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들여다보면/무슨 부호처럼/떠나는 새들/자 떠나자/무서운 복수(複數)로 떼 지어 말없이/이 지상의 모든 습지/모든 기억이 캄캄한 곳으로.’
황동규의 시 철새의 한 대목이다.
고등학교 때 읽은 이 시를 나는 아직도 입속의 알사탕처럼 굴리고 다니며 가을마다 끄집어낸다. 무사 무사히 한 해를 접고 이 침묵의 시간을 조용히 전송하는 계절이다. 예측 없는 캄캄한 의식을 붙잡고 또 다른 봄을 향해 떠나는 철새처럼.
매교동 골목길도 차가운 날씨에 정적이 드리웠다. 전국을 들썩인 살인사건이 났던 골목이다. 요즘 들어 이 길도 오피스텔과 큰 주택이 들어서며 조금씩 밝아졌다. 천지개벽이라고 해야 할까. 부근에 1천500가구의 아파트가 조성됐고 더 조성될 예정이다.
도시는 진화와 소멸이 공존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빌딩 속엔 한 시절의 추억이 묻혀 있다. 저녁이 내리면 매교 근처 포장마차엔 모락모락 김이 올랐다. 따끈한 우동 한 그릇에 소주 한잔 걸치면 하루가 스르르 풀렸다. 원조 팔미옥도 그립다. 팔미옥의 할머니가 숙성시킨 고기는 맛은 물론 원탁이 주는 따뜻한 정감이 배어 있었다. 40년 넘게 살아온 이 거리가 나에게 어떤 희로애락이 될지 또 다른 상상의 계절들이 나무처럼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