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 맘 때면 경기도내 사찰 곳곳을 수놓는 인파 행렬을 목격할 수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사찰을 저마다의 이유로 찾는 이들이 많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사찰에 깃든 부처의 가르침을 음미해보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자연스레 생겨난다. 초파일을 맞는 도내 사찰 곳곳에선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 마음의 안식 선사할 힐링 스팟…남양주 봉선사
초파일을 9일 앞둔 지난 18일 오후 남양주 봉선사. 저마다의 명분과 이유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 단순 신앙 생활을 위해 온 사람들보다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방문한 이들이 많이 보였다.
“신앙심이 깊은 분일수록 초하루나 일요 법회가 열리는 오전 등 특정 시기에 맞춰 방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절을 들렸다가 조용히 사색에 잠기는 분들도 많다”고 운을 뗀 봉선사 보륜 스님의 말처럼 봉선사에 잠시나마 더 머무를 수 있는 이유는 고요한 평화가 맴도는 연꽃 군락지에서 찾을 수 있다.
연인, 친구, 부부,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책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만의 시간. 연꽃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있던 이순자씨(79·남양주시 진접읍)는 “연못 주위를 감싸는 둘레길을 돌고, 벤치에 앉아 연못을 보다가 인근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한 달에 두번가량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는 게 삶의 낙”이라며 “녹음이 우거진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힐링 루틴을 즐기는 사람들을 지나쳐 사찰 내부로 들어가다 보면 오색 연등이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렇게 도착한 큰법당 앞마당을 가득 채운 연등 물결을 보고 있으면 각각의 연등을 매단 사람들이 어떤 염원과 소망을 품고 있을지 상상해 보게 된다. 금액이 큰 1년 등은 법당 안에 달려 있고, 바깥에 걸려 있는 연등엔 초파일을 맞아 각자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내용이 담겼다.
딸과 함께 이곳을 3개월만에 찾은 김창실씨(83·여·남양주시 도농동)는 봉선사를 3년째 다니고 있다. 김씨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고맙다”면서 “초파일에 오면 사람들이 너무 몰릴 거 같아서 미리 방문했다. 이곳을 오고가는 이들과의 모든 만남이 너무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오고 가는 불자들을 인자한 미소로 맞이하던 보륜 스님은 “단순히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현재 바라는 걸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라며 “오래 전 성인들께서 과연 어떤 가르침을 주셨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서 위안을 받고 가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 봄이 지나 꽃도 지고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 성큼 다가온 만큼,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라고 덧붙였다.
수도권 도심에서 멀지 않은 용인시 삼가동 멱조산 자락으로 발을 옮긴다. 이곳엔 도시를 감싸는 급박한 리듬과 다른 여유로움을 간직한 사찰인 화운사가 있다. ‘화운’,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서 꽃빛구름(화운)이 피어난 데서 유래한 이름처럼 사찰에 깃든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화운사는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에 자리한 사찰은 아니지만,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에서 오고가는 이들과 폭넓은 교류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린이 법회, 어린이 캠프뿐 아니라 템플스테이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선사한다. 지난달 말 화운사까지 3시간 걸리는 거리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던 방문객 A씨는 “호기심에 절을 찾아서 별 기대가 없었지만 자연의 소리를 듣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돼서 너무 뜻깊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화운사 서보 스님은 “우리는 굉장히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의 목소리를 많이 놓치고 산다”면서 “템플스테이를 찾는 모든 분들께 항상 드리는 말씀이 있다. 채워가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쉬고 내려놓으셨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드린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