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리뷰] 완숙한 코미디… 오래된 친구처럼 깊은 케미 연극 '아트'

    세 남자의 우정과 갈등 그려내, 풍경화·추상화·정물화 같은 '친구 셋', 예술 논쟁·대립 극단적 싸움으로 번져, 다양한 배우들의 합 엿볼수 있어 매력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4-03-04 11:22:48

    가로 150㎝에 세로 120㎝. 하얀 바탕의 하얀 줄이 그려져 있는 캔버스. 세르주는 앙뜨로와의 이 그림을 5억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구입했다. 친구 마크는 이런 세르주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림을 두고 마크는 '하얀색 판때기'라 부르며 세르주와 대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이반은 두 친구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느라 분주하다.

    5억원의 그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연극 '아트'가 돌아왔다.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으로, 그림 한 점이 불러온 예술에 대한 논쟁과 갈등이 우정의 민낯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다.
    무대 위에 있는 그림 세 점. 화면 가득 차 있는 풍경화, 선과 면과 색으로 이뤄진 추상화, 어딘가 투박하고 엉성해 보이는 정물화는 이들 세 친구를 직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요소이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세련된 피부과 의사(세르주), 고전과 명언을 좋아하는 이지적인 항공 엔지니어(마크),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 않고 자기주장이라고는 없는 문구 영업사원(이반)이라는 설정도 각자 캐릭터가 가진 성격을 잘 드러낸다.

    [연극 ‘아트’ 프레스콜에서 장면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 1]

    이러한 세 친구가 논하는 예술 이야기는 현대미술과 모더니즘, 고전주의 그 사이 어딘가로 마구 흘러다닌다. 이를 두고 세르주와 마크는 서로에게 대단한 수집가인 듯 뻐기는 모습이라고 말한다든지, 자기도취에 남을 아래로 보는 우월감과 허세를 떤다고 하는 등 케케묵은 감정과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머감각'을 운운하며 누구에게 웃어줬는지를 따져 묻는 유치해 보이는 싸움 속에 인간 내면 속 자리한 여러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른바 '개싸움'이라 불리는 장면은 이들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는 시점이다. 온 집을 돌아다니며 서로가 치고 받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결국 금이 가고 깨진 관계를 다시 이어붙이기 위해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임이 분명해 보인다. 부서진 우정이란 조각을 다시 하나씩 쌓아가려는 세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치 망가진 도자기를 금으로 때워 새롭게 만드는 '킨츠키'가 떠오르기도 했다.

    [연극 ‘아트’의 공연 장면.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2]

    작품은 세르주와 마크, 이반을 각자의 개성을 담아 표현하는 배우들의 합을 보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하다. 다양한 페어로 볼 수 있는 세 남자의 이야기는 나이와 세대를 넘나들며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의 우정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실제 앞선 세 시즌에 참여하고 이번 시즌에도 함께하는 김재범·박정복·박은석 배우는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배역',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와 느낌이 달라지는 극'을 '아트'의 매력으로 꼽으며 계속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박은석은 "'아트'는 깊은 와인 같아서 숙성될수록 의미도 달라지고 보고 느끼는 것도 달라지는 것 같다"며 "늘 재미있고 평생 하고 싶은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이런 작품을 만나 행운이다"라고 밝혔다.

    [연극 ‘아트’의 공연 장면.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2]

    각자 배우들이 전하는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에 극은 새 시즌을 맞이할 때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대본이나 연출적인 면에서의 큰 변화는 오히려 없는 편이다.

    성종완 연출은 "대본에 대한 존경이 크다. 배우들만 바뀌어도 정말 다른 느낌을 주는 극"이라며 "처음 만들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많이 웃길까를 고민했는데, 지금은 그런 고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미 이 작품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다만 저도 나이가 들면서 작품 속 인생에 대한 통찰, 예술에 대한 시각을 포착하는 데에서 디렉션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지만, 극은 현실적인 캐릭터로 관객들의 마음속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어떠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이번 작품으로 연극무대에 데뷔한 성훈 배우는 "본인 나이에 맞게 경험에 맞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다"며 "굉장히 일상에 가까운 연극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연극 '아트'는 5월 12일까지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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