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Best seller』라는 명패를 패용(佩用)을 했다고는 하지만 필자의 문학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로 제10집을 출간하면서 지금까지의 내 문학을 정리하다 보니 아직 기대치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 얼마나 양과 질이 높은 문학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은 필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집무실에서 유명한 고서들을 독파하는 것도 매우 버거운 일이지만 사회생활 전반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 어떠한 상징성을 나타내는 문학 정리라는 것도 아직도 본인은 미래를 가늠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늘 아쉬움만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10집을 출간하면서 정리하는 것도 미래의 창작을 위해 상당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 즉 고독의 의상을 입고 숙명적인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 한다.
시심은 늘 표현으로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의 모습은 언제나 시인의 마음과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출몰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처연한 정신의 줄기가 흐르는 느낌을 남기는 것이다.
철학은 늘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이기에 이 물음은 본질로 귀속되기 때문에 보편적 진리를 수용하는 조건이 붙는 것이다.
나라는 일인칭의 무게는 우주이면서 삼라만상의 전부를 뜻한다.
내가 없다면 이인칭, 삼인칭이나 의미는 없게 되기에 나로 향하는 질문은 늘 겸손하고 근엄한 윤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허난설헌 1· 2는】의 문학을 보면 곧 시인 스스로 허난설헌의 일생에 감염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내재 되어 유사성의 일체를 객관성으로 부여하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많은 고독을 느끼고 살아오면서 허무는 번민을 가져오고 이 번민은 고독의 그늘에 갇혀 헤매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부재(不在)의 하루 속에서 점차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즉 거미집의 허무가 깃드는 장소로 스며드는 시간을 오랫동안 감금당해 보았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허무는 늘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에 고독에 끌려다니다 보면 자신이 허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일생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에 어떤 행동의 특징이 지배적으로 일생을 관통하는 특성의 집약이 있을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세 살 먹은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의 의미는 좋은 뜻으로 말한다면 행동의 연속성을 말하는 의미일 것 같다.
물론 환경에 따라 변하는 일은 예외가 아닐 것이지만 아무튼 지속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분주하게 움직이며 행동하는 것과 하나하나 정리하는 습관의 차이는 성품의 지배적인 요소일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화제의 맥을 나로 돌리면 나는 정리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격이 급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유난을 떠는 것은 사실이다.
집사람과는 다른 성격은 느긋한 성미와 바쁜 성미의 대결은 언제나 충돌의 여지가 많았지만 이제 와서 필자가 지나온 높낮이의 언덕은 많았다고 솔직히 토로한다.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있었는지는 물론 아니다.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감회에 젖는 그런 평범 중에도 평범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둘의 결합이지 하나의 주체로서 용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사실일 것 같다.
그러나 평론책이 『Best seller』가 되기란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시와 수필 소설과는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독자가 아니 비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구입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욱 무게감이 밀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시간만 허락된다면 책상 위에서 글을 씁네 하고 자세를 정좌한다.
가령 하루나 이틀 지나도 어김없이 시간을 내어 책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확인이며 정리라고 한다면 정리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디에 가서 이삼일씩 여행하고 집에 와도 이런 일상은 여전하다. 이러한 습관은 내 삶의 모든 면에서 급한 성미의 일단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필자가 지금까지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일도 그렇고 시간을 어긴 적도 없이 정확한 계산 하에 외출하는 것도 그렇다. 사실 이런 일들이 쪼잔하다는 말도 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대범하다는 것과는 달리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하고 정확한 일의 진행이어야 한다는 소심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온 나의 결정판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글 중에도 잘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의 소홀함도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은 그만큼 타인의 생각으로는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될 수 있겠다. 역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내 성미의 일단이라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평판을 받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글의 세계에서도 선전하면서 문학상이니, 작가상이니 하도 많은 상이 즐비하게 있다고들 한다. 필자는 그런 상들을 타기 보다는 오히려 숨고 옆으로 가는 길이 내 적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은 성격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함께하지 못하는 탓도 있으리라-
그러나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쓴 작품을 모아 전집을 출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간 속에서 부담은 있지만 열정과 우직한 필자는 더욱 정진하고 琢磨해야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고 있다는 것에 주위에 지인들이 혀를 차지만, 실은 시간은 내는 것이지 시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내 스승님의 말씀이 자네는 다른 작가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야-
했지만 급한 내 성미와 고지식한 윤리라 할까 그런 것을 어찌하랴, 언제나 반골이 내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스승과 000 박사에게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 옛날 이천 문사원대학에서 시평의 기본 틀을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존경하는 2분도 작고하신 것을 보면서 화무십일홍이며 인생무상이라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이 느낌은 아니리라-
어느날 문득 모 대학 학장이 어이 자네 와서 일 좀 맡아 줘, 했을 때도 인연이 되기는 하였으나 반골(反骨)이 앞장서는 일에는 내게 걸쳐진 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히 사양하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입맛이 씁쓸하다.
다만 스승과 000 박사에게 따갑게 들었던 말은 자네는 양주동 박사의 12권 전집을 잊지 말고 양주동 박사의 12권의 전집 정도는 상재 해야만 된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과연, 거개인 그분들의 발밑에라도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라 보지만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outsider의 필자가 되고 싶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말이다.
양주동 박사도 <고가연구 문학>과 <고려가요>의 연구에는 국내에서는 따라갈 학자는 없겠지만 사실 문학의 경우는 그렇게 판단은 하지 않으셨던 000 박사님의 말이 지금도 뇌리에 스친다. 오골성의 성미를 가진 작가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은사의 탑을 펌훼(貶毁)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지의 결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돈의 무게를 알고 있지만, 학문 가치로 예술의 무게를 아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 저서가 훗날에 고귀한 가치로 담보할 보장도 없는 일에 나를 위한 정감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물론 시를 배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에 다소 쓸쓸함도 따라오지만 어떻든 고맙다.
그리고 기억하리라-
사실 폭넓고 많은 시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outsider,인 필자가 매번 출간 때마다 best seller에 이름이 올라온 것은 사실 필자 자신도 놀라운 일이라 하겠으나 베스트셀러가 좋은 글을 쓴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만하지 말고 내 인생의 정리를 하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문학과 언론인으로서 다음 길을 가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말이다.
2024. 12. 제10집 후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