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서련이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2018)에 이어 두 번째로 쓴 역사소설이다. 1928년 경성 관훈동에 조선인이 차린 첫 서양식 카페 '카카듀'의 주인 이경손(1905∼1978)과 현앨리스(현미옥·1903~1956?)의 이야기를 다뤘다.
소설 속 화자 이경손은 의관 집안 출신이지만 신학, 예술 등을 공부하고 영화감독과 배우로 활동하며 '보헤미안'을 꿈꾼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다. 사촌누나의 딸이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오촌 조카 앨리스가 찾아와 당시 '끽다점'이라 불린 카페 창업과 동업을 제안한다. 이경손이 성인이 돼 다시 마주쳤을 때 "신파, 신파다. 새 시대의 얼굴이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신여성이 바로 앨리스였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예술인들이 끽다점이자 문화예술 공간인 카카듀로 모인다. 그중엔 보헤미안도 있고, 코뮤니스트(사회주의자)도 있다. 나운규, 김명순, 이음전(이애리수) 등 당대의 예술인은 물론 심훈, 박헌영 등 역사적 인물이 소설 속을 거닌다. 경성과 부산을 오가는 영화계 풍경도 흥미롭게 쓰였다.
박서련은 카카듀를 운영하던 시절 이경손과 앨리스의 흐릿한 행적에서 그 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고민을 읽어 냈다. 카카듀에서 열린 성탄 파티에 참석한 예술가들이 왁자지껄하게 '아리랑'을 부르다 바깥에서 일본 경찰이 들으면 어쩌나 걱정하다가도, 술과 흥에 취해 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식민지와 청춘'을 무겁지 않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었다.
"옛말에 초상난 절에 중은 많다고 하였던가.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후일 이 망국의 수도에 이렇게도 많은 예술가가 날 줄 미리 내다보았을까. (중략) 때로 내게는 경성 전체가, 나아가 조선 전체가 거짓의 전당처럼 느껴졌다." (102쪽)
이처럼 방황하는 이경손에게 변화를 가져다 주는 이는 비밀을 감춘 앨리스다. 현앨리스는 특히 인천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현순(1879~1968)은 인천 내리교회와의 인연으로 하와이 이민 초창기인 1903년 통역관을 맡아 제물포에서 하와이로 이민단을 인솔했다. 이후 하와이 한인교회 담임목사,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차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첫 조선인 2세가 현앨리스다. 카카듀가 실은 독립운동 거점을 꿈꿨다는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비롯됐다. '거짓의 전당'이라는 의미를 품은 카카듀라는 끽다점 이름이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의미심장해진다.
소설에선 다루지 않지만 앨리스는 해방 이후 미군정 군속으로 일했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행적이 확인된다.
소설 '카카듀'는 현앨리스의 행적 중 가장 흐릿한 1928~1929년을 포착했다. 박서련은 '작가의 말'에서 "허구적 재현이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스칠 때가 있다고 믿는다"며 "역사-소설이라는, 허구인 동시에 진실의 가능성을 내표하는 양가적 상태는 이러한 믿음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