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근처에서 가장 높고 수로왕릉 조성과 모은암, 백운암 창건 설화가 깃든 산은 무척산(無隻山)이다. 무척의 한자를 보면 짝이 없는 산으로 해석된다. 짝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말인지? 외롭다는 말인지? 무척산 정상은 신선봉으로 해발 702.5m이고 식산, 무착산, 무쌍산이라고도 불렀다.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에 있다.무척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몇 군데가 있다. 생철리에서 가는 길을 택했다. 무척산 입구 주차장에서 모은암까지는 약 700m이고, 모은암에서 천지는 약 1.7km, 천지에서 무척산 신선봉까지는 약 1.2km이나 모두가 가파른 길이다. 먼저 모은암에 갔다가 수로왕릉 조성에 대한 설화가 깃든 천지(天池)로 갔다. 모은암은 가락국 제2대 도왕이 어머니인 수로왕비의 은혜를 생각해서 창건했다는 설과 수로왕비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무척산 7부 능선에 있는 모은암으로 가는 길은 주차장에서 시작부터 시멘트 포장길이다.
어느 정도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었다. 길옆 적당한 공간이 있어서 그 자리에 주차하고 시멘트 길로 걸었다. 시멘트 길이 끝나자 가파른 돌계단이다. 뒤에서 두 여인이 올라온다. 그들은 승복을 입어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무척 가벼워 보인다. 조금 보폭을 같이 하다가 두 사람은 나를 앞질러 간다. 모은암은 시야에 들어오는데 가파른 돌계단 길을 약 200m는 더 올라가야 한다. 팔공산 서쪽에서 갓바위 올라가는 돌계단 길과 비슷하다. 계속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숨이 차서 돌계단 옆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쉬고 있는 바위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보니 생철리가 바로 눈앞이고 너른 평야를 품고 있다. 평화로워 보인다. 산행은 땀이 마르도록 쉬면 안 될 것 같아 계속 올랐다. 염불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드디어 모은암 출입문 입구이다.
절벽은 모은암이 들어설 조그마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절 뒤편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 앞에 모은암이 있다. 좁은 절 마당 안으로 들어서니 바로 왼쪽에 금색으로 쓴 극락전 현판이 눈에 띈다. 극락전 문을 살며시 열고 안에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잠시 후 부처를 바라보니 대좌까지 포함해서 높이가 약 60cm 정도로 아담하다. 아미타여래의 양쪽에는 협시보살 좌상이 있다. 아미타여래의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이다. 부처는 돌로 만들어졌는데 부드럽고 탄력있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몸은 작고 부처의 머리를 더 크게 제작해서 그런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깨선과 다리가 균형이 맞아서 안정감이 있다. 부처를 바라보니 어린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맑은 정신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수만 가지 생각들이 한순간에 정리되어 버린다. 이 부처는 가부좌한 양발 위에 손등을 위로 오도록 하여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마치 마주 앉아 있는 듯하다. 부처의 설법을 직접 듣는 느낌이다. 한없는 친근감이 감돈다. 이 부처는 ‘김해 모은암석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이다. 극락전을 바라보아 바로 오른쪽에는 모은암과 청심당(淸心堂)이란 현판이 옆으로 나란히 있다. 절에서 사용하는 종무소와 요사채이다. 왼쪽에는 모음각이 있다. 모음각 안에는 범종이 들어 있고, 겉면에는 부모은중경을 새겼다. 잠시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생각하게 한다. 극락전 뒤편에는 내 머리가 닿을 정도의 조그마한 바위굴이 있다. 그 속의 제일 위쪽에 석가여래가 있고, 그 아래로 부처의 제자인 여러 존자가 각각 있다. 나도 잠시 부처의 제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극락전 바로 앞에는 사람이 편안히 누워 있는 형상으로 보이는 검은색의 바위가 있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형상처럼 보인다. 엄마의 젖가슴이 생각난다. 모은암에서 조금 내려와서 천지로 가는 길을 찾았다. 천지까지는 꽤 먼 거리로 가파른 계곡 길로 올라가야 한다. 천지는 해발 505m에 있다. 무척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연못이다. 수로왕이 붕어하자 지금 김해시 서상동의 왕릉이 있는 위치에 능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파게 되었다. 그런데 능을 마련하기 위해 터를 파는데 물이 계속 솟아나게 되어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늙은 도사(道士)가 나타나서 김해 고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무척산에 연못을 파면 왕릉 자리의 물줄기가 끊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연못 파는 것을 일러준 노인은 도사가 아니라 허황옥 공주를 수행한 신보(申輔)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보는 허황옥 공주가 가야 땅으로 올 때 같이 왔으며, 가락국 제2대 도왕의 왕비인 모정(慕貞)의 아버지이다. 도사의 이야기를 들은 가락국의 신하와 백성들은 무척산의 높은 곳에 연못을 팠다. 그러자 왕릉 자리에 물이 더 솟아나지 않아 무사히 수로왕의 장례를 마치게 되었다고 한다. 천지에 오르는 길옆에는 연리지인 부부 소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다. 두 소나무는 가지가 합쳐진 부분이 있어서 한 몸이 된 느낌이다. 신기하다. 연리지나 연리목을 보면 부부 간이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12월 중순인데 천지 폭포에 얼음 기둥이 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무척산 정상 1.2km를 남겨두고 천지가 나타난다. 생각보다는 엄청 크다. 천지 가장자리에는 무척산 기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쪽 가장자리에는 통천정(通天亭)도 있다. 하늘로 통하는 정자이다. 이 정자에서 올라온 길을 생각하며 내 마음이 하늘로 통할 수 있을지 잠시 마음을 모아본다. 천지는 모두 얼어서 빙판이다. 북쪽에 못을 막은 둑이 있다. 못 둑에서 천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물을 가두었으니 수로왕릉을 마련하는데 물이 안 나올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설을 뒷받침해 주는 느낌이다. 무척산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많고 경관도 좋다. 산의 높이에 비해 계곡이 깊고, 산세가 험하다. 천지를 뒤로하려니 아름다운 모습들에 아쉬움이 있으나 내려가야 할 길이 멀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