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는 서울, 부산보다도 강한 음악씬(scene)이 있었다.
1980년대 헤비메탈의 시대가 도래하자 ‘아웃사이더스’ ‘제3세대의꿈’, 1986년 결성된 인천의 맹주 ‘사하라’, 강변가요제 수상의 ‘티삼스’ 등 굵직한 밴드들이 활동하며 인천 씬을 형성하고 키웠다. 이들의 주무대는 주안동 인천시민회관, 수봉공원 문예회관, 신포아트홀, 인하대학교 강당, 동인천 대명라이브파크 등이었다. 공연마다 구름 관중을 모았다고 한다.
또 음악(영상)감상실이면서 공연장이던 동인천 심지, 유진음악감상실, 성림음악감상실은 물론 밴드의 산실 역할을 한 휠음악학원, 대명음악학원(대명라이브파크 전신), 현대음악학원 등도 인천 씬의 한 축이었다.
1980~1990년대 록, 헤비메탈 음악의 대표적 씬이 인천이었다는 건 전설처럼 떠돌던 이야기다. (사)인천음악콘텐츠협회가 최근 발행한 ‘비욘드 레코드(Beyond Record) : 1985 - 1995 인천 록메탈 연대기’는 그 전설을 수년에 걸쳐 역사로 복원하려 노력한 결과물이다.
비욘드 레코드는 큐레이터 고경표가 2016년부터 기획한 인천 지역 대중음악 아카이브 프로젝트다. 4차례(2016~2017년 임시공간, 2017년 인천여관, 2017~2019년 인천생활사전시관, 2022~2023년 인천음악창작소 포트록) 전시 내용을 엮은 게 이번 책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전시가 거듭될수록 당시 활동한 뮤지션들의 인터뷰, 그들의 장소, 공연 포스터 등 각종 자료 등이 쌓였고, 이를 통해 1980~1990년대 인천 대중음악사가 점점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기획자 고경표와 함께 책 저자로 참여한 음악평론가 김학선이 2장 ‘인천 록헤비메탈 연대기’에서 전문적으로 인천 대중음악사를 서술했다.
저자들은 3장에서 ‘관교동, 인천 LA’ ‘인천 메탈 시티’란 글로 관교동과 동인천 등지의 인천 록·메탈의 흔적을 쫓았다. 그 시절 인천 음악씬에서 동인천만큼 흥미로운 공간은 관교동(현 미추홀구)이다. 관교동에 밀집한 소규모 건물과 다세대 주택의 지하실은 1990년대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 온 수많은 프로·아마추어·스쿨 밴드의 연습실이었다.
당시 다운타운 소속이었던 기타리스트 김세황, 노이즈가든·로다운30 윤병주, 크래쉬, 블랙 신드롬 등이 한때 관교동에서 지내며 인천 뮤지션들과도 교류했다.
1993년 5월1일부터 8월11일까지 대명라이브파크에서 열린 103일 동안의 ‘103 마라톤 콘서트’는 인천 록, 메탈 씬의 대미를 장식한 상징적 장면이었다. 103일 동안이나 공연할 밴드도 청중도 있었다는 증거다. 인천 메탈 씬은 1990년대 중반 서울 홍대를 중심으로 얼터너티브, 펑크 밴드들이 ‘인디 씬’을 형성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책 인터뷰에서 사하라의 보컬 우정주(전 인천음악콘텐츠협회장)는 왜 서울에 가서 활동하지 않았는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왜냐하면 씬이 있으니까.”
잊힐 뻔한 씬의 흔적을 수년 동안 복원하려는 기획자의 열정이 눈에 띄는 책이다. 인천 메탈 씬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최근 들어 확장하고 있다. OBS는 지난 연말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헤비메탈의 시대’를 1·2부에 걸쳐 방영하기도 했다. 인천이 중심이 되는 이 다큐는 OBS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책을 발행한 인천음악콘텐츠협회는 인천 대중음악산업의 저변 확대와 발전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뮤지션 지원, 레이블, 공연·문화행사 개최, 교육·전시·아카이브 등 다양한 공익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이다. 2022년부터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 내에 조성된 인천음악창작소를 인천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