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령이 울리면 학생들은 교실을 빠르게 떠났다. 곽은 출석부와 태블릿, 두세 권의 책, 황동 클립으로 묶은 학습지를 상아색 에코백에 넣었다."(김기태 '보편 교양')
교권이 추락한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의 고충을 풀어낼까. 아니면 교사의 시선에서 학생들을 짓누르는 획일적인 공교육의 폐해를 지적할까. 신간 '소설 보다 겨울'에 실린 표제작 '보편 교양'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에는 익숙한 서사들이 스쳤다.
어느 고등학교의 선택 과목인 '고전 읽기' 수업시간. 교사 '곽'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다 모범생 '은재'의 아버지한테서 온 염려를 전해 듣는다. 딸이 공산주의 사상가의 책을 읽는 게 걱정된다는 우려였다.
'종교령', '학생', '교실', '출석부'. 소설 도입부에 등장한 4개의 단어는 독자의 심증을 자극하는 단서였다. 소설 중반부에 이르러 등장한 위기, '마르크스 자본론 논란'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구분 짓는 전형적인 프레임을 차용한 듯한 모양새였다. 왠지 모르게 독자의 기대감을 한껏 낮추는 상투적인 소재 속에서 '보편 교양'은 예상치 못한 잔잔한 결말로 소설을 매듭짓는다. 은재의 아버지는 비이성적인 인물이 아니었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모범생 은재는 서울대에 진학한다. 교사 곽은 은재의 서울대 진학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을 받는 그야말로 해피엔딩이다.
이야기 곳곳에 등장한 위기는 기실 '맥거핀(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서 핵심을 담당하지 않는 극적 장치)'이었다. '보편 교양'의 매력 포인트는 사건을 쫓아 전모를 추적하는 과정에 있기보단, 곽을 설명하는 묘사에 있었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교사의 시점으로 교정에 담긴 아이러니를 서술한다.
교사 곽은 다정하지만 묘하게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성적으로 줄 세워 학생들을 등급 매기는 냉혈한 교사가 아닌, 학생들의 진심을 믿는 교사다. 그는 내신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폄하 받는 고전 문학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아는 교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이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거나, 알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이는 대다수 학생들의 지능 수준을 가늠한다. 게다가 편애하던 학생 은재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생활기록부를 입시용에 맞도록 계산적으로 써주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예상을 기분 좋게 빗나간 전개방식, 그리고 섬세한 인물 묘사는 '보편 교양'을 구축하는 탄탄한 토대다. 소설에 잠시 등장하는 무수한 문학 고전과 사회학 명저를 화자의 입장에서 극찬하기도 하고, 냉소적이게도 평가하는 부분은 독자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는 유쾌한 대목이다.
이외에도 신간 '소설 보다 겨울'에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담은 두 편의 단편소설이 함께 실렸다. 무당 업계의 세대교체(성해나 '혼모노')와 아이들이 가진 순진무구함과 그 반대편에 자리한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예소연 '우리는 계절마다')는 독자에게 책 가격인 커피 한 잔 값보다 값진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