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인天台山人 김태준은 국문학자이고, 학문은 그의 목숨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소진하며 오백 년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내 호적을 찾아 주었다. 그가 그렇게 목숨을 걸지 않았던들, 먼지투성이 고서들 틈에서 꺼내 준 해례본이 아니었던들 나는 천박한 태생으로 전락했으리라." - 본문 중에서
한글날인 10월 9일 발간된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일제로부터 해례본을 지켜낸 국문학자 김태준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김태준은 해례본 발굴을 비롯해 한국 고전문학사의 기념비적 저작인 ‘조선한문학사’, ‘조선소설사’, ‘조선가요집성’을 집필하며 한국 문학을 연구해 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책은 김태준이 간송 전형필의 도움을 받아 해례본을 되찾고 난 뒤 사회주의 단체 활동 죄목으로 처형되는 전반의 이야기를 담아 냈다.
흥미진진한 해례본 추적기와 한글이 주인공이 된 가상의 미니 픽션이 어우러져 복합 구성된 장편소설로, 역사적 사실과 상상으로 구현된 언어의 이야기를 이중 나선구조로 엮어내 생생한 느낌을 준다.
암흑으로 뒤덮인 처형장에 선 김태준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해례본을 찾아 나선 여정을 떠올린다. 1940년, 그의 제자인 이용준의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서가 해례본임을 직감한 그는 안동으로 내려가 보물의 정체를 확인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훈민정음’으로 바뀌어 전개되는 구성도 눈에 띈다. 훈민정음의 발화 외에도 시신(屍身)의 목을 잘라 그 구조를 들여다보고 자음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자들과 목이 잘린 광대 이팔삼의 혼잣말,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에 휩싸인 ‘암클’이라 천대받던 언문과 언문 투서 사건, 조선 최초의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파란 눈의 선교사와 그를 따라 언문 번역에 힘썼던 한 여인의 이야기 등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작가는 "말과 글이 사지에 몰린 시기,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고 지키는 것은 한글을 지키고 민족의 얼을 사수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훈민정음과 훈민정음 해례본의 역사성과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소설이라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추천을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