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
시인/전 진
밀실에서 나와
봄볕이 있는 촌집에서 만난 사내들
온몸이 절어 있고 세월 냄새가 난다
등진 세상에 삐친 여인네처럼
시큼하게 짠내가 되어
씁쓸한 웃음을 던지고 있다
한 입 ''물컹''
입맛을 다지니 그리운 고향이다
깊은 맛에 보고픔이 있다고
해묵은 기억을 집어 들고
''묵은지''
촌스럽지만 오랜 벗이야
청춘은 사그라져 있고 밤새 비가 내린다
술잔은 휘청거리다가
뻐꾸기 타령이 되고
날이 새도록 달거락거리며 구르는 바둑알 소리
새벽은 해장국집 소주 한 잔으로 아침을 밝히고
돼지 뼈따귀탕 앞에 서서
''우린 꼽사리야''
묵은지가 이빨 틈에 끼어 웃고 있다
-시작노트-
ㅡ시작노트ㅡ
정확하게 48년전의 글쟁이 벗들이 포항 오천의 허름한 촌집에서 만난다
부산에서 소설가 p가 올라왔고 장천에서
시인 j가 내려왔다 나도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에서 오천을 향했고 기다리고 있던 소설가 k가 웃고 있었다
코로나 땜시 나의 첫시집에 출판회를 가지지 못했다고
k의 초대에 옛 글쟁이 벗님들이 모여 주저리주저리 술잔을 나눈다 문학소년들의 옛 이야기에 밤은 깊었고
추억의 끝을 잡고 종내는 바둑판과 장기판이 토닥거리며 밤을 새운다 밤새 비가 내렸고
새벽녘에 해장국집에서 우리는 돼지뼈따귀를 들고 웃고 있었다
첫시집 [돼기가 웃을 때는]의 표절이라고
돼지 뼈따기를 흔들며 또 한번 웃는다
깊은 맛이 있다고 묵은지가 해장국집 식탁 위에서 꼽싸리를 낀다
떠나는 뻐스를 보며 물끄러미 보면서 K가 손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