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락같은 예술의 '짓거리'…'남수·북파 오롯한 온새미로'[전시리뷰]

    경기 북부·남부 '회화·조각·사진·문인' 30여명 참여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4-01-28 08:32:48

    “예술은 언제나 ‘처음’을 일으킨 날벼락 같은 ‘미학적 사건’들로 새로워진다. 낯선 처음이야말로 일상을 뒤흔들어 새 날을 여는 ‘나아감(進步)’이요, 새 날의 ‘오늘’이며, 화들짝 깨우치는 ‘깨달음’이다.”

    파주와 수원, 경기도 북부와 남부 정 반대의 공간에서 온 회화, 조각, 사진, 문인 등 30여명의 작가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여 들었다. 전시 기획자 홍채원 예술공간 아름의 관장은 ‘남수·북파’가 던지는 화두를 위와 같이 이야기했다.

    지난 22일 수원시 팔달구 예술공간 아름·예술공간 다움·실험공간UZ 3곳에서 ‘2024 휘말리는 벼락예술-남수·북파(南水·北坡) ­오롯한 온새미로’ 전시가 펼쳐졌다. 초대작가 23팀과 ‘이음’으로 참여한 홍일선, 이덕규, 이문재 시인 그리고 소문을 듣고 참여한 작가 등 총 32팀의 예술가들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3시간이란 한정된 시간 동안 글짓(벽시), 그림짓(벽화), 몸짓(행위), 꾸밈짓(설치) 등을 펼쳤다.

    [수원시 팔달구 예술공간 아름·예술공간 다움·실험공간UZ에서 지난 22일 ‘2024 휘말리는 벼락예술-남수·북파 ­오롯한 온새미로’ 전시가
    열린 가운데 작가들이 각자의 글짓(벽시), 그림짓(벽화), 몸짓(행위), 꾸밈짓(설치) 등을 펼치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예술공간 아름·예술공간
    다움·실험공간UZ에서 지난 22일 ‘2024 휘말리는 벼락예술-남수·북파 ­오롯한 온새미로’ 전시가 열린 가운데 작가들이 각자의 글짓(벽시), 그림짓(벽화),
    몸짓(행위), 꾸밈짓(설치) 등을 펼치고 있다.]

    ‘남수·북파’는 경기남부 수원시와 경기북부 파주시를 줄인 말로 마치 베틀을 짜듯 남쪽과 북쪽을 오가며 예술인들이 한 날 한 시에 벼락같이 모여들어 날 것 같은 예술의 ‘짓거리’를 펼치기로 작당한 것이다.

     

    지난해 8월 파주에서 열린 첫번째 전시에 이어 수원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주제는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를 뜻하는 ‘오롯한 온새미로’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는 온새미로의 미학이 벌인 한바탕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일순간에 모여든 이들은 어떤 걸림도 없이 각자의 예술 감흥을 쏟아내듯 그려냈다.

     

    ■ 벼락 같은 사건…생긴 그대로, 날 것 그대로

     

    창밖으로 눈이 날리던 22일 오전, 예술공간 아름의 공간 사방에서 작가들은 정신없이 자신들의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홍일선 시인은 요즘 시는 한 근에 얼마냐 물어봤다던 농부와의 일화를 녹여낸 시를 붓으로 펼쳐내 벽에 걸었고, 조각가인 금누리 작가는 맞은 편의 공간에서 지구와 땅, 중력의 힘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작업을 마친 이들은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은 작가들에게 ‘유쾌함’의 시간이었다.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마당은 넓혀 놨다. 작가들은 늘 하던 활동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시도했다. 서로다른 분야의 작업 활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줬고, 때로는 하나의 작품을 릴레이로 이어나가며 교류했다. 이는 곧 관객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금누리 작가가 중력(땅)의 힘을 그려낸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

    북파(북부에서 온) 권민호 작가는 평소 건축 드로잉을 한다. 권 작가는 기존에 하지 않던 방법으로 3시간의 정해진 시간 안에 ‘사고를 치자’고 생각했다. 창밖에 눈이 펼쳐지는 것을 보며 즉흥적으로 손이 움직였다. 그는 “평소에는 경직된 작업의 자를 대고 ‘수직’을 표현하는 일을 많이 하는데, 이곳에 오며 수원에 눈이 많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담아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직이 아닌 동그란 원형을 마음껏 쏟아냈다.

     

    사진작가인 김정대씨는 관람객이 오가는 통로 바로 앞 바닥에 하얀 캔버스를 드리웠다. 평소였으면 혹시나 발자국이 찍힐까 피했겠지만 작가는 “마음껏 밟아달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전시기간인 2주 동안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자국이 찍힐 것”이라며 “사진으로 형상을 담아내기 위해 오랜기간 장노출을 하듯 이곳 외에도 돼지우리, 도로, 카페, 관공서 등 움직이는 형체가 있는 곳에 캔버스를 설치하며 공간에 녹아난 시간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캔버스는 필름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담길 것이다.

     

     

    작업의 의의도 다양했다. 이번 전시에 공동으로 초대받은 포천 등 북부에서 온 파견미술팀 전미영, 나규환, 전진경 세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들은 “현재 동두천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성병관리소가 남아 있는데 이를 부수고 개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슴 아픈 현대사의 역사를 국가는 외면만 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해 시민사회가 함께 지난 역사를 보존하고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며 “이처럼 메시지가 필요한 곳에 작가는 문화예술로 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전시는 예술가의 자발적 참여로 그 수가 더 늘어났다. 소문을 듣고 참여한 조각보작가 서은주씨가 모시 원단에 바느질을 하며
    작품 ‘그림자놀이’를 완성하고 있다. 서 작가는 언제나 날고 싶은 새를 통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유를 꿈꾸며 날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 시간에 더해진 또다른 시간

     

    같은 시각 지하1층 실험공간 UZ에선 온새미로의 실험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홍채원 관장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것을 풀어내 함께하자는 데 의미가 있다”며 “어떤 공간에서 작품을 풀어갈지 스스로가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흥성과 현장성, 자발성과 연대. 지난 파주 전시에도 참여했던 수원의 최세경 작가는 당시 건물 전체에서 진행됐던 전시에서 공간을 전부 둘러보고 ‘문’을 골라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미리 준비해둔 굴곡이 생기도록 엮어낸 빨간실을 지하1층 공간 이곳저곳에 옮겨본 끝에 오래 전 한 해외작가가 빨간글씨와 정자를 그려두고 간 벽을 선택했다. 최 작가는 “누군가의 작품 위에 나의 작품을 이어갔듯 이 위에 언젠가 또 다른 작가가 손길이 이어질 것”이라며 “작품의 의미는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파생’”이라고 설명했다.

     

     

     

    최 작가의 옆엔 파주에서 온 정혜령 작가가 공간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벽에 무언가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을 선택했다. 그의 눈에 공간에 쌓인 시간이 보였다. 작가는 우둘투둘 튀어나온 벽에 거대한 한지를 양옆으로 붙이고 그 위에 물을 뿌린 후 벽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두드렸다. 한지가 마르면 그 위에 벽 모양이 입체적인 질감으로 표현될 것이다.

     

    작품의 이름은 ‘창을 내다’. 두드림이 끝나면 작가는 좌우 가장자리를 제외한 위아래와 좌우 안쪽에 고정해둔 테이프를 떼어낸다. 시간이 흘러 마치 창문이 열리듯 자연스레 한지가 펼쳐지게 된다. 관객들이 창을 통해 보듯 창 너머의 시간을 함께 엿보게 된다. 눈 앞에 실재하는 벽, 그 벽의 결을 표현한 작가의 두드림, 이를 마주한 관객. 서로 다른 존재의 서로다른 시선이 세 겹의 시간이 쌓이게 될 것이다.

     

     

    예술공간 다움에는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용규 작가의 ‘목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간에 꽉찬 작품과 고요함은 편안함을 선물했다. 대학에서 메타버스 그 중에서 3D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이 작가는 원래 조각을 전공했다. 언제나 3차원의 가상공간을 그려내는 작가는 언제나 물고기가 회귀하듯 손에 잡히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전시의 소식은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는 산으로 향했다. 매일 고속도로를 지나며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방음벽에 자라나는 담쟁이 덩쿨을 보며 그는 생명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 프레임이 빠르게 지나가듯 펼쳐지는 자연이 모습을 보며 그는 자연이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산에서 직접 덩쿨을 가져왔다. 이 작가는 “덩쿨은 때로 다른 식물을 죽이기도 한다. 해로운 식물인지 아닌지는 과연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는 덩쿨로 나무를 깎아 잉어 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파 내고 그 속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불구(佛具)인 ‘목어’를 표현했다. 방안 정면에 꽉찬 목어. 그 밑에는 솔방울로 물에 비친 목어의 형상을 담았다. 뒤에 자리한 하얀 벽은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조명에 비친 목어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소리가 나지 않는 그의 목어. 작가는 ‘마음으로 생각한 만큼 목탁을 치시오’라는 글을 적었고, 이를 본 홍일선 시인은 “천지가 모두 목탁이오이다”라는 글을 적어내려갔다. 서로의 예술적 교류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 작가는 “내가 사는 세상, 내가 만드는 세상은 가상의 허상세계”라며 “자연미술을 통해 실상과 허상을 표현했다. 자연미술과 가상세계란 극과 극은 통한다”고 말했다.

     

     

    새 날, 새 예술을 여는 벼락같은 예술의 ‘짓거리’로 지난 22일 펼쳐졌던 작가들의 작품은 다음달 7일까지 예술공간 아름·다움과 실험공간 UZ에서 감상할 수 있다. 남수북파는 수원과 파주 기획전을 전초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참여 작가

    수원 _ 권혁·김예령·김정대·김성배·왕희정·이마로·이수진·이윤숙·최세경·홍채원

    파주 _ 금누리․권민호·김기라·김수·김영주·문승영·손승희·장서형·조세랑·채병록․정혜령․박이창식․파견미술팀(전미영․나규환․이윤엽․전진경)

    이음 _ 홍일선․이덕규․이문재

    소문 _ 김진열, 서은주, 박건재, 문미희, 이용규, 김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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