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피를 맛보았으므로 나를 말할 수 있다 / 내 피를 맛보지 않고 나를 말하는 자들은 사이비다 / … / 내 피는 녹색이다 피멍은 적록색이다…."(김윤배 時, 당신은 내 피를 맛보았다)
김윤배 시인의 신작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백했던 말은'을 관통하는 정서는 '상실감'이다. 슬픔이 지난 뒤 찾아오는 건조한 감정, 상실감. 시집에 적힌 천여 개의 문장들은 겉보기엔 차가웠지만, 행간 사이로 읽힌 건 상실감을 넘어선 '위로'였다.
"이번 시집을 언뜻 보았을 땐 슬픔의 정조가 깔렸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행간에 담긴 의미는 분명 상실감이에요. 저를 둘러싼 인물과 사물들이 사라질 때의 느낌. 이번 시집에는 이런 상실감에 대한 고찰을 담았어요."
상실감을 써내려 간 여러 시 중에서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일까. 김윤배 시인은 '당신은 내 피를 맛보았다'를 꼽았다. 시어가 드러내는 붉고 푸른 잔상 탓에 쓸쓸함이 몰아치다가도, 차분히 저항하는 듯한 태도에 마음이 누그러지는 시다.
김윤배 시인은 "피라는 건 내 생명이기도 하고, 나의 전부다. 그걸 다 들여다보지 않은 자는 나를 말해서는 안 된다"며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피를 맛본 것 같은 내밀함이 있다는 뜻이다. 내 피를 맛볼 수 있는 사람이 평생에 한 명은 있을까,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쓴 시"라고 말했다.
어느덧 열여덟 번째 시집을 출간한 김윤배 시인. 매일 시를 읽고 써내려간다는 그는 "어디를 가든 시집을 꼭 들고 다닌다. 시집을 읽고 시를 쓰는 게 취미이자 일상"이라며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참 좋아하는데, 가슴이 답답할 때면 네루다의 시집을 읽으며 마음을 환기하곤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시 쓰기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잠이 깨면 곧바로 서재로 향해 전날 쓴 시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생각에 잠긴다. 그는 "눈으로 읽다가 흐름이 꺽꺽거리는 게 있으면 부드러운 시어로 바꾼다. 어떨 때는 문장을 한 달씩 주무르기도 한다"고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첨예하게 고르고 다듬은 문장들이 마침내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백했던 말은'에 한데 모였다. 한 권의 시집에 가득 찬 시인의 감상은 이제 독자에게 가닿을 시간만 남았다.
"시인은 중의적인 의미를 고민하며 시를 씁니다. 모든 시에는 시인이 깔아놓은 메타포가 있죠. 행간과 행간의 중의적 의미를 생각하며 내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있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