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적 가치】

    〖파우스트의 이성〗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3-07-11 16:14:5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프랑스 정서로 재 탄생한 파우스트는 죽음 전 1년에 완성 된다.

    괴테의 원작을 재 생산한 것이 극시 대표적 작품이 파우스트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다룬 파우스트와 그레첸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실은 독일에서는 19세기 괴테의 원작을 변질 시켰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천회나 상연 되었으니 초연 이후 1893년 구노가 세상을 떠날 때가지 인기를 끌었다.

    평생을 진리 탐구를 했으나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두 섭렵하고도 허망을 견디지 못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인데 사실 필자도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아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렇게 인생의 전체를 파고들어도 늙어버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한탄을 할 정도였으니 모든 것에는 이성의 합리성이 기준이 될 것이라 하겠다.

     

    이성이란 객관적 주관적 이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고들 한다이러한 이성을 나열은 할 수 없지만 요즘 들어 정치, 사회, 가 모두 갈래갈래 나누어 지다

    보니 이념성인지, 도대체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정말 우리나라가 한쪽으로만 편중되어 이기주의, 나 아니면 안된다는 논리, 내로남불에 너무나 우려스럽다.

    모두가 냉철한 이성과 주관적이 아닌 객관성 합리성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어디 그렇던가 ?

     

    인간은 저마다의 인품의 냄새 가식의 냄새, 거짓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를 지성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인간의 특성이 있음을 오래 교류하다 보면 자연스레 향기를 발산하고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이 있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도 있을 뿐만 아니라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좋은 사람의 향내가 나는 경우가 많지만 더러는 이기의 함정에서 자기만을 앞세우는 사람을 보면 외면하는 일이 적당한 타협이 되는 것이다. 어느 모임이나 어떤 단체엔 꼭 그런 부류의 사람이 있다. 선량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앞세우지 않기 때문에 의사 결정의 문제에 당면하면 침묵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반면에 자기를 앞세우는 사람은 항상 끈질긴 자기 욕망의 길을 확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욕을 완성하는 모사의 치부가 진행형이 된다. 그러나 늦지만 언젠가는 불합리의 그물막이 벗겨지고 마침내는 외면당하는 일이 정도(正道)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이때의 시간은 매우 더디고 완만하지만 결국 기다리다 보면 제풀에 넘어지는 일이 당연하게 된다.

    세상사는 이처럼 항상 2개의 구분 속에서 진행된다. 이를 굳이 악이나 선이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욕심의 함정에 빠진 사람의 경우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항상 자기를 수련하고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이 앞장을 서는 일이. "너 자신을 알라" 의 소크라데스의 거울 논은 자기를 반추하면서 자기를 건져 올리는 작업일 것이다. 인간은 이성의 성을 굳게 지키려 해도 항상 반대로 길을 만드는 일에 유혹을 견디는 일은 많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자기를 돌아 보아야 할 사명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생리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이를 사상적인 측면으로 살핀다 해도 그 사람의 특성으로 굳어지면 고치거나 수정하는 행동에는 한계가 노 증 된다. 아마도 이성보다 더 굳은 것이 환경적인 영향이 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자라난 환경이나 교육에서 형성된 성품은 화석화된 이념을 이룰 수 없는 여지가 많을 것이다.

     

    양보하고 겸손하고, 남을 세울 줄 알고, 자기의 높이를 가늠하지 않고, 낮추는 일이야 말로 사람 냄새 중에 가장 향기로운 일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요망은 항상 어려운 벽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는 정치가나 교수들에게 가장 많은 이기의 욕망을 많이 보아왔다. 정치적인 이기, 학문적인 오만, 등 당연한 일이고 그렇다고 합리화시키는 일 등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학문이 아닌 인간적인 오만은 결코 바람직스럽게 학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 것이다. 물론 남을 업신여기는 교수가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아마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날 것이다.

     

    특히 자기가 우선시 되어야 하고 보직이나 앞세우고 정도와 학문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 일 수록 이런 치기(稚氣)는 더욱 많은 편이 아닐까. 정치와 학문은 정도와 탑이라야 한다.

     

    이는 도의적인 정치와 학문 속에 인격조차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성으로 국민을 섬기고 열성으로 연구하고 찾고 노력하는 자세에서 비로소 국민이 이해하고 성과 있는 학문은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자리나 염탐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는 정치의 길과 학문의 길은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시정에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의 철학은 최선의 열심이고 지성(至誠)이라는 예는 허다하다. 그깟 정치가가 되었다고 교수가 되었다고 해서 국민을 무시하고 당략에만 앞장서는 일, 연구는 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그 냄새는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빈껍데기 때문에 허세의 방향은 항상 거짓이나 이권, 청탁, 등 남을 밟아 만족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람의 판단을 허명으로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세상의 흐름을 보면 진리는 항상 옳고 바른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 현실을 늘 직시하게 된다.

     

    천박하고, 무게 없이 경박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가르쳐준 인간들은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아울러 이성의 판단보다 감정이 앞선 그 사람들의 자리는 아니었기에 소화불량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광기가 요즘 현실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고 거짓과 선동으로 정치를 하고 있으니 정말 내로 남불이 따로 없다.

    이런 광경을 날마다 보고 있는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자괴감만 들어 귀막고 입을 막아야 하지만 명색이 글쟁이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렇게라도 글과 씨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시간이 지나면 이성으로 돌아오는 국민의 위대성은 파우스트를 읽어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파우스트의 이성은 항상 뒤에서 천천히 생각하면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의 내음은 향기로워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작가라는 욕심의 그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미물의 악취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미물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하겠다.

    사실 이상주의는 매우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성의 논증들은 사람들이 구하고 싶은 아니 만들고 싶은 것들을 궁극적으로 내놓지 못하면 이 사회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다만 모두가 합리적 공유로서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다 같이 함께하는 사회, 즉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를 기대하는 것이다

    네게 앞으로 주어진 임무라면 되도록 말을 줄이고 줄여 간단하게 말하는 것으로서 일상의 길을 가는 것이 정답이라 믿기에 글에 초라함의 변명은 어찌할 수 없으나 그래도 아직은 필자가

    숨을 쉬고 있다는 의미부여를 하면서 피할 수 현실이라면 정신적 가치로서 감내와 인내 그리고 영혼을 넣으면서 기도의 물목(物目)으로 삼아 또 다른 상상의 영역을 탐색하면서 필자의 논지 그리려 한다는 것을 다짐하면서 끝을 맺으며 에필로그 하련다.

     

    2023.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정신구축의 자전 1]

     

    [행복의 꽃길 2]

     

     
     
     
     
     
     
     
     
     
     
     
     
     
     
     
     
     
     
     
     
     
     
     
     
     
     
     
     
     
     
     
     
     
     
     
     
     
     
     

     

    [이승섭 시평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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