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막힌 곳을 뚫고 굽은 곳을 펴겠다’는 포부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 디딘지 어언 40년. 1982년 경인일보 사회부 기자로 시작해 인천일보, 경기일보, 인천신문 등을 거친 원현린 기호일보 주필의 칼럼집 ‘열흘 붉은 장미 없다’가 출간했다.
스스로 ‘네가 기자냐?’를 되뇌며 매일매일 자성하는 자세로 기자생활을 해 왔다는 원 주필. 그는 “인생은 문틈으로 얼핏 내다보아 백마가 벌판을 달려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빨리 지나간다(人生如白駒過隙)는 말이 실감난다”고 회상했다.
원 주필은 151편의 칼럼이 담긴 이번 칼럼집을 통해 지난 40년간 기자생활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현실과 역사 인식을 등을 녹여냈다. 원고지만 따져도 3천 매가 넘는 압도적 시간의 무게도 담겨있다.
원 주필은 지난 1991년 청와대 출입기자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제주도 한소(韓蘇)정상회담은 물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1992년 한중(韓中)수교, 캐나다·맥시코와의 정상회담, 유럽 언론실태 연수 등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 한 복한에서 취재를 했다. 이를 통해 동서문제(東西問題)와 유엔이란 무엇인가, 한중 관계 등 국제정치 관련해 쓴 칼럼을 통해 당시 그의 국제정치사에 대한 소견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청와대에서 지켜본 국가권력의 흥망성쇠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 인식도 책에 고스란히 품어냈다. 부동산 광풍으로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는 가진 자들의 탐욕에 대해서는 좋은 풀이 있으면 혼자 먹지 않고 동무들을 불러 모아 사이 좋게 함께 풀을 뜯어먹는 시경(詩經)의 ‘유유녹명 식야지평’을 끄집어내 상생의 덕목을 일깨운다.
원 주필은 기자라면 언제 어디에서든 여론을 이끌며 국정이 흔들리거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향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그가 해악을 고발해 역사의 법정에 세우며 밝고 건전한 사회로의 길로 나아가도록 한 것은 스스로의 뿌듯함이다.
원 주필은 서문을 통해 “새로운 시간 위에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져야 하고,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며 “기자는 역사의 기록자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국정을 감시, 비판하며 역사 발전을 이끌어 언론을 혹자들은 ‘무관의 제왕’이라 추켜세운다”고 전한다. 이어 “곳곳에 죽간과 파피루스에 새겨놓았던 편린들을 찾아 모아 세상에 내놓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