)의 안목이 없었으며 근대사로 와서는 온갖 전쟁의 참화(慘火) - 7년여의 임진왜란, <三拜九叩頭>의 삼전도에서 청나라 왕에게 항복 문서를 갖다 바친 병자호란, 또는 6.25의 비극은 너무도 통렬(痛烈)한 가슴의 아픔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둔감하고 남의 시비에는 민감한 정서를 <우리>라는 두루뭉술로 포장하는 관용이 있기에 그새 나의 비극을 잊어버리는 징후가 사상의 심화에 미흡한 표현력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사상은 결국 자신의 문제로 시작해서 객관을 바라보는 접근법, 귀납적 논리학이 주류를 이룬다면 우리는 연역적 논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보편에서 특수로 가는 결말이기보다는 보편에서 시작하여 다시 보편적 논리로 익숙한 것이 추상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귀납적 논리도 아니고 연역적인 논리도 아니며 중간에 머무는 일 때문에 특성이 없는 결말에 직면하는 것은 아닐지- 여기서 우리 문학의 심도(深度)는 돌부리에 채이고 가시에 찔리고 함이 안타까움일 것이다. 만약 서구적인 사상의 발전 모델이라면 우리의 문화는 우리에서 출발하여 결국 우리로 돌아가는 공허만이 있을 뿐 깊이가 내재 되어 표피(表皮)적인 현상이 만연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한때 유행했던 대하소설도 대부분 가족사이거나 이데올로기의 분열상만 파노라마로 보여 (Showing) 주었을 뿐 정작 작가의 고뇌(苦惱) 어린 해답(heaithy, thoughts)은 없다고들 하지 않던가? 소설(小說)은 갈등을 다루면서 시간의 정리라면 결국 그 스토리에 깊이엔 작가의 사상(思想)이 뼈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사랑방 이야기가 되는 고작이라 하지 않을까? 톨스토이의 대작품에서는 그런 대답이 가득하며 예를 들자면 결론(結論)은 자명해지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귀족으로 자기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땅을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땅만으로는 살 수 없다>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은 결국 언행이 일치된 사상적(思想的) 표현(表現)의 결집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러시아 농민혁명(農民革命)의 도화선(導火線)이 된 톨스토이 그가 추운 1월 우랄 철도의 시골 역장실에서 쓸쓸하게 죽었을 때 그의 마부도 따라 죽은 감동(感動)은 그의 깊은 인간미에 대한 참된 삶의 실현이고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의 유언의 마지막 말이 “진리(眞理)를 나는 열애(熱愛)한다. 왜 저 사람들은 이란 마지막 말에도 그의 사상(思想)은 녹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찾는 여행은 문학인의 영원한 사명이라 황금찬 선생이 말했듯이 현실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구현되는 주인공과 등가(等價)를 이룰 때, 작품(作品)은 비로소 생명력(生命力)을 획득하는 것이라 수차 강의를 들은 바 있다. 20세기의 최대 소설인 <모비딕>의 작가 멜빌은 살아 있을 때 온갖 모멸과 굶어 죽다시피 했고 죽었을 때는 신문에 부고(訃告)한 줄도 나오지 않을 만큼 무시와 고독을 감내(堪耐)했으며 생전에 1775 수의, 시(詩)를 쓴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 은 살라 7편쯤 발표한 시인이었지만 70년 후에 평론가들의 연구 때문에 빛나는 미국의 시인이 된 일이나 우리의 한용운 선생은 1926년 <님의 침묵>을 발표한 것은 3.1운동의 실패, 감옥살이 3년을 겪고 난 후에 모조리 변절한 사람들의 슬픔과 좌절감을 백담사 오세암에서 쓴 고독한 사랑에의 뜻을 담은 88편은 연작시라는 점 -- 1965년 – 그러니까 40년 후에 박노순, 인건한, <한용운 연구>에 의해 유명의 시인으로 등극을 했으며 생전에는 동요 몇 편을 발표한 윤동주 선생도 해방 이후 유고 시집으로 살아난 시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애라는 휴머니즘의 사상에 깊은 감동을 시적으로 표현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인이며 또한 이육사도 마찬가지이다. 문학의 표현은 언제나 자기를 고백하고 또 주장하면서 자기만큼 표현하는 특성과 일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결국은 나를 어떻게 혹은 얼마나 객관적인 방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 표현의 심도(深度)에 감동(感動)의 파문은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고로 자기에 몰입하거나 깊이 빠지게 되면 도그마의 함정(陷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경계(經界)의 몫이라는 조언이 뒤따르지 않을까? 명작(名作)의 조건은 하나같이 자신을 버리고 제3의 공간(空間)을 창조(創造)하는 길을 얼마나 진정성으로 표현(表現)하는가에 여부에 따라 인간애의 따스함도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강조가 옳지 않을까? 대부분 문학은 정신이라 하지 않든가 문학의 본질은 결국 사상(思想)의 실현(實現)이고 어떻게 구조화(構造化), 시키는가의 따라 소설이 되며 수필(隨筆)이 되고 이미지를 결합(結合)하여 시(詩)가 된다는 것이라면 본질은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일 것이다. 표피(表皮)적이고 감각적(感覺的)인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넋두리로 본인을 감추는 것은 문학적인 깊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미를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은 시대적인 의미(意味)에서 안정감(安定感)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때나 비극(悲劇)은 있으며 슬픔도 있지만 여기서 희망(希望)의 대칭이 이루어진다면 예술은 언제나 이를 방지하는 깨달음의 약이 될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혼이 필요한 소이(所以)가 아닐까 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을 갖고 내면의 마음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매진하고 더불어 정체성의 정신이라고 믿으며 에필로그 한다. 2024.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필자의 시집] [필자 칼럼집] [필자 시평집]
by 수원본부장 손옥자[문정환 청송소방서장님 증명사진(제복)] 벚꽃이 피고 지는 따스한 봄을 지나서 어느덧 무더운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강과 계곡으로 향하고, 그에 따라 수난사고 발생위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최근 청송에서는 5월 초에 한 50대 남성이 다슬기를 주우러 갔다가 실종되었던 수난사고가 있었으며 물놀이 또한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기 때문에 예방법을 숙지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놀이 안전사고 예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물놀이를 가기 전 그리고 휴가 중에 날씨 정보를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7월부터 9월까지 장마 또는 태풍의 영향이 집중되는 기간이다. 장마와 태풍은 강과 계곡에 있는 물을 갑자기 불어나게 만들며 또는 산사태를 발생시킨다. 사전에 날씨 정보를 확인 후 물놀이를 계획해야 하며, 장마 또는 태풍이 예상될 때는 계획을 변경하여야 한다. 둘째, 물놀이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처하는 요령을 숙지한다. 수영 전에는 준비운동을 하고 입수할 땐 심장에서 먼 부위부터 들어가야 한다. 물놀이 중 소름이 돋고 피부가 땅긴다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 만약 주변에 긴급상황 발생 시 구명환이나 구명줄이 있다면 던져주고, 구명 기구가 없다면 주변에 긴 막대를 이용하거나, 페트병이나 아이스박스를 던져 부력을 이용하여 떠 있게 해주면 긴급상황에서 훌륭한 구조기구가 될 수 있다. 셋째, 물놀이 시 구명조끼 등과 같은 안전 장비를 반드시 착용하고 물놀이를 즐겨야 하며, 119구조대나 안전요원이 없는 계곡, 강변 등에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한 경우 구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무모한 구조를 금하고, 직접 구조하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고 사실을 큰소리로 알려 도움을 요청한다. 추가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한 후에 의식 및 호흡이 없다면 무엇보다 119에 빠른 신고가 중요하며 구급대가 올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최근에는 영상통화로 119상황실 근무자가 방법을 잘 알려주는 경우가 있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예방수칙을 모두 숙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항상 조심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언제나 안전사고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여름철 물놀이를 떠나기 전 충분한 대비와 물놀이 안전 수칙을 지켜 즐거운 여름 휴가를 보내길 바란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안성시 양성면 반투위 현수막 설치와 주민들 1] 지난 8년여간 걸쳐 안성시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고속도로가 안성을 관통하여 나들목이 건설되면서 향후 발전이 기대되고 있으며 안성맞춤의 도시, 특산품의 관광지, 성지 호수 등이 있고 농·축산이 함께하는 복합 도시이다.아직은 오염되지 않는 친환경적인 명품의 수도권 도시로 변모하고 있으나 안성시도 머지않아 환경오염과 교통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때 또다시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선다니 안성시 양성면협의회장(안성시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투쟁위원회) 이천우 위원장, 진범화 사무국장 외 임원진 인근 장서리1리, 2리 이현리주민들, 궁도장, 기업체 인근 축산농가 등 100여명이 모여 소각장 업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환경청 담당자에게도 이곳은 분지형 지역으로 사계절 공기가 정체되고 인근에 궁도장, 주민 거주시설, 사회복지시설, 기업체, 축산시설, 농경지 등이 있어 소각장 입지 조건으로는 부적합하다고 강력히 전달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면담을 요청하였다. [한강유역환경청 관리자와 이천우 반투위 위원장 및 주민 면담 현장 2]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올 시 발암물질 등 자연경관 훼손 농축산 지하수 오염 등 향후 이로 인한 환자 발생, 1차 2차 3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에 절대 입지가 선정될 수가 없다고 주장하며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시위에 들어갔다. 벌써 5회째 입지 선정이 반려가 된 상황에서 재차 입지를 선정하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도가 있지 않고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하소연을 하고 있다.지금도 의료폐기물 소각장 허가 지역에서는 금품, 상품권 등을 미끼로 주민을 매수하고 각종 설들이 있으며 주민들 이간에 서로의 불신들이 커지고 있는 상태이다.또한 안성시 서부권은 더욱 심각하다. 인근에 변전소, 물류센터와 (5.4km) 떨어진 용인시 남사면에 위치한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증축한다는 설이 난무하다. [의료페기물 소가각장 반대시위 현수막3] 요즘에도 교통이 막혀 대형차량, 냉동차, 콘테이너 차량이 수시로 다니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안성시 양성면 장서리 519-63, 현장을 답사하려 했으나 입구에서 장정들이 막아서며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다. 본 기자는 2022년에도 입지를 정한 519- 63을 답사하였고 그때 당시에도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하여 반려한 곳임에도 사업자 명의만 변경하여 2023. 05. 08.에 허가를 신청한 것이었으며 23. 05. 20. 오전 10시 30분경 한강유역환경청에서 현장을 방문한다기에 본 기자도 참석해 담당자와 반대투쟁위 위원장 면담과 주민들 약 100명 이상이 모여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를 위해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지금 주민들은 한창 농번기에 모내기 등 일손이 모자라 허덕이고 있는 이때 또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하기 위해 1인시위를 하게 되었다고 좌불안석(坐不安席) 조바심에 농민들만 애가 타들어 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반려되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오늘도 주민, 기업, 궁도장 등은 『의료폐기물 소각장』만은 결사반대한다며 강력한 투쟁 의지를 밝히며 주민 어르신들은 눈물과 함께 엎드려 빌고 있다는 사실에 본 기자도 드릴 말이 없었다. 1개 사업자의 허가를 위해 주민들은 얼마의 비용과 인력을 소모해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다시 한번 안성시청 관계자 여러분과 안성시 의회에 강력히 주문을 요구하는바 주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조속히 반려시켜 줄 것을 바란다. 2024. 06. 03.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의료페기물소각장 반대 시위 중 1] 2024년 05. 20. AM 11:00에 한강유역환경청 000 과장과 담당이 나와 의료페기물소각장 환경심사평가를 한다기에 본 기자는 안성시 양성면 양성로 519-63 위치한 현장에 가보았다. 그사이 주민들이 남, 여, 노소를 불문하고 약 60여명의 어르신들이 프랭 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2022년 당시와 똑같은 현장을 목격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안성시 양성면에 위치한 소재지는 주거지역과 밀집되어 있고 각 공장이 둘러싸여 있어 벌써 8년째 4회나 반려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5회째 의료페기물소각장 심사평가한다고 하니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한강유역환경청 주무관청은 이를 모를 리가 없는데 계속 환경심사평가를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으며 이러한 소모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는? 글쎄올시다. 이다. [의료페기물소각장 반대 시위 중 2] 양성면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치 사업은 지난 2017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양성면에 추진되었지만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인한 부적절함 때문에 반려되었지만 지난 2023년 8월 또다시 사업 신청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소각장 반대투쟁대책위원회는 2년 전과 같이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무려 55일에 걸쳐 한강유역환경청 앞에서 1인시위를 펼친 바 있으며, 안성시의회에서도 반대결의안을 채택하고, 김학용 국회의원도 한강유역환경청장을 면담한 바 있으며 한강유역환경청장도 사업 예정 부지를 방문한 바 있다. [의료페기물소각장 반대투쟁 위원장 임원 면담 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추진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 한강유역환경청에서는 사업자에게 보완 서류 제출을 요구한 바 있지만 반려되었던 사업이다. 또다시 양성면 의료페기물소각장 반대대책위원회도 지난 5월 14일 반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하고 신임 위원장을 선출하여 반대 의지를 보다 분명히 하고있는 상황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재차 환경업체를 계속 바꾸어 가면서 의료페기물소각장을 접수를 하고 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의료페기물 소각장 예정지 4] 안성시 양성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막대한 인력과 정신적 스트래스로 인하여 피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호소한다. 현재 반투쟁위원회위원장 이천우 양성면 이장협의회장은 양성면 주민을 더 이상 우롱하지 말라며 울분을 토하며 강력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농번기인 요즘 농사일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투쟁위에 전념하다 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주민들의 소리에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주민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며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소각장 반려 건 (출처: 최혜영의원실) 5] 마지막으로 안성시청과 안성시 의회에 강력히 촉구한다. 문학의 도시라 자부하는 안성시 주민을 위해서라도 현재 평택시가 입법 예고한 것처럼 미세 먼지, 악취, 소음, 수질오염 등으로 시민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원 순환 시설을 설치할 때 주택과 하천은 이격을 두는 조례를 만들어 안성시 도시계획조례 안을 일부 개정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기대하는 바이며 페기물업체 등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경관 훼손, 등 피해를 호소하는 집단 민원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조례안을 입법 예고 조례를 만들고 규칙 심의 위원회 구성도 착수하여 주민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한강유역환경청 담당자와 위원장 면담 6] 8년여를 끌며 4번이나 반려된 의료페기물소각장을 해결치 못한다면 안성시 특히 양성면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과 보가 될 것이라 본다. 끝으로 시장, 의회는 시민과 안성 발전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주민자치 행정이라 해서 무엇이 올바른 행정이고 무엇이 시민을 위한 행정인지는 국민이 더욱 잘 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024. 05. 22.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리스트/이승섭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김성문 (사)가야연구원장] 천 년이 넘은 온돌방이 있다. 자연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4월 말, 그동안 복원 공사를 마친 칠불사에 있는 아자방이 원래의 모습으로 완공되어 일반에게 공개한다고 매스컴에서 들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자동차 길인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칠불사가 나온다. 칠불사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던 온돌방이 있다. 이 온돌방이 있는 건물이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전소되었다. 건물은 복원했으나 구들은 그대로 두었다. 그전에도 소실된 적이 있었다. 복원되지 않은 온돌방을 조사 발굴한 후 8년 만인 2023년 말에 복원했다. 칠불사 온돌방은 방 안에서 보면 버금 아(亞)자 모양으로 생겨서 아자방(亞字房)이라 부른다. 이는 신라 효공왕(897~912) 때 가락국에서 온 구들 도사라 불리던 담공 선사가 처음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1,100년이 넘었다. 유구한 세월이다. 아자방은 구들의 탁월한 구조로 1975년 세계건축물협회에서 펴낸 『세계건축사전』에 수록될 정도로 유명하다. 복원 후 아자방 건물 서쪽으로 출입하도록 문을 내었다. 담장의 일부는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올곧게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긴 듯하다. 대나무 울타리를 보는 순간 허리부터 쭉 펴게 된다. 아자방의 서쪽에서 보아 오른쪽에 있는 큰 아궁이에 오후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아궁이 입구는 입 구(口)자 모양으로 버금 아(亞)자와 입 구(口)자를 합쳐 동쪽에서 보면 전체는 벙어리 아(啞)자 모양이 된다. 아마도 수행 중에는 묵언하고 정진하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아자방은 처음 축조했을 때 땔감을 지고 아궁이로 들어갔다니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 번 불을 땔 때 일곱 짐 정도를 한꺼번에 땠다고 한다. 불길이 막히지 않고 서서히 타들어 갔고 골고루 따뜻했다고 한다. 한 번도 크게 고친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내가 그대로 들어가도 될 정도다. 축조 당시 불을 한 번 때면 ‘석 달 열흘’은 온기가 골고루 유지되었다고 한다. 신비감이 더해진다. 지금은 이틀에 한 번씩 많은 땔감은 아니지만 불을 땐다고 한다. 『천 년의 비밀, 아자방 온돌』 의 저자 김준봉은, “아자방 아궁이는 서서히 오래 열기를 공급하고 구들과 불길이 움직이는 길과 형태가 다른 온돌과 달라 오랫동안 열기를 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라고 했다. 우리의 온돌 문화는 세계적이다. 직접 방에 들어가 보니 방의 긴 쪽이 약 8미터로 직사각형이다. 방바닥에서 약간 높은 좌선대가 네 귀퉁이마다 설치되어 있다. 스님들은 아자방에서 눕지 않고, 한 끼 먹고, 벽만 보고 앉아서 수행한다니 고행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방바닥은 좌선대에 올라 수행하다가 피곤함을 풀기 위해 다리를 내리면 방바닥까지 펼 수 있게 만들었다. 중앙의 낮은 방바닥은 불경을 읽는 공간으로도 활용한다고 한다. 평생토록 눕지 않고 수행한 스님은 혜암과 청화가 알려져 있다. 평생토록 눕지 않았다니 사람으로서 가능한지 의문이 가나 실제의 기록이다. 보통 사람은 며칠만 지나면 힘들어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는데 꾸준히 수행하면 경지에 오르나 보다. 아자방 온돌은 2023년 말에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칠불사 측은 내부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하고, 2024.2.7.부터 같은 해 부처님 오신 날까지만 일반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스님들이 수행에 들어가면 공개할 수가 없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9년에 보면, 선전관 이윤춘이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 대해 임금께 올린 글이 있다. “취령(鷲嶺) 아래 칠불암(七佛菴)은 문양해가 살던 하천 산당(荷川山堂)과 서쪽으로 10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그 문 귀에 달린 현판에는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苑)이라고 썼습니다. 그 안에는 아자형(亞字型)으로 된 승방(僧房)이 있었는데, 승려들을 대사(大師)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벽을 향하여 말하지 않고 앉아 있는 사람이 아홉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다 아침에 모여 묵언 수행하다가 해가 져서 어두워질 때 흩어졌습니다.” 아자방에서 수행한 큰 스님이 여러 사람 있다. 정명, 벽송, 조능, 서산, 부휴, 초의, 월송 등이다. 유명한 고승들이 수행한 곳으로 알려져 많은 스님이 아자방에서 수행하는 것을 꿈으로 여긴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떠 오르는 스님은 서산(휴정) 대사다. 그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 선조의 부름을 받고 승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전국의 사찰과 승려들에게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그의 제자인 사명(유정) 대사와 처영 스님 등이 승병을 모아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그는 사명 대사와 합류하여 명나라 군대와 힘을 합쳐 한양을 되찾고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이라는 직책도 받았다. 도총섭은 전국의 승군(僧軍)을 통솔하는 직책이다. 그 후 벼슬을 사명 대사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에 들어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수도 생활을 계속했다. 1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큰 스님이다. 직접 아자방에서 스님처럼 벽면을 보고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온갖 상념들이 떠 오른다. 하나씩 버리니 잠깐이나마 마음이 편안하다. [아자방 내부]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김성문 (사)가야연구원장] 모임에서 부산에 있는「재한유엔기념공원」에 갔다.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 때 우방국의 젊은이 수천 명이 영면하고 있다. 이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의 무덤 앞에 숙연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리는 참전국 국기가 게양된 곳으로 갔다. 유엔기 게양대 앞에서 한국을 위해 목숨 바친 용사들의 명복을 빌며 각각 국화꽃 한 송이를 바쳤다. 고개를 들고 게양한 각 나라의 국기를 보는 순간 제일 뒤편 오른쪽에 독일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독일 국기를 주목했다. 한국에 직접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는 열여섯이고 의료진을 보낸 나라는 다섯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독일이 추가되었다. 왜 독일이 추가되었나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연유를 알아보았다. 독일은 왕권 국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되었다. 히틀러는 다시 독일로 국호를 바꾸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평화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도 패했다. 패전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담당으로 분할되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점령한 지역은 민주주의 국가인 서독으로, 소련이 담당한 지역은 공산주의 체제인 동독이 되었다. 1990년에는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후 같은 민족으로서 강대국이 되었다. 한국도 평화통일로 더 발전된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서독은 6•25전쟁 중에는 의료진을 파견하지 않았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긴 서독은 1953.7.27. 정전협정이 있기 몇 달 전에 자기들도 의료진을 파견하겠다고 유엔에 제안했다. 유엔에서는 서독의 의료진 파견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자 휴전이 된 후에 서독은 자진해서 부산에 의료진을 도착시켰다. 그들이 치료하던 곳을 부산 시민은 서독병원이라 불렀다. 공식 명칭은 적십자병원이다. 일백여 명의 의료진이 1953년부터 5년간 30여만 명의 부산 시민과 피난민을 무료로 치료하고 약도 제공했다. 6천 명 이상의 임산부도 돌봐주었다. 그들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알고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그들의 봉사 정신이 지금도 빛나고 있다. 서독 의료진이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는 최신 의료 장비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또한 의학 지식도 모두 전수했다. 그들의 인류애가 나의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그후 한국은 독일의 위대한 의료정신을 빛내기 위해 통일된 독일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논의가 있었다. 그 결과 2018.6.부터 재한유엔기념공원에 독일 국기를 게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공원은 유일한 유엔 묘지로 평화의 성지(聖地)다. 이러한 성지에 자기 나라 국기가 게양된다는 것은 큰 경사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폴란드에 아우슈비츠(Auschwitz), 헤움노(Chełmno) 등의 절멸수용소를 세웠다. 거기에 유대인들을 가두었다가 틈만 나면 죽이곤 했다. 독일군의 유대인 대우는 매우 잔인했다. 목욕탕으로 위장한 가스실에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유대인들을 가두고 가스를 살포해 한 번에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였다. 후에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과를 한 것으로 보아, 그들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알고 뒤늦게나마 사과를 한 것에 조금은 내 마음이 풀린다. 전쟁은 서로가 희생당한 사람이 많게 마련이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쟁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독일 국민이 평화의 성지에 자기 나라의 국기가 게양된 것은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으로 본다. 2022.11.에 독일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내외도 재한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고 계속해서 독일 국민이 단체 참배를 많이 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독일 군인들이 참배를 많이 오는데 그들이 들어올 때의 표정은 어두운데 자기 나라 국기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환해진다고 한다. 독일은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64.12. 서독의 수도 본(Bonn)에서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총리와 박정희 대통령과 나눈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에르하르트 총리가 “한국은 산이 많은 지형인데 산업 발전을 하려면 일본과 손잡고 고속도로를 놓는 게 나라를 발전할 수 있다.”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거절하자, 에르하르트 총리가 “독일은 프랑스와 열여섯 번을 싸웠는데 그래도 전후에 양국은 손을 잡았다. 지도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라고 했다. 독일은 패전국이었다. 독일의 부활을 위해 프랑스의 지원이 컸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국은 1965년 한일(韓日)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이 체결되자 일부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라며 상식을 벗어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국은 일본의 지배에 의한 배상 청구권자금과 서독 차관으로 1970년 포항 종합제철소가 착공됐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으며, 포항제철이 생산한 철강 제품으로 ‘포니’ 자동차가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지도자는 소신이 있고 확신에 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숙한 마음으로 유엔기념공원을 계속 둘러보았다. 미국은 6•25전쟁 때 전사자가 수만 명이었다. 이곳에 묻힌 병사가 적었다. 미국은 전사자가 발생하면 그들의 유해를 자국으로 가져가서 봉안한다고 했다. 이곳에 묻혀 있는 40여 구는 전쟁 후에 한국에서 생을 마감한 병사들이었다. 한국에서 사망한 미군들이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했거나 가족들이 한국 땅에 봉안하기를 원하는 경우라 한다. 자국의 전사자를 모국의 영토에 묻히도록 하는 미국의 병사 사랑 정신도 본받을 만하다. 미군들의 부부 합장묘가 다섯 쌍 있는 것은 부인이 모두 한국인이었다. 우리는 현재 한국을 도운 임들이 있었기에 자유롭고 발전한 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희생과 봉사 정신이 고마움으로 내 가슴에 새겨진다. 오늘따라 이 공원에 핀 붉은색의 겹벚꽃이 임들의 고귀한 정신을 한층 더 빛내 주는 듯하다.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