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밤]
詩 전진식
억만년 전에도 눈이 내렸고 오늘 밤도 눈이 내린다
사랑은 눈 속에 묻혀 잊혀져 가고
잊어야 한다는 것으로
외투의 어깨 위에도 눈이 쌓인다
발자국 몇개 찍어보는 정류장에는 막차도 떠났다
신호등 앞에는 기다림이라는 인내를 배워보지만
흩어진 발자국을 뒤로하고
스치는 헤드라이트의 불빛 속으로 눈은 쉼 없이 내린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있을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성당의 벤치가 외등 아래로 보이고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수녀의 합장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숨겨둔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고해성사라는 것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만약이라는 의문을 말하고 싶지만
아파트의 불빛들이 꺼져가는 시간이다
고개를 숙이고
쓸쓸히 걷고 있는 적막의 거리
눈은 지금도 내리고 있지만 억만년 후에도 내릴 것이다